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 마지막 이야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대한 마지막 글이 아닐까 싶다.
15회와 16회는 백이진이 9/11 사태 중에 경험한 뉴욕 이야기가 많이 나와 반가웠다. 희도와 600일 기념 여행을 가기로 한 날, 9/11 테러가 발생하고, 이진은 뉴욕으로 급 파견된다(어째 UBS에는 기자가 백이진 한 사람인 것만 같은 느낌이다).
얼떨결에 이진이 다다른 뉴욕은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병원은 부상자로 가득 차 있고, 뉴욕은 말 그대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내가 레지던트 때 일했던 벨뷰 병원(뉴욕의 대표적인 공공병원)은 9/11 테러로 인한 부상자, 사망자를 가장 많이 치료한 병원 중 하나이다. 그 이후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9/11 테러 피해자들을 위한 클리닉을 운영 중이다. 그만큼 9/11 테러는 뉴욕시 전체의 트라우마다. 실제로 그 당시 벨뷰에서 일했던 교수님들로부터 비슷한 내용의 경험담들을 많이 들어왔던 터였다. 드라마의 병원신을 보며, 아마 벨뷰 병원이 2001년 9월에 저러지 않았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갑작스러운 트라우마에 노출된 사람은, 꿈을 통해서 자신이 경험한 트라우마를 재경험하고, 우울한 기분을 느끼며, 일과 중에도 트라우마가 마치 눈앞에 다시 펼쳐지는 것 같은 증상들을 보인다. 몸과 마음은 늘 긴장 상태가 된다. 또한,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왜곡된 신념(가령, ‘세상은 위험하다’, ‘아무도 믿어선 안된다’, ‘다 내 잘못이야’ 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은 일련의 증상들을 보이는 경우, 이를 급성 스트레스 장애(acute stress disorder)라 한다. 이 증상들이 4주 이상 지속되면 그때부터 PTSD라 진단한다. 백이진이 극 중에서 나희도에게 본인이 경험한 증상들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보면서 전문가를 통해 어느 정도 자문을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진이 경험하는 증상들만큼 와닿았던 것은 이진이 바로 술로 자신의 증상들을 달래는 장면이었다. 실제로 트라우마를 경험하여 PTSD혹은 급성 스트레스 장애을 앓는 사람들은 알코올이나 약물로 스스로의 증상을 달래는 경우가 많다. 비단 트라우마 환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중독을 앓을 위험성이 훨씬 높고, 이는 정신 질환의 증상을 알코올이나 약물로 잠시나마 억누르려고 하는 것 즉,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증상을 치료(self medication, 자가 치료)하려는 성향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진이 뉴욕 특파원으로 떠나는 날 극적으로 만난 희도는 이진에게 ‘너무 술에 기대지 말고, 힘들면 상담받아. 거기는 그런 거 잘되어있다더라.’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으며, 희도는 역시 대단한 아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쩜 끝까지 저렇게 맞는 말만 할까. 그것도 20년 전 그 시절에.
미국에 와서 나는 처음으로 상담이란 걸 받아봤다. 전에 글에도 쓴 적 있지만, 의과대학 시절 너무 마음이 힘들 때에도 나는 정신과 진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해 의학대학원을 진학한 나였음에도, 정신과의 문턱은 높아만 보였다.
뉴욕에서 레지던트를 시작할 무렵, 나를 제외한 모든 동기들이 정신분석/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한 살도 채 되지 않은 딸아이의 육아와 왕복 세 시간에 달하는 통근을 핑계로 상담을 시작하는 것을 미루는 내게 동기가 말했다.
너 정신과 의사잖아. 네가 네 정신 건강을 우선시 안 하면 어떻게 해.
그 말을 듣고 나도 그때부터 삼 년간 매주 심리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힘든 레지던트 기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잘은 모르지만 이진도 희도의 마지막 조언을 듣고 본인의 힘듦을 알코올이 아닌, 상담을 통해 해소한 게 아닐까. 10년 후 멋지게 성공한 이진을 보면서 혼자 그런 상상을 해본다. 또한, 트라우마를 겪은 후에, 트라우마 후의 성장을 이룬 것을 아닐까 짐작해본다.
드라마의 엔딩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드라마가 매우 희도-이진 커플의 시작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둘의 연애가 독특했던 것은, 둘이 서로 사랑했을 뿐 아니라,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사이란 점이었다.
이제 이 글을 끝으로 나도 여운을 가라 앉히고 <스물다섯, 스물하나>란 드라마에 안녕을 고하려고 한다. 잘 만들어진 예술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치유적 힘을 오랜만에 경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음에 감사한다. 부디 마무리되어가는 내 책도 독자분들에게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그와 같은 경험을 줄 수 있었으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