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명 구독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지난주, 중독 펠로우 졸업식을 끝으로, 드디어 기나긴 수련 기간을 마무리했습니다 (공식 근무일은 6/30까지 입니다). 심리학부 4년 + 의과대학 4년 + 공중보건 석사 1년+ 레지던트 4년+펠로우 1년=총 14년이라는 기간을 정신 건강과 관련된 공부를 해왔네요.
중독 전임의를 마친 후의 진로에 대해 여러 가지 고민을 한 끝에, 현재 중독 펠로우 과정을 하고 있는 예일대 조교수로 코네티컷 보훈 병원에 스텝으로 남기로 하였습니다. 막연하게 레지던트로 맨하탄 보훈 병원에서 일하던 때부터, 보훈 병원에서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전에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미국의 전역군인들은 굉장히 잘 알려진, 자살 고위험군입니다. 따라서, 자살 예방은 미국 보훈 병원들의 최우선순위입니다. 전역군인들의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알코올과 약물 중독입니다. 그래서 예일대학교 중독 정신과 교수들은 대부분 보훈 병원 소속이고, 예일대 중독 펠로우들 또한 대부분의 근무를 보훈 병원에서 합니다. 군인 직업의 특성상, 트라우마를 가진 환자들도 많습니다. 맨하탄, 그리고 현재의 코네티컷 보훈 병원에서 일하면서, 미국 보훈 병원들이 저의 주 관심 분야인 자살 예방, 중독, 그리고 트라우마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고 (우연일지라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원하는 중독과 자살 예방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보훈 병원에서 일하는 것이 최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보훈 병원을 택한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의 의료 시스템 때문입니다. 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미국의 의료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으로 돌아갑니다. 환자들이 병원에 오면 병원에서 환자로부터 가장 먼저 얻는 정보 중 하나가, '어떤 보험을 가지고 있느냐'일 정도인데요. 보험이 없는 환자들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보험이 있다고 해도, '얼마나 좋은' 보험이냐에 따라, 그리고 병원이 해당 보험을 받아주는 병원이냐에 따라, 치료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지금도 기억나는 (미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의료 기관이라는) 메이요 클리닉의 소아 정신 병동에서는, 심각한 자살 시도 후, 중환자실에 머물다가 겨우 소아 정신 병동으로 전원 된 10대 소녀에게, 입원한 지 이틀 만에 보험사가 퇴원을 종용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보험사에서 비용 부담을 해주지 않을 경우, 하룻밤에 300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데요. 그때 처음으로 미국의 의료제도에 환멸을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뉴욕으로 온 후에도, 환자들에게 단순한 영상 검사, 혈액 검사를 하려고 해도, 보험사에서 거부하고, 심지어 환자에게 절실히 필요한 약물 승인을 거부하기도 해서 애태웠던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도 레지던트를 하는 동안 중점적으로 근무했던 세 개 병원 (뉴욕대 병원, 벨뷰 병원, 맨하탄 보훈 병원) 중 하나였던, 벨뷰 병원의 경우, 시립으로 운영되는, 의료보험이 없는 환자들이 대부분인 병원이었던 지라 (이 병원의 환자의 2/3 이상이 노숙자들입니다), 그런 일을 겪을 일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벨뷰 병원은, 환자들의 마지막 보루라고 불리는 병원입니다. 모든 병원들이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들이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몇 안되는 병원이에요. 여기서의 잊지 못할 경험들에 대해서도 나중에 글을 쓸 예정입니다). 하지만, 사립병원이었던 뉴욕대 병원의 경우도, 메이요에서와 마찬가지로 철저히 자본주의적으로 굴러가는 병원 문화에서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가령, 뉴욕대 병원의 경우 환자의 건강 상태와는 무관하게 의사들에게 무조건 적으로 오전 중에 환자들을 퇴원시키도록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환자들에게 하루라도 더 일일 입원비를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반면에 보훈 병원의 경우는, 한국 의료보험 체계와 매우 유사해서, 전역 군인들 (미국 인구의 7-8%에 해당) 모두에게, 전국의 모든 보훈 병원들 (총 150여 개의 3차 병원과 1400여 개의 지역사회 클리닉으로 구성)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관료주의적이고 비효율적인 운영으로 문제가 될 때도 많지만, 적어도 환자들에게 보험이 커버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치료를 못한다거나, 사용해야 할 약물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사립 병원들만큼 화려하진 않아도, 저는 의사로서 저의 성향에, 보훈 병원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마지막으로, 군생활 동안 카투사로 일하면서 미군에 2년간 복무했었던 경험이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었는데, 전역 미군인인 환자들이 너무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환자분들도 저의 배경을 들으면, 저에게 마음을 쉽게 여는 것도 장점인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막연하게 미국에 대한 동경을 품기 시작했던 것도, 미군 부대에서 생활하면서부터 였던 것 같기도 해요.
구독자 3000명에 감사드리고자 글을 쓰려고 했는데, 근황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아마 7-8월은 조금 여유가 생길 것 같아서, 보다 집중적으로 책을 위한 글들을 써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전 글에도 말씀드렸지만, 부족한 제 글을 사랑해주시는 구독자 분들 덕분에, 제가 글을 쓸 힘을 얻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만간 또 다른 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