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이 되었을 때 모 국립대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의욕적인 시작이라기보단, 개인적인 상실감, 좌절감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상 넘치던 자신감은 자연스레 줄어들게 마련이지만, 뒤늦게 다시 시작한 공부는 벅찼고, 3년 내내 좌절의 시간이 이어졌다. 공부의 끝을 경험했다기보다는, 어떤 비판과 비난에도 포기하지 않아야 끝(학위취득)을 볼 수 있다는 인내를 터득한 시간이었다.
지도교수님을 비롯해 여러 명의 교수님 앞에서 학위 논문 심사를 받을 때였다. 나 스스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만족감과 자만심에 우쭐했던 발표의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이게 웬걸, 내 논리와 주장의 빈틈을 파고드는 교수님들의 날 선 비판과 조언이 이어졌고, 보완할 내용들을 듣고 있자니, 말 그대로, 멘털이 붕괴됐다. 어쭙잖게 이어지던 나의 디펜스(논리적 방어)는 심지어 건방지다는 태도논란으로까지 이어졌고, 마침내 전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시던 지도교수님의 눈살까지 찌푸려졌다.
난데없이 과거의 대학원 과정을 들먹인 이유는, 바로 ‘별을 띄운다’는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누군가에게는 낯설 수도 있는 이 ‘별’의 의미는, 연구자가 자신이 증명해 보고 싶은 주제 또는 논리적 가설이 통계적으로 입증이 되는지를 확인해 주는 학술적 은어다(통계가 유효하면 별모양의 표식이 생기는 데서 유래). 즉, 내가 보려는 변수 간 상관관계가 유효하면 '별'을 띄웠다고 표현한다. 반면, 나의 새로운 주장이 '별'로써 증명되지 않으면, 그러한 주장은 그저 말의 향연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나의 학위 논문에는 총 6개 정도의 가설이 있었는데, 4개 정도의 가설에는 별이 떴고, 나머지 2개는 별이 뜨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경우엔,이론적 배경을 잘 설명하고, 논문의 취지와 현실적 제약들을 잘 덧붙이면,시행착오와 노력 그 자체에 높은 점수가 부여된다. 그래서, 원하던 결과치가 나오지 않더라도,학위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자신의 모든 주장이 통계적, 확률적으로 증명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논문심사를 받을 당시 나의 입장이 얼마나 난처했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상관관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쌍팔반점의 짬뽕 매출은 기온에 반비례하여 증가할 것이다”라는 주장(가설)을 예로 들어보자. 뜬금없고, 어이없는 이야기이지만, 편의를 위해서 이런 예를 든 것임을 양해해 주시길! 여기에서 (쌍팔반점의) 짬뽕 매출은 독립변수, 매출의 증가는 종속변수, 기온의 변화는 조절변수라고 하자. 원래, 학문적 용어를 쓰면 좀 유식해 보인다. 이제, 이 가설을 증명해 보도록 하자.
핵심은 온도가 낮아질수록 쌍팔반점의 짬뽕 판매량이 정말 증가하는지 여부다. 논리적 뒷받침을 위해 쌍팔반점 오픈 첫날부터 현재까지 매일매일의 짬뽕 판매 매출을 확인한다. 그리고, 짬뽕을 판매한 모든 날의 온도를 기록한다.
우선, 독립변수와 종속변수 간 상관관계를 확인해 본다. 이때 상관관계 확인을 위해서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통용되는 통계프로그램 패키지(SPSS, R, SAS 등)를 활용한다. 이 두 변수 간에 정(+)의 상관관계가 성립하려면, 짬뽕의 매출은 거의 매일 증가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의 논문검증에서 통용되는 상관관계의 오차범위는 많아야 +- 0.5% 수준이다. 안타깝게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가설의 핵심은 독립변수와 종속변수 간 상관관계에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조절 변수인 기온의 변화다. 수년간의 온도 데이터를 통계프로그램 수식에 대입하면, 기온의 변화, 즉, 온도가 낮아질수록 과연 짬뽕의 매출은 늘어나는지, 그 경향성이 확인될 것이다. 지난 2년 6개월의 시간, 날수로 치면 910일이다. 910개 정도의 데이터면 상관관계의 유효성을 측정하는 데 충분한 수치다.
