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소멸하는가
“요 몇 년 사이 집값이 많이도 올랐군.”
신문을 읽던 삼촌이 중얼거린다.
TV를 보며 요가의 메뚜기 자세를 따라 하던 정국이가 어느새 옆에 와서 거든다.
“정말이에요.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유행인데, 그중에서도 제일 무섭게 오른 게 집값이라고 들었어요.”
“집 장만 계획이 있던 사람들 마음이 무겁겠어.”
“그런데 삼촌, 저 예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어요.”
“뭐니? 말해봐.”
“사람들이 선호하는 새 집의 공급이 부족하면 새 집의 가격이 오르고, 새 집의 집값이 오르면 주변부의 낡은 집값도 따라 오른다는 건 이해가 돼요.”
“그렇지.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의 공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기존에 공급된 물건에 ‘희소성’이 생겨. 희소성이 생기니 가격이 오르는 건 당연하고!”
“웅웅.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한국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이라는 내용의 동영상을 봤거든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겠구나. 네 말대로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야. 독보적 수준이지. 국가 차원에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이것저것 하는 것 같은데 쉽지 않은 모양이더구나. 출산율이 떨어짐에 따라 총인구 역시 가파르게 줄어들 전망이야. 한국의 인구는 이미 2020년에 정점(5,184만 명)을 찍고 감소 전환 했어(현재 인구는 2023. 9 기준 5,156만 명). 게다가 감소폭에 가속도가 붙고 있지.
한국은 2025년부터 ‘초고령화 사회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화 사회로 분류되는데 한국은 전 세계에 유례없이 단기간 동안에 고령화 사회에서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단다.”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말이에요. 새 집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들어가서 살아야 의미가 있을 텐데 인구가 줄어서 거주할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냐고요. 그런데도 집값이 이렇게 고공행진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가요.”
“맞는 말이야. 결국 집에 들어갈 사람이 있어야지. 그런데 혹시 ‘세대수’라는 단어 들어봤니?”
“당연히 알지요. 결혼해서 부부가 되면 한 세대가 되는 거잖아요. 그러다가 부부가 아이를 낳으면 아이까지 3명이 한 세대가 되는 거고, 그 아이가 커서 나중에 독립을 하게 되면 세대 분리가 되어 세대가 하나 더 늘어나는 거고요.”
“맞아. 우리가 집값 이야기를 할 때는 이 세대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인구가 줄어든다고 해서 세대 수도 줄어들고 있느냐는 거지”
“당연히 세대 수도 줄어들고 있지 않을까요?”
“과연 그럴까? 대한민국의 인구는 2010년에 5천만 명을 돌파한 이래 완만하게 증가하다 최근에는 변곡점을 지나 감소가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야. 그럼에도 세대수는 꽤나 늘었단다.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약 1,987만 세대에서 2,279만 세대로 약 14.7% 증가했어. 서울만 따로 떼어내 살펴봐도 마찬가지야. 해당 기간에 인구는 5.56% 감소했는데, 세대수는 오히려 5.1% 증가했거든.”
“정말 그렇네요! 인구는 줄었는데 세대수는 늘었단 말은 한 세대당 인구가 줄어들었다는 뜻이겠어요.”
“그렇지. 과거에 비해 자녀를 적게 낳는데다 1인 가구나 딩크(DINK, Double Income, No Kids. 1986년경 미국을 중심으로 나타난 새로운 가족 형태. 결혼은 하되 아이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말함)의 증가 도 세대당 인구수 감소에 영향을 미쳤겠지.”
“아! 이해된다. 집의 수요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구 수보다는 세대 수란 말이겠군요!”
“집값을 결정짓는 변수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 시중에 얼마나 많은 돈이 풀려있는지,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자재비나 인건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등도 집값에 영향을 미칠거야. 당연히 인구 수도 그중 중요한 변수 중 하나지. 다만, 인구에 초점을 맞춰 집값을 분석하려면 인구수 자체보다는 세대 수가 조금 더 정밀한 지표라는 뜻이야. 세대원이 몇 명이건 통상 ‘한 세대’가 ‘한 채’의 집을 필요로 할테니까.”
“이해 돼요. 근데 세대수가 늘어난 지역이 많나요?”
“2017-2019년 동안 전국의 모든 지자체의 세대수가 증가했단다. 인구 감소가 심각한 지방도 세대수는 증가했다는 게 놀랍지 않니?”
✪ 흥미 충전
- 초소형 타입 주택의 인기
세대 당 세대원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들며 1~2인 가구에 적합한 초소형 타입 주택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에 맞물려 소형 주택의 평면도 진화하고 있는데, 집을 2개로 나눠 쓸 수 있는 세대분리형 평면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놀랍네요. 그러니까 인구 감소와 부동산 수요 감소 사이에는 꽤나 시차가 있을 수 있겠어요.”
“말하자면 그렇지.”
“그런데 아직까지는 세대수가 늘어난다고 해도 전체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면 세대수 증가에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요? 세대 평균 인구가 1보다 작아질 순 없을 테니까요.”
“맞아. 인구가 큰 폭으로 감소하기 시작하면 결국 세대수도 줄어들겠지. 이미 세대수 증가율도 꽤 둔화되었어. 출산율이 극적 반등할 수도 있고 정책적으로 외국인의 유입을 장려할 수도 있겠지만 대세의 흐름을 거스르긴 쉽지 않을 거야. 지방의 세대수가 먼저 줄어들 거고 결국은 대도시와 수도권의 세대수도 감소하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정말로 주택의 수요가 줄어들겠지. 그 시차를 어느 정도로 예상하느냐에 따라 투자로서 부동산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져야 해.
더불어 단순히 세대수만 볼 게 아니라, 주택에 대한 니즈와 구매력을 갖춘 세대수 인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해. 예를 들어 노인 단독으로 거주하는 세대수 급증이 주택 구매 수요로 이어질 확률은 낮을 테니 말이야.”
"세대수가 늘어나더라도 집을 구매할 여력이 있는 세대수가 증가하는 게 아니라면 통계적 착시를 일으킬 수 있겠어요. 집을 찾는 사람이 없어져서 집값이 단기간에 뚝 떨어져 버리면 사회적으로 엄청난 혼란이 오겠지요?”
“그렇지. 집값이 단시간 내에 담보대출이나 전세금보다 떨어져 버리면 말 그대로 난리가 날 거야. 그렇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도 향후 인구나 세대수가 본격적으로 감소하는 시점이 오면 공급량을 조절하거나 다주택을 장려하는 방식(중과세 폐지 등)으로 집값의 안정 혹은 연착륙을 도모하겠지. 이민 정책이나 외국인의 주택 구입 자격기준을 완화할 수도 있고 말이야.”
“휴, 정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네요.”
“기나긴 인류의 역사 중, 이렇게 인구가 폭증한 기간은 채 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산업혁명 이후 발생하는 모든 사건과 역사가 인류로서는 다 처음 맞는 일이라 볼 수 있어. 그러니 우리는 세상의 변화를..”
정국이가 삼촌을 따라 우렁차게 대답한다.
“항상 예의주시 해야 한단다!”
두 목소리가 겹쳐져 오묘한 화음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