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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종호 Sep 14. 2021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리다

넷플릭스 시리즈 <DP> 감상평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올림픽 내내 한 경기도 뛰지 못한 한 선수를 홍명보 감독이 승리가 거의 확정된 경기 막판에 투입한 것이다. 올림픽 메달로 인해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서는 한 순간이라도 그라운드를 밟아야 했기 때문에, 그 선수에게 병역 면제라는 '선물'을 하사하기 위해 홍명보 감독이 선심을 베풀어준 것이었다. 당시 전 국민이 조금은 생소한 선수의 병역 면제를 마치 자기 일 마냥 기뻐하던 기억이 난다.


화제의 넷플릭스 드라마, <DP>를 최근에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10년 전에 보았던 부조리한 군대 문화를 다룬 <용서받지 못한 자>라는 영화가 자연스레 오버랩되었다.

 

(아래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누구인가? (출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DP>를 본 예비역들이 PTSD를 경험한다는 기사들을 보았다. 정신 질병의 진단 기준서인 DSM-5에서는 PTSD 진단을 가능케 하는 트라우마를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거나 실제적인 부상을 입은 사건, 혹은 성추행/폭행'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극 중 조석봉 일병이 당한 수준의 심각한 가혹행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많은 장병들이 겪은 가혹 행위들이 PTSD를 일으킬 수 있는 심각한 트라우마에 해당한다. 물론 기사들에서 말하는 PTSD는 엄격한 정의의 정신과적 질병을 의미하기보다는,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에게 그만큼 군대에서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작용한다는 뜻일 것이다.


레지던트와 펠로우 포함하여 약 4년간 미국 보훈 병원들에서 일하며 수많은 PTSD 환자들을 만났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실제적인 전쟁 (주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병에서의 전투 경험)과 관련된 트라우마로 인한 PTSD를 호소했다. 아직까지 동료나 상사에 의한 폭행이나 가혹행위로 인한 PTSD 환자는 보지 못했다.


전투 트라우마 외에도 상당수의 미 보훈 병원 환자들은 성적인 트라우마 (military sexual trauma)를 호소한다. 실제로, 미국 전역 군인 중 여성의 경우 약 40퍼센트, 남성의 경우 약 4퍼센트가 성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1). 단순 수치에서 볼 수 있듯, 미 여성 군인들의 성 트라우마 문제는 엄청나게 심각하지만, 여기서는 드라마의 특성 상, 남성 군인들에게 초점을 맞춰야할 것 같다. 극 중 조석봉 일병이 겪은 가혹행위 중 상당수도 성 트라우마이다.


성 트라우마를 겪은 남성 군인들은 그러지 않은 남성 군인에 비해 우울증, PTSD, 중독 문제를 보일 확률이 2-3배(2), 그리고 자살 생각과 시도 가능성이 2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3). 또한 이들의 PTSD는 다른 트라우마로 인한 PTSD에 비해 치료하기가 더 힘든 것으로 알려졌다(4). 피해자들은 성 트라우마가 자신의 남성성을 훼손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심각한 수치심으로 사회적 고립을 느끼며, 소수는 성적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5). 전에 글에서 적은 적 있지만, 이 들은 거의 평생을 이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극 중 악덕 병장 황장수는 각종 가혹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출처: 넷플릭스)

정신과 의사로서 군 가혹행위들을 우려하는 이유는 비단 직접적인 피해자들의 정신건강 때문만은 아니다. <DP>에서 보듯, 가혹행위가 이루어지는 내무실에는 피해자와 소수의 악랄한 가해자들 외에도 다수의 방관자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가해자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그들 나름의 변명이 있겠지만, 군대에서 적극적인 가해자들은 어떤 이유로도 그 행위를 용서받을 수 없다. 모든 가혹행위는 상대방의 비인간화를 전제로 한다. 피해자들을 공감하거나 동정하면, 절대로 가혹 행위를 하지 못한다. 극 중 황장수가 조석봉 혹은 안준호에게 가한 가혹행위들은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체로 본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이처럼 잔혹한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짓밟을 때에, 수 적으로 대다수를 차지하는 방관자들은 크게 두 가지 선택지 앞에 놓인다. 첫째는,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것이고 (즉, 간접적으로 상부 혹은 외부에 가혹행위의 부당함을 제기하거나, 직접적으로 피해자의 편에 서는 것), 두 번째는,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다. 이 선택지 앞에 선 사람들은 대부분 후자의 선택지를 택하게 된다. 전자를 택할 경우, 본인 또한 무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자의 스탠스를 취하던 소수는 마찬가지로 가혹행위의 피해자가 되거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의, 혹은 타의로 인해 후자의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럼 후자의 선택지를 택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회 심리학에는 인지 부조화 (cogni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들이 자신이 평소에 믿던 신념과 다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을 때에,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 불편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행동을 바꾸려고 하지만, 행동을 바꾸지 못할 경우에는 자신의 신념을 바꾸게 된다. 이솝 우화에서 여우의 ‘신포도 일화’가 전형적인 인지부조화, 그리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합리화(rationalization)의 예이다.


