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안에 현실 소설 밖에 허구?
청년은 소설가를 지망생이다. 그는 평생 소설을 읽고 쓰기만 해도 행복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남자인 내가 소설을 써서 어떻게 먹고 살겠는가, 취업은 하겠는가, 결혼은 하겠는가가 고민이다. 어느덧 나이는 30대 초반이다. 이렇다 할 결과물이나 경제적 소득은 없다. 소설 쓰는 일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주변의 권유가 잦아지면서, 삶의 가장자리에서 허덕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 이러다가 그냥 막 노동꾼이 되는 것은 아닌가?” 불안해 졌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일이 힘든 것은 입구가 좁기도 하거니와, 함께 가는 사람이 드물어 외롭다. 남자인 내가 대중의 관심이 사라진 소설가 지망생인 것이다. 청년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와버린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편하고 굳은 의지도 생겼다.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왔으니 이제부터는 망설임 없이 가던 길로만 가면 된다.
그는 미국인 작가 스티븐 크보스키가 쓴 성장소설 《월 플라워》를 들고 나에게 왔다. 책은 벽에 핀 꽃처럼 삶의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이 중심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청년은 삶의 주변을 배회하는 책 속 주인공을 내담자로 생각하면 이 책이 더 재미있을 것이라며, 꼭 읽어 볼 것을 나에게 권했다. 이 책의 부제는 “삶의 가장자리에 서 있으면, 특별한 것들을 볼 수 있어”이다. 워낙 소설을 읽어내지 못하는 나는 약속을 못했으나, 직관력을 발휘하여 부제만으로도 이 책을 다 읽은 것처럼 착각했다.
스스로 삶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청년은 책 속의 주인공과 동일시했다. 나는 청년이 들려주는 소설 이야기에 특유의 본능적 공감 능력을 발휘하여 몰입했다. 그 시간에 그와 나는 소설 속에 있었다. 장자의 호접몽처럼 적어도 그 순간만은 소설 속의 세계가 진짜 같고, 소설 밖의 세계가 가짜 같았다.
나와 청년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는 즐거움의 극치에서 서로 만났다. 나는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를 소설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청년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성장소설에 녹아 있는 정신의 원형을 함께 만난 것이다. 사고는 멈추고 황홀한 감동만 존재하는 곳, 그곳이 바로 과학적 심리학 차원을 넘은 원형 심리학의 세계이다. 하지만 우리는 소설 밖으로 나와야 한다. 가짜인 세상에서 아직은 진짜인 것처럼 더 살아내야 한다.
청년은 어쩌다가 인생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됐다. 정말일까? 어쩌면 욕심 없이 정신세계를 위하여 헌신하는 그가 삶의 중심이고, 물질이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 많은 사람들이 가장자리인지도 모른다. 나와 청년은 소설 이야기의 절정에서 정점을 찍고 서서히 아래로 내려왔다. 정점에서 함께 공유한 그 느낌은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청년 역시 자신의 가장자리 경험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했다는 기쁨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고, 그 기쁨은 그의 삶에 힘이 될 것이다.
청년은 몇 달 동안 현실적인 고민에 치여 기쁨이 없었다고 했다. 그날, 나와의 대화에서 모처럼 큰 즐거움을 맛봤다고 했다. 우리는 단지 소설 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폈을 뿐이다. 청년은 책 속의 명 대사를 나에게 들려주고 상담실을 나갔다. 그것은 청년의 의지이기도 했다. “삶의 가장자리에 서 있으면 안 보이는 것이 보여요. 그러나 언젠가는 파티에 참여해야 해.”
마음순례 박성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