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연금이 뭐길래
어느덧 정국이가 삼촌 집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이다.
“정국아, 짐은 다 챙겼어? 엄마랑 통화했니? 빨래한 옷들만 챙기면 빼먹은 거 없는 거지?”
“삼촌, 빼먹으면 어때요. 어차피 겨울방학에 또 올 건데! 그때 가져가면 돼요.”
듣기 좋은 너스레다.
“방학 아니라도 종종 놀러 와. 괜찮은 2주였니?”
“최고의 여름방학이었어요. 삼촌 덕분에 잠재되어 있던 뇌 속의 한 부분이 활성화된 느낌이랄까?”
“삼촌이야말로 정국이 네 덕에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단다. 괜찮은 조카와 더 최고인 수퍼 울트라 엑스트라오디너리 어메이징 어썸 삼촌...”
삼촌의 묵은지 같은 농담에 정국이가 얼른 말을 돌린다.
“그나저나 어제 라디오에서 흥미로운 사연을 들었어요.”
"일일드라마에 이어 이젠 라디오까지 듣니? 삼촌 따라 취향이 성숙해지고 있네?"
“사연인즉슨, 부부가 절약을 통해 오래된 다세대 주택 한 채를 장만했대요.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입지 좋은 역세권 구축 아파트로 이사하기 위해 짠돌이 모드를 지속하고 있나 봐요. 어느 정도 짠돌이 생활을 하고 있냐면 1년 내내 똑같은 반찬만 먹고 지낸다더라고요. 아무리 피곤하고 짐이 많아도 택시를 타는 것은 꿈도 못 꾸고요. 워낙 허리띠를 졸라매다 보니 아내와 남편 사이에 갈등이 생긴 거예요. 아내는 한 푼이라도 더 아껴서 하루라도 빨리 아파트를 구입하자는 의견이고, 남편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장만하는 과정도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 적당히 즐기고 누리면서 살자고 주장하고요.”
“흥미로운 주제다. 부동산 투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지. 정국이 네 생각은 어때?”
“음... 반반이에요. 매일 똑같은 반찬은 좀 심했죠. 그럼에도 절약을 통해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은 좋다고 봐요. 즐길 거 다 즐기다가 아무런 준비 없이 노후를 맞이하면 당황스럽지 않겠어요? 그래도 사연의 주인공은 이미 집이 있고, 추가적인 업그레이드를 하려고 절약하는 과정이니 꽤 건설적이잖아요.”
“그렇지. 아마 현재의 집도 절약이 몸에 밴 아내 덕에 마련했을 확률이 커 보인다. 나는 일전에 허세가 심한 부부의 사연을 들은 적이 있어.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후반 맞벌이 부부 이야기였어. 소득도 넉넉했지. 그런데 월급의 절반은 고급 오피스텔 월세로 내고, 나머지의 절반은 수입 중형 SUV 할부금으로 내고, 나머지 25%로 생활한다더라고. 본인들은 딩크족이라 재산을 물려줄 아이도 없어서 즐기며 살면 땡이라는 입장이었어. 오지랖일 수 있겠지만 나중에 나이 들어 은퇴하고 아픈 곳이 생기면 어쩔 셈인지 내가 다 걱정이 되더라. 그리고 지금은 딩크라지만 계획이란 건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거잖니.”
“삼촌 말대로 딩크나 비혼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것 같아요. 자산 증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젊은 시기에는 근력과 정신력이 쇠하는 은퇴 시점에 대해 상상하기도 어렵고요. 어른들이 하는 말 있잖아요. ‘너는 안 늙을 줄 아느냐고’...”
“맞아, ‘노화’나 ‘불확실한 미래’는 사람들이 회피하고 싶어 하는 주제지. 또 생애주기별 자산 형성 계획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것도 현실이고.”
“불확실한 미래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에요. 저도 개학이 코앞인 건 외면하고 있거든요.”
“삼촌도 일요일 저녁마다 월요일이 다가옴을 외면한단다. 아! 정국아. 너 주택연금이라고 들어봤니? 왜 자산의 증식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삼촌이 주택연금을 예로 들어 설명해 줄게.”
“주택연금이요? 집으로 받는 연금이란 뜻인가요?”
“맞아. 보유하던 집을 담보로 맡기고 자기 집에 그대로 살면서 매달 연금을 받는 제도야. 아무래도 나이가 많아지면 경제활동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잖니. 부부 중 1명이 대한민국 국민이면서 부부 중 1명이 만 55세 이상이면 연금을 수령할 수 있어."
"강남의 고급 아파트라면 연금액도 빠방 하겠어요."
"놉. 아무 집이나 다 가능한 건 아니야. 연금의 취지에 맞게 주택 가격이 공시가격으로 12억 미만이어야 해. 시세로는 15억~16억 정도 수준이라 보면 되겠네."
"강남의 고급 아파트 자가 보유자는 신청이 어렵겠네요. 뭐 이해는 가요. 어차피 그런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노후에 대한 걱정도 덜할 거고요."