아 이럴 수가! 조절효과가 입증*되었다. 이 결과를 토대로, 우리는 확실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우선, 기우제를 지내며, 매일매일 엄동설한이 이어지기를 기도하는 것 ㅎㅎ. 조금 더 생각해 보자면, 계절에 어울리는 메뉴를 준비하며 대비하는 것, 겨울이 다가오면 짬뽕 원재료를 미리 더 많이 주문해 매입원가를 할인하는 것 등.
* 물론, 이 가설은 사실이 아니다. 실제, 쌍팔반점의 짬뽕 판매는 시간이 흐를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지도, 그렇다고, 날씨가 춥다고 확연히 더 많이 팔리거나 하지도 않았다. 다만,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리라는 강한 믿음을 토대로, 오늘 하루도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이처럼, 공부도, 장사도, 사업도 무엇 하나 쉬운 건 없다. 예상을 빗나가는 일들의 연속이다.돌우물 역시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 하나의 주체(기업) 일뿐이다. 떡볶이로 시작해, 짜장면과 짬뽕, 커피숍, 인테리어업, 이제는 식품 소스류/육가공 제조공장 운영까지. 숨 가쁘게 달리며, 외견상 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다. 특히, 부족한 운영자금과 시설자금(공장설비 도입 등)을 조달하기 위해 사업 초기부터 다수의 (예비)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기업 IR(Investor Relations, 투자유치 및 홍보활동)을 지속했다.분명 성과가 있었지만,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IR 활동은 때로는 무엇이 회사의 본업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로 사람을 지치게도 하고, 실망시키기도 한다. ‘을’이 되어 기약없이 ‘갑’의 대답과 연락을 기다려야만 하는 초조함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회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모두 담아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은 전사적 노력과 시간을 담보로 한다. 예상과 다른 결과에, 자신감 있게 진행하던 사업계획이 유보된 경우도 있고, 이미 진행한 프로젝트는 급하게 다른 자금을 융통해 해결한 적도 있다.
다행히도, 돌우물은 좋은 파트너들을 많이 만났다. 사업 초기 매출실적이 적을 때, 대표의 비전과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엔젤 투자자가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했다. 그사이 인맥과 경력을 갖춘 사외이사가 합류했고, 그의 도움으로 타업종에 종사하는 법인, 그리고 개인투자자들로부터 수억 원에 달하는 2차 투자도 받았다. 또한, 투자 전문가로부터 좋은 피드백을 받고, 사업의 방향과 비전을 재정립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우리가 만난 적 없는 재무적, 전략적 투자자가 돌우물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의 세계는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원래, 정답이 없는 것이 투자자본시장이라지만, 그래도 내 상식 밖의 세상이다. 특히, (기업) 대출과 투자 간의 상관관계로 설명하자면, 아무런 유효성이 없다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 실제로, 국내외 학술정보를 제공하는 대국민 서비스인 RISS(리스,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자료를 검색해 보아도, 기업 대출과 기업 투자 간 상관관계를 확인해 주는 국내 학술논문이나 학위 논문은 한 편도 보이지 않는다!
직관적으로, 기업의 규모가 성장하고, 매출액이 증가하면, 기업이 조달할 수 있는 외부의 자금은, 은행의 대출금이든, 투자자의 자금(증자대금)이든, 증가할 것이라는 가설은 설정해 봄 직하다. 하지만, 실제로 직접 금융시장(자본시장)을 곁눈질로나마 경험해 본 입장에서 그러한 가설은 별을 띄우지 못할 것임이 강력히(!) 예측된다.
우선, 기업 대출은 기업의 과거 데이터(실적)와 현재의 사업내용, 미래의 사업계획을 모두 고려하여 결정된다. 기업이 운영을 통해 확보한 자산/담보물의 가치, 매출액이나 재무제표 등 과거와 현재의 상황이 중요한 의사결정 요소다. 금융비용 지급 능력이나 차입금 상환 여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금융(대출)은이른바, 신용(CREDIT)과 현실(REALITY)의 영역이다. 신용은 돈을 차입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 돈을 상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포함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고, 노력 여하에 따라 현실적으로 상향조정도 가능하다. 부분의 합으로 작용해, 사회 전체적으로도 신용사회 구현 같은 가치로도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요즘은 기업의 신용을 평가할 때 미래의 기업가치도 산출해 반영하는 등 미래지향적으로 바뀌고 있다. 어쨌든, 기업금융은 미래의 희망찬 구호에 쉽게 발목 잡히지는 않는다.