내무실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 후임, 선임을 보는 방관자인 동료들에게도 이 개념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들을 동정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당한 가혹행위를 당하는 피해자들을 돕지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할 수도 있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혹은 직접적으로 가해자에게 분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불편한 감정이 오래 진행되고 본인이 이에 저항할 수 없을 경우, 심리적 불편감을 해소하기 위해 생각을 바꾸게 된다. 가혹행위를 군기 유지의 ‘필요악’으로 합리화하게 되며 가혹행위를 당하는 피해자는 ‘맞을 잘못을 한’ 사람, 또는 어느 정도 '가혹행위를 당할 만큼 부적응’한 사람이 된다.


걔는 맞아도 싸.


세상에 ‘맞아도 싼’, ‘맞아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 가혹 행위를 가하는 사람은 정작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피해자를 지목한다. 드라마에서 황장수가 안준호 이병을 싫어한 이유는 ‘와꾸(얼굴)가 맘에 안 든다’였다. 아마 자기보다 잘 생겨서 싫어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잘 생겨서 싫어한 게 맞는 것 같다. (출처: 넷플릭스)

군대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는 사병들을 흔히 ‘관심 사병’이라 한다. 우리는 이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지만, 이 말처럼 모순된 말도 없다. 사실 모든 사병들은 관심이 필요하다. 조국을 위해 꽃같은 청춘을 희생하는 청년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악랄한 군대 문화가 지속되는 것이다. 비뚤어진 군 문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탓하는 문화는 이제 사라져야한다.


인지부조화와 더불어, 방관자들은 가해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서적으로 피해자들에게서 스스로를 분리시킨다. 그들에게 공감하기보다는 그들을 비인간화 함으로써, 피해자들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 방법으로 스스로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과정을 통해, 한국의 군필자들은 '선택적으로 공감을 하지 않는 법'을 습득하게 된다. 나는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타인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이와 같은 군대에서의 경험 또한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를 보며 가장 마음 아팠던 장면은, 조석봉 일병에게 황장수가 신병들 군기를 잡을 것을 지시했을 때였다.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도 병장이었던 하정우가 밑에 상병한테 이와 같은 '군기 잡기'를 지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 장면이 특히 마음이 아팠던 것은 조석봉이 내무반의 가혹행위 최대 피해자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가혹행위로 고통받은, 왜곡된 군 문화를 경멸하는 피해자인 그를 가해자로 만든 그 순간, 그리고 그런 조석봉을 안준호가 마치 나무라듯이 말대꾸한 지점이 바로 조석봉의 자아의 분열을 가져온 게 아닐까 생각한다.


<DP>가 주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


대한민국의 예비역 중에서 이 드라마를 죄책감 없이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를 포함, 이 반복되는 악습을 끊지 못한 책임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는 군필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 중 대다수는 군생활을 할 때는 방관자였고, 제대 후에는 군 인권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예비역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사병들을 동정하고 연민한다. 갓 스물이 된 청년들에게 수십 년간 이어진 부조리한 군대 문화에 맞서 싸우길 기대하는 것은 가혹하다. <DP>의 오프닝 크레딧이 마음 아팠던 것은 너무나 순수했던 남자아이가 갓 어른이 된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한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극 중 조석봉이 자주 하는 말이다.

<DP> 1화에서, 구청장 아버지를 두었지만 아버지의 정치적 야심으로 인해 현역에 입대한 고경표가 분한 상병은 가라오케에서 금수저 친구들 한 명 한 명을 안준호에게 소개한다. '검은 머리 외국인'이어서 군대를 면제받은 친구. 가족이 의사여서 면제받은 친구, 아버지 회사에서 병역 특례를 하는 친구 등등 주변에서 흔히 볼 법한 소위 말하는 '빽'으로 국방의 의무를 기피하거나 편법으로 대체한 사람들이다.


극 중 정해인이 말한다.


"최원묵, 군대를 안 갔으면, 가혹행위도 안 당했을 거고, 그럼 탈영할 일도 없었겠죠?"


극중 조석봉 일병은 군대에 가지 않았더라면, 평생 착한 심성을 가지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용서받지 못한 자'는 결국 나라의 부름에 응한 청년들이 아닐까. 대한민국에서 '특권'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받지 못한 사람들. 그렇게 온 국민이 한 무명 선수의 군 면제에 환호할 만큼 국방의 의무가 기피되는 나라에서, 그 흔한 빽이 없어서, 편법을 쓰지 못해서 군대에 간 사람들. 그런 생각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참고 문헌

1. Wilson LC. The Prevalence of Military Sexual Trauma: A Meta-Analysis. Trauma, Violence, & Abuse. 2018;19(5):584-597.

2. Kimerling R, Street AE, Pavao J, et al. Military-related sexual trauma among Veterans Health Administration patients returning from Afghanistan and Iraq. Am J Public Health. 2010; 100(8): 1409-1412.

3. Belik SL, Stein MB, Asmundson GJ, Sareen J. Relation between traumatic events and suicide attempts in Canadian military personnel. Can J Psychiatry. 2009 Feb;54(2):93-104.

4. Voelkel E, Pukay-Martin ND, Walter KH, Chard KM. Effectiveness of cognitive processing therapy for male and female US veterans with and without military sexual trauma. J Trauma Stress. 2015; 28(3): 174-182.

5. Hoyt T, Klosterman Rielage J, Williams LF. Military sexual trauma in men: a review of reported rates. J Trauma Dissociation. 2011;12(3):24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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