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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꽤나 Oct 14. 2024

졸업 - 전람회

졸업식에 듣는 노래

졸업식 노래

호들갑 떨지 말아야지.

초등학교 졸업식의 송사를 맡았다. 감상적인 말들을 써오기야 했지만, 또박또박 말하는 게 더 중요하다. 단상에 서서 대표로 말하는 시간, 떨리는 심장 소리는 이내 잦아들고 

대신 목소리가 떨려왔다. 호들갑 떨면 안되는데.. 


냇물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만나기야 하겠지. 하지만 지금 언니의 졸업장은 빛나고 있고,

바다에서 다시 만나자는 대자연의 신비가 깃든 운명의 약속을 품기에는 이 작은 마음이 쉽게 벅차..

 

흡, 울어버렸다.


어른들이야 “우리 꽤나가 정이 많네”라고 했지만 그저 기복이었고

몇몇 선배들은 “뭐야 쟤 왜 울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바다에서 다시 만나자니.. 이건 '첫눈오는날 만나자. 비가내리는날 만나자'와 같이

무모하지만 여느 영화에서 그랬던 것 처럼 지켜질것 만 같다. 그 모습을 상상하자니... 울컥한다.



이젠 안녕 - 015B

우리 고등학교는 교복 찢는 문화는 없었다. 대신 최대한 단정하고 멋지게 입고 오는 전통이 있었다. 후배들은 창문 너머로 누가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유심히 보고, 환호성을 지르거나 수군거리곤 했다. 내겐 레드카펫 행사였다.

나는 샤기 컷에 갈색 세무 가다마이(싱글버튼자켓), 셔츠와 넥타이, 통 넓은 청바지를 입고 등장했다. 아. 좀 과했나. 동대문에 옷 파는 형이 믿어보라며 화를 많이 내서 사긴 했다. 졸업식 아침 호탕하게 웃으며 친구들과 인사했지만, 이 옷이 맞나 싶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냥 기본을 입을걸.


우리 처음 만났던 어색했던 그 표정 속에 

가사 첫 소절부터 정서적인 타격이 크다.

졸업식이라는 이별의 순간에 처음과 만남을 이야기하다니.

심지어 어색했던 사이인데 이제는 ‘우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되어버린 친구의 매일 보던 얼굴을 보니

이제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고, ‘아니야 진짜 못 보겠어. 호들갑 떨지 말자.’하며 그 생각을 떨쳤다. 

휴대폰도 있고, 졸업앨범에 주소, 전화번호도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라고 했다가

영화 <러브레터>처럼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겠구나, 언제든 볼 수 있지만, 사실 멀어지겠구나, 이 졸업식은 내가 이별할 것이라는 약속이기도 하구나. 생각이 들 때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겠지요.

마음속 체념, 아쉬움이 들켰다. 

또, 흡 울어버렸다. 

아. 세무 마이 입으면 울면 안되는데.. 저 쪽 동대문 같이 간놈도 울고 있다. 녀석. 



졸업 - 전람회

한동준의 <사랑의 서약>과 같은 마음으로 학생들과 함께했던 교직의 첫해였다.

울면 호들갑이지. 담대하게 옅은 미소로 손을 흔들며 졸업식을 마무리해야지.

학교에 졸업식 관련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재생시켜 두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꽃도 받고, 사진도 찍고 세무 자켓은 아니지만 호탕하게 웃어 보이며 인사했다.


“가라! 놀러 오고!” 운동장에서 배회하며 학생들 붙잡고 우는 건

멋진 교사가 할 일이 아니다. 

‘누군가 또 부르겠지’ 은근히 기대하며 교무실에 있었다.

그때 전혀 날 부르지 않을 것 같은 한 제자가 찾아왔다.


그 아이는 나를 잘 따르지 않았다. 잔소리하면 대충 넘기고는 잘 가르치는 다른 선생님 이야기부터 키 크고 잘생긴 다른 선생님 이야기까지 해댔다. 한 학기 동안 날 인정하지 않던 아이였다. 그럼에도 입시 철 고생한 기억이 고마웠는지 사진을 찍자고 한다. 


그동안, 속 썩여서 죄송합니다. 


그 아이가 울며 안겼다.

난 울지 않았다. 담대히 졸업생을 달래 보내고 교무실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재채기 하듯 눈물이 터졌다. 


전람회의 졸업 가사 처럼, 내 꿈은 바래졌다.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쁘진 않았다.

문득 열심히 웃고 울었던 그 어린 날들을 떠올리니

나는 꽤 멀리 왔고, 빛바랜 지금에 기분 나빠하지도 않는 내가 안쓰러웠다.

세무 마이를 입던 나는 그 졸업식에 남아있다.

닿을 수 없는 옛날의 그 아이가 예뻤다.

그리고 오늘 졸업한 그 아이도 참 예뻤다.

속썩이던 그 아이도 닿을 수 없는 그 아이가 되겠구나.


그렇게 졸업식마다 울던 이유는

추억이 될 걸 알아서였구나.

울음기를 눈치챈 동료 선생님이

“쌤이 정이 많네”라고 말했지만

아. 나는 미련이 많은 사람이구나 했다. 




언제 만났었는지 이제는 헤어져야 하네
얼굴은 밝지만 우리 젖은 눈빛으로 애써 웃음 지으네
세월이 지나면 혹 우리 추억 잊혀질까봐
근심스런 얼굴로 서로 한 번 웃어보곤 이내 고개 숙이네

*
우리의 꿈도 언젠가는 떠나가겠지 세월이 지나면 '
힘들기만한 나의 나날들이 살아온 만큼 다시 흐를 때
문득 뒤돌아 보겠지 바래져 가는 나의 꿈을 찾으려 했을때
생각하겠지 어린시절 함께 했던 우리들의 추억들을
(그 어린날들을)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라라


<이젠 안녕>은 무한궤도 해체 후 만든 그룹인 015B의 곡으로, 015B의 정리를 준비하며 만든 곡이다. 무한궤도도 이별, 공일오비도 이별. 정석원 작곡가님이 잘 쓴 것도 당연하지만, 한국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대목이어서 중요한 곡이 나왔구나 싶다.

<이젠 안녕>이 대표 졸업식 노래인 것은 맞지만 전람회의 <졸업>도 꽤 멋진 곡이다. 가사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흥미롭다. 김동률이 직접 현악을 지휘 한 것으로 유명하다. 올드랭 사인을 전주로 곡이 시작되는 것도 신기한데 코러스는 신해철이다.

결국 마왕님은 어느 졸업식에나 나오는구나. 




졸업식에 듣는 노래

https://music.bugs.co.kr/track/91249

https://music.bugs.co.kr/track/61510

https://music.bugs.co.kr/track/30506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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