“자, 그럼 비교를 통해 알아보자. 자가는 없고 월세로 살고 있는 A 씨 부부와 공시가격 3억짜리 집을 보유 · 거주하고 있는 B 씨 부부, 공시가격 9억짜리 집을 보유 · 거주하고 있는 C 씨 부부가 있다고 가정해 볼까. 세 부부 모두 60세에 주택연금을 개시한다고 해보자.”
“잠깐, 삼촌. A 씨 부부는 집이 없는데요?”
“그렇네. 그렇다면 A 씨 부부는 모아둔 저축과 국민연금으로 생활을 해야겠지. A 씨가 60세가 되었다고 집주인이 월세를 깎아주진 않을 테니 월세는 계속 지출되겠다.”
“반면 3억짜리 집을 가진 B는 저 표를 기준으로 매달 636,000원, 9억짜리 집을 가진 C는 매달 1,910,000원을 평생 받게 되네요!”
“게다가 부부 중 한쪽이 세상을 먼저 뜨더라도 남은 구성원에게 지급은 계속 이뤄지고, 지급 후 남은 잔액에 대해서는 상속도 가능해. 살던 집에서 계속 살면서 연금을 받는 방식이니 주거 안정을 중시하는 타입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와. 정신이 퍼뜩 드네요. 저도 집 한 채 있으면 된 거지 자산 가치를 올리기 위해 이사를 다닌다던가, 낡은 집에서 몸테크를 하는 건 과욕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거든요. 비혼이나 딩크라면 더욱 그렇고요. 그런데 삼촌 말대로 은퇴 후에 추가적인 연금이 전혀 안 나오는 것과 60만 원이 나오는 것, 180만 원이 나오는 건 천지 차이겠어요.”
“그렇지. 연금을 신청할 수 있는 공시가격 기준 역시 현재는 12억이지만 시대와 물가 수준에 맞게 계속 조정될 거야. 만약 성공적인 자산 증식을 통해 가격 기준을 훌쩍 넘기는 비싼 집에서 살고 있다면 주택연금 신청 자격이 안 되더라도 이미 성과를 이룬 셈 아니겠니. 그럼에도 주택연금을 받고 싶다면 집을 좀 줄여서 기준 가격 이하의 집으로 이사를 가도 무방하고 말이야. 매도 차액은 그 나름대로 든든한 저축이 될 테니까.”
“삼촌 말은 절약과 투자를 병행하면서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은 주택연금을 고려하지도 않을 만큼 재정적으로 여유로운 노후를 보낼 확률이 높단 말이죠? 이와 반대로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은 경우는 훗날 재테크에 무관심했던 시절을 아쉬워할 수 있구요.”
“뭐, 비슷해. 그런데 네가 들었던 라디오 사연처럼 극단적인 절약 방식도 경계해야 해. 돈이 많건 적건 정해진 수명은 있고 젊음과 일상을 학대할 만큼 가치 있는 건 없어. 미래를 대비하는 것과 후대를 위해 자산을 증식하는 것, 내 삶과 현재의 만족, 이러한 가치들이 밸런스를 이루는 지점을 스스로 알아낼 수 있어야 해. 그러려면 한 번쯤은 진지하게 내 생애 주기 별 현금의 흐름이 어떻게 이뤄질지 직시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지. 생각보다 더 오래 사는 시대니까 말이야.”
“과도한 절제도 과도한 방만도 아닌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 수준에서 절약과 투자를 지속해야겠네요. 투자에는 운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하니 겸손한 태도로요.”
“겸손! 정국이 이제 정말로 하산하거라!”
✪ 흥미 충전
– 부동산 규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면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펼까요?
정부는 [고가의 주택이나 다주택자에 대해 취득세를 중과]하거나, [단기 보유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가산]해 복수 주택 보유 수요, 투기성 수요를 차단합니다. [담보대출도 어렵게] 만듭니다. 일정 금액 이상의 고가 주택 거래 시엔 아예 대출을 안 해주기도 하고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을 막기도 합니다.
개인 신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주택 구매에 활용되는 신용대출 상한액을 규제] 하기도 하며,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의 [보유세율을 높이기도] 하고, 과열이 극심한 지역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핀셋 지정]해 실거주 수요를 제외한 거래를 제한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전방위적 규제책으로 인해 자칫 침체 지역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투기과열지구]나 [조정대상지역]로 지정된 지역을 기준으로 위의 대출 규제와 세금 중과 등이 이뤄지곤 합니다. 과열기에는 투기과열지구나 조정대상지역을 확대 지정할 것이고, 냉각기에는 해제의 폭을 넓히겠지요.
한편, 부동산 규제와 완화는 가격의 상승 및 하락에 후행합니다. 그 시차 때문에 부동산 하락기 초반에는 긴 상승기 동안 붙은 규제가 (시장 상황에 비해 과도하다 느껴질 만큼) 적용되곤 하고, 반대로 상승기 초반에는 긴 하락기를 거치며 (시장 부양을 위해) 각종 규제가 해제되거나 완화된 상태일 확률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