물론, 기업의 진정한 가치는 과거나 현재보다는 미래에 터 잡아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투자자라면 회사의 미래를 보고, 그 비전에 투자해야 옳다. 기업들도 당연히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집한다. 그런데, 그 비전(VISION)이라는 것이 누가 보느냐에 따라 가치가 천차만별이다. 양 자간 핏(FIT)이 잘 맞아야 한다. 기업 투자는, 같은 눈높이를 가진, 게다가 이해관계가 들어맞는 당사자들 간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세상을 바꿀 만한 새로운 아이템의 발견도, 신기술의 영역도 아닌, 대한민국의 조그마한 스타트업, 그중에서도 레드오션(FNB)의 한가운데서 생존경쟁을 펼치고 있는 기업이 미래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기업의 가치, 좀 더 단순하게 말해, 기업 주식의 가치는 미래 수익(현금) 창출능력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것이다. 즉, 기업이 앞으로 벌어들일 총수익을 이자율로 할인해 현재 시점에서 그 기업의 가치를 산출한 값이다.기업이 발행하는 주식의 1주당 가격은 본래 이렇게 결정된다.
따라서, 기업 투자(가치)는 이른바, 꿈(DREAM)의 영역이다. 기업의 미래를 영원한 것으로 가정하고, 미래의 수익 창출 금액도 추정(!)하여 산출하기 때문이다. 이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세상에서 말이다.
P(기업의 주식 가격) = PER(주가수익비율) ✕ EPS(주당순이익)
기업의 주가를 산출하는 수식이자, 재무학 교과서에 나오는 상식이다. 이 중 명확히 측정할 수 있는 것은 EPS(주당순이익)뿐이다. 일 년 동안의 매출액과 매출원가, 판매관리비와 영업외수익, 영업외비용을 토대로 산출되기 때문이다. 나머지 PER(주가수익비율)는 그저 투자자들의 희망사항이 투영된 멀티플(승수)일 뿐이다. 애당초, 기업의 미래 수익 창출액을 상상하여 추정하다 보니, 현재의 주식 가치를 정의하기 위해 그럴듯한 용어(주가수익비율)를 창조해 내고, 억지스러운 공식까지 산출해 낸 것이라는 의구심마저 든다.
2021년 3월 11일 쿠팡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다. 쿠팡은 이 기업공개를 통해 총 42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조 8천억 원을 조달했다. 1주당 공모가격은 35달러였고, 기업가치는 약 600억 달러로 평가되었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기업인 현대차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2020년 쿠팡의 당기순손실(당기순이익이 아니다)은 약 6천억 원, 2021년의 당기순손실은 무려 1조 6천억 원 수준이다.
2020년 9월 22일 국내 항암 면역 치료제 개발 전문 바이오 기업인 박셀바이오는 코스닥시장에 상장되었다. 당시 1주당 공모가격은 3만 원, 공모 금액은 총 295억 원, 기업의 시가총액 2,257억 원 수준이었다. 물론, 현재의 실적보다는 미래의 기업가치를 높이 평가해서 이루어진 기술특례 상장이긴 하지만, 2023년 현재까지 박셀바이오의 매출실적은 0원이다. 당기순손실은 2020년 13억 원, 2021년 40억 원 수준이다.
이 기업들의 실적을 위 수치에 대입하면, 원래는 주가는 마이너스로 산출되어야 한다. 아니면, 주가수익비율이 마이너스로 계산되던지. 이상한 마법이 벌어졌다.지금은 비록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더라도, 분명히, 머지않은 시간 내에 회사는 엄청난 수익을 창출할 것이고, 미래는 빛날 것이라는 꿈(DREAM)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로써, 투자의 세계는 나의 상식 밖 영역임이 증명되었다. 내가 대학원 과정을 거치며 보내온 수년의 시간은 분명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이렇게 엉뚱한 곳에서 보람과 뿌듯함을 선사해 주기도 한다. 반농담의 자조 섞인 푸념이기는 하지만, 정말이지, 투자의 세계는 잘 모르겠다.
다만, 돌우물이라는 회사가 현재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먹거리를 계속 찾고 있고, 소매에서 유통으로, 유통에서 제조로, 제조에서 수출로, 더 나아가서는 콘텐츠의 영역으로까지 진출하려고 노력 중이라는 점은 알겠다. 그리고, 그 길에서, 좋은 파트너들(투자자 포함)을 만나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 믿는다.
결국, 돌우물은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다. 별을 보는 그날까지 노력하는.... 부디 그 세계에서는 내 상식 밖의 일들이 계속 벌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