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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Dec 12. 2020

'코로나 블루'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

우울증, 그리고 정신 질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올해 초부터 지속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블루 (Corona Blues)'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감, 불안을 비롯한 정신 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첫 파도가 지나간 올해 6월에 시행된 미국 질병 통제 예방 센터 (CDC)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성인 30%는 우울/불안 증상을 경험했고, 13%는 약물 중독 증상이 시작되거나 사용량이 증가하였다고 한다. 또한, 지난 한 달간,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해보았다는 비율은 1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1)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조차 우울증과 자살률이 기존 해에 비해 많이 증가해서, 9월에는 우울 위험군에 속하는 사람이 20% 이상, 그리고 자살에 대해 생각했다는 사람들은 13.8% 에 달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2)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출처: Inside Retail)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고립, 취미 생활의 제한, 건강과 미래에 대한 불안, 경제적인 불안정, 이 모든 것들이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이 힘든 경험들이 우리가 정신 질병과 정신건강 서비스,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 질병을 앓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1. 정신 질병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은 코로나 시대 이전에도 존재했다. 건강과 미래에 적신호가 켜진 사람들도 물론 시기를 가리지 않는다. 경제적인 문제는 경제적 위기가 없어도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단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이 모든 것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규모로 발생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느끼는 사회적 고립은, 어떤 이들에게는 일상이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느끼는 우울감, 불안함이 스스로 납득이 가고 이해가 된다면, 평상시에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도 더 공감하기 쉽지 않을까. 정신 질병이 나약함이나 '다름'의 결과가 아니라, 고혈압, 당뇨, 암과 같은 질병처럼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러온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상을 경험하고 있다 (출처: Pixabay)

2. 정신 건강 서비스를 찾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으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정신 건강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3) 물론 단순히 비율적으로 정신 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탓도 있겠지만, 앞서 말한 우울감에 대한 공감대와 이해가 형성된 결과, 이에 대해 도움을 구하는 것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또한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부디, 이와 같은 경험과 트렌드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된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 


3.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계기가 되길. 

나를 우울하지 않게끔 하는 첫 단계는,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들이 뭔지 아는 것이다. 왜냐면,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과 우울하지 않게 도와주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가족, 친구들과 이 전처럼 교류하지 못하고, 취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예전처럼 살을 부대끼며 교류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향후에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가 끝난 이후, 이런 생활들이 가능해졌을 때, 이를 더 가치 있게 여길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활동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우울증을 예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4. 정신 질병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더 관대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최근 한 저명한 정신 의학 학술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기존에 정신 질병이 있던 사람들과 정신 질병이 없던 사람들 모두에게서 우울, 불안 증상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에 이미 정신 질병이 있던 사람들의 증상이 전반적으로 더 악화된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서 신기한 점은, 기존에 정신 질병 증상이 가장 심했던 사람들의 경우 오히려 우울, 불안 증상이 조금 완화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저자들의 가설 중 첫 번째는 바로, 정신 질병이 가장 심각한 사람들의 경우,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새로이 경험하는 현상들 (가령, 격리된 생활, 사회적으로 고립된 생활 등등)이 그들에게는 이미 일상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4)

나는 정신 질병을 가진 사람들에게 관대한 사회를 꿈꾼다 (출처: 게티이미지)

결국 제일 처음 논지와도 어느 정도 상통되는 이야기지만, 나는 우리 사회가 정신 건강에 대해 더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정신 질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더 관대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정신 질병을 가진 환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심한 낙인을 경험하고, 구조적으로 차별당하고, 인간관계에서 배척되고, 궁극적으로 사회의 낙인을 스스로 체화한다. 하지만,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경험했듯이, 우울, 불안, 더 나아가 정신 질병은 나와 먼 이야기가 아니다. 주변의 작은 환경 변화만으로도 우리의 감정이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 지금 우리는 단체로 체험 중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지금 우리가 느끼는 본인의 우울한 감정에 대한 공감을 타인, 그리고 정신과 환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시켜주시길 부탁드린다. 왜냐면, 우리 모두, 특정한 상황, 환경에서는, 언제든지 정신 질병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1) Czeisler MÉ , Lane RI, Petrosky E, et al. Mental Health, Substance Use, and Suicidal Ideation During the COVID-19 Pandemic — United States, June 24–30, 2020. MMWR Morb Mortal Wkly Rep 2020;69:1049–1057. 

(2) 보건복지부, 한국 트라우마 스트레스학회. 코로나 19 국민 정신건강 실태 조사.

(3) 신동아. 정신건강 상담소로 몰리는 청년들 “선착순 500명, 1시간 안에 마감”. 2020년 12월 4일 자. https://shindonga.donga.com/3/all/13/2257927/1

(4) Pan K-Y, Kok AA, Eikelenboom et al. The mental health impact of the COVID-19 pandemic on people with and without depressive, anxiety, or obsessive-compulsive disorders: a longitudinal study of three Dutch case-control cohorts. The Lancet Psychiatry. Epub ahead of 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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