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30개를 사왔다.
오이를 사기로 결심한 건 오늘 오후 5시였다.
오이가 처음 떠오른 건 지난주 일요일이었다.
첫째와 둘째가 오이를 싫어해서 고민됐다.
간단하게 오이스틱을 할까 생각했지만, 너무 성의 없어 보일 것 같아 망설였다.
내일이 반찬 당번이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는 급식실이 없다. 교사 포함 90여 명의 반찬을 준비해야 한다. 네 명의 엄마가 하루씩 맡는다. 몇 번 해봤지만, 매번 부담스럽다. 특히 이 학교는 채식을 한다.
할 수 있는 반찬이 별로 없다.
요즘 채소 값이 금값이다.
가지와 오이가 비교적 저렴해 보였다. 하지만 가지 반찬은 늘 실패했기 때문에 남은 선택지는 오이뿐이다. 그런데 아들이 오이 냄새를 질색한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반찬을 선택했다.
오이 45개를 샀다. 1인당 오이 1/2개로 계산했는데, 다시 1/3개로 수정했다.
오이를 씻고 닦고 채칼로 자른다.
나에겐 산더미 같은 일감이,
아들에겐 체험학습처럼 느껴지나보다.
소금에 절인 오이를 면보로 짠다.
주르륵 초록색 소금물이 흘러내리고,
오이는 쭈글쭈글 엉겨 붙어 쪼그라든다.
소스를 만들어 뿌릴 차례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맛이 없으면 아이들이 뭐라고 할까?
창피할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했으니까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불안하다.
요리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결과일까, 아니면 통제할 수 없는 것일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나는 이 요리의 맛에 책임질 수 있을까?
어쩌다 나는 90인분 반찬을 해야 하는 학교에 아이를 보내게 되었을까?
처음 이 학교를 선택했던
까마득한 기억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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