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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Feb 02. 2022

<아이 엠 샘> 그 후 20년

달라진 것, 그리고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영화 <아이 엠 샘(I am Sam)>을 개봉한 지 20년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넷플릭스를 통해 관람했다. 이 영화는 20년 전에 한국에서 꽤나 인기를 끌었고, 다코타 패닝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고등학생 시절이었음에도, 이 영화를 일부러 보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 포스터를 보고 지레짐작으로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클리셰와 신파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탓 같다.

<아이 앰 샘>은 숀 펜이 지적 장애인 연기를 했다. (출처: 영화 <아이 엠 샘>)

그리고 20년이 지나, 영화의 샘과 마찬가지로 딸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관람한 이 영화는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아이 엠 샘>을 감독한 제시 넬슨은 영화가 개봉한 지 20년이 지난 2021년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원래 숀 펜이 연기한 샘을 실제 지적 장애를 가진 배우로 캐스팅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흥행에 실패할 것을 우려한 제작사의 반대로 정신 지체를 가지지 않은 배우들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샘의 친구 중 두 명을 실제 지적장애를 가진 배우들로 기용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샘의 친구들 중 두 명은 실제로 지적 장애를 가진 배우들이었다 (출처: 영화 <아이 엠 샘>)

그녀는 20년이 지난 지금의 사회라면 반드시 지적 장애를 가진 배우를 쓸 수 있었을거라 말한다. 나 또한 동의한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시대는 20년 전에 비해 훨씬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inclusive) 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법정에서는 물론이고, 어린 딸의 친구조차 샘을 '저능아(retarded)'라고 묘사하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사실 10 전만 해도 정신질병의 진단 기준서인 DSM에서 조차 지적 장애(intellectual disability) mental retardation('정신이 모자란다' 가까운 )이라고 명기했었다. 이와 같은 진단명은 2013년이 되어서야 새로 발간된 DSM-5에서 지적 장애인들을 비하하는 표현이라 하여 ‘지적 장애 대체되었다. 인상적인 것은 mental retardation 또한 기존에 쓰이던 '미미한 정신을 가진(feeblemindedness)', '백치(idiocy)', '저능(mental subnormality)' 같은 표현들이 비하의 뜻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대체한 용어였다는 점이다 (1). 현재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는 지적 장애라는 표현도 아마 미래에는 같은 이유로 다른 표현으로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조금씩 조금씩 진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은 점들 또한 눈에 띄었다. 20년 전의 미국의 풍경은 놀랍게도 지금의 미국과 큰 차이가 없었다. 스타벅스의 풍경이라든가, 건물들, 거리의 풍경들이 현재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음에 놀랐다. 스마트폰이라든가, 내비게이션, 미셸 파이퍼의 촌스러운 선글라스를 제외하면 아마 최근에 찍은 영화라고 해도 믿었을 것 같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미국의 풍경에서 미셸 파이퍼의 촌스러운 선글라스가 유독 눈에 띄었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지적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샘에게서 양육권을 뺏으려는 자들과 아동 보호국과의 법정싸움이다(현실에서는 좋은 일을 하는 아동 보호국 사람들이 악역으로 나온 것은 좀 안타까웠다). 그들은 끊임없이 샘의 낮은 지능이 왜 루시를 양육하는데 걸림돌인지 증명하고자 애쓴다. 샘의 변호를 맡은 리타는 반대로 어째서 루시에게는 샘이 필요한지를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결국 판사는 물론이고, 루시를 입양하고자 했던 위탁 부모들도 루시를 사랑하는 샘의 진정성을 깨닫게 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십 년이 지나도 샘이 보여준 부성애는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것은 샘이 ‘좋은 아빠’라는 엄연한 사실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부모의 자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성인이 된 루시는 잘 자라서 누구보다도 자기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참고문헌

(1) Harris, James C. New terminology for mental retardation in DSM-5 and ICD-11, Current Opinion in Psychiatry: May 2013 - Volume 26 - Issue 3 - p 260-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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