어린 시절에 아버지는 200자 원고지를 좌식 책상에 쌓아올리며 원고를 쓰셨다. 그리고 아침이면 그 원고를 보자기에 싸가지고 어디론가 가셨다. 그날 저녁밥상에는 늘 생선이 올라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창시절부터 나는 글쓰기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러나 글을 못 썼다. 글쓰기로 상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못하는 글쓰기를 나는 왜 그렇게 로망 했는지? 그것은 밤을 새워 글을 쓰시던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글쓰기를 해야 하는 나의 염색체로부터 온 것이다. 6남매 중에 나만 지금까지 글쓰기를 붙들고 늘어지고 있다.
이제부터 글을 써볼까 하기는 30대였다. 삶과 현실의 문제와 갈등, 종교관, 결혼생활과 육아에 적응, 당면한 과제 수행 등으로 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약간의 마음의 여유가 생긴 40대에 다시 펜을 잡았으나, 내 특유의 사변과 관념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글도 사변과 관념이 되어 글쓰기를 중단했다.
그리고 나이 50부터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로 자신과 약속했다.
거짓말처럼 나이 50이 되자 글 쓰는 촉이 생겼다. 대형출판사 기획출판으로 “중년은 아프다”를 세상에 선 보였고, 그 책은 5쇄까지 나왔다. 이후로 나는 글쓰기 오타쿠 처럼 새벽이면 부스스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전날 내 마음을 울린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판기를 두들겼다. 나의 새벽 글쓰기는 2시에도, 3시에도, 4시에도 시작됐다. 잠이 안와 일어나는 시간이 곧 글 쓰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원고가 쌓여 지금까지 자비출판 없이 모두 기획출판으로 9권을 세상에 냈다. 이중 《수다떠는 남자, 2016》와 《너의 화는 당연하다, 2020》는 교양심리학 분야 세종도서로 선정됐다.
그리고 금년 9월, 10번째 책으로 《50, 나는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를 냈다. 이 책의 출판은 사연이 있다. 작년에 《너의 화는 당연하다》를 내고 나는 글 쓰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남들은 다둥이 아빠가 됐다고 기뻐해 줬는데, 나는 기쁘지 않았다.
글 쓰는 일은 곧 내가 사는 이유였다. 어디가면 나는 글을 쓸 때에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노력한 것에 비해 보상이 너무 적다. 마침 경제적인 어려움도 겹쳤다. 글쓰는 일은 나의 보잘 것 없는 자존감을 달래주는 자구책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느니 차라니 신문이나 우유를 배달하면 건강이라고 챙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래서 당분간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
글쟁이는 글을 안 써도 글을 쓴다. 한 4-5년 전에 다음 카카오의 브런치 계정을 만들어 브런치 작가로 등극했다. 이후 한 편의 글도 올리지를 않았다. 나는 그동안 써 놓았던 글을 정리하여 브런치에 올렸다. 글에 손을 놓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10편쯤 올렸을 때에 빌리버튼 출판사 편집장께서 브런치를 서핑하시다가 나의 글을 보시고, 중년을 주제로 책을 내자는 메일을 보내셨다. 이 제안은 글쓰기에 동력을 잃은 나에게 큰 힘이었다. 지친 나를 다독여 주고 내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천사였다.
사람은 나이 60, 육십갑자가 한 바퀴 돌아야 철든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이 시기에 나는 예상치 못한 내적이고 외적인 혼란을 겪으며 우울의 수렁을 헤매고 있었다. 20여년 나의 소중한 길벗이었던 정신분석과 분석심리학적 통찰은 더 이상 나를 건져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분석심리학자 융의 심리학이 아니라, 융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렁에 있으니 더 잘 보였다. 나는 융이 나의 전생은 아닌가 할 정도로 그와 동질성을 느꼈다. 융은 심리학자이지만, 그의 세계관은 심리학을 넘어 있었다. 나는 나의 세계관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너의 화는 당연하다》가 2020년 교양심리학 세종도서로 선정되며, 내가 세상에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줬다.
나의 사상은 심리학을 넘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심리학을 공부하기 전에 신학을 먼저 공부한 사람으로 영적 영역에 관심은 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관심의 차원이 많이 달랐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가슴이 아닌 단전으로, 이해가 아닌 수용으로, 분별이 아닌 사랑으로 나의 생각을 넓혀갔다.
이번에 쓴 책《50, 나는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에는 이러한 내 생각의 변화가 반영돼 있다. 나의 애독자들는 이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잃었고, 직관이 많은 글이어서 여운이 남는다는 피드백을 주셨다. 나는 이 책대로 살지 못했다. 그렇게 살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살고 싶은 갈망을 반영한 책이라 보면 된다.
다음은 국내 저명한 예술 신학자인 심광섭 박사님께서 제 책을 단숨에 읽으시고 페이스 북에 인용한 구절들이다.
“50세 이전의 자기실현은 땅의 원리인 세상을 배워 적응하는 것이라면, 50세 이후의 자기실현은 하늘의 원리인 사랑을 배워야 할 시기다.”
“나는 우주의 원리는 사랑이라고 믿는다.”
“생애 전반기는 주로 집단의 요구에 맞추어 살아야하는 반면에, 생애 후반기는 집단 안에 있지만 집단의 요구와 거리를 두는 기술을 습득해야한다.”
“생애 후반에는 인생게임을 하지 말고 인생놀이를 하라.”
“삶이 힘들어질수록 적게 생각하고, 적게 말하고, 많이 보라. 복잡한 것이 단순해지고 살 길이 보일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함을 견뎌내는 능력은 성숙의 요소이며, 인간의 창조성은 모호한 상태로부터 분화된다.”
“신을 보았다, 신과 대화를 나누었다, 초월세계를 보고 왔다, 해도 자기 삶을 부정하고 거부한다면 그의 경험은 그와 아무런 상관없는 것이 된다.”
“성공도 인생이고 실패도 인생이다.”
“살아있는 것은 다 살게 마련이다”
“이 순간 여기에 살고 있으니 얼마나 기쁜가”
“외로움과 충만함은 단짝이다”
“공허함의 밑바닥에는 사랑이 있다”
“마음이 먼저 살쪄야 한다”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이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 자체를 존중해야 한다. 우리에게 타인의 삶을 평가할 권한은 없다.”
죽음에 대한 융의 이 말. “죽음은 끝이 아니라 이승과 저승, 두 세계를 연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