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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이삭 Aug 01. 2023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공무원 사회

위선과 거짓으로 점철된 공직

2022년 10월 29일.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참사가 이태원에서 일어났다.  사망 159명, 부상 196명. 앞날이 창창한 청년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압사당한 그 사고. 사고 이후 많은 언론에서 그 원인을 분석했다. 그리고 책임을 질 사람은 져야 했다. 분명 이 사고는 인재였고,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다. 어느덧 사고가 일어난지 7개월. 이러한 사고가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한 데 대해 겸허하게 책임을 지고 있는 공무원이 과연 있을까?


이태원 사고와 관련하여 용산경찰서와 용산구청 소속 공무원들은 사고 관리책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영 들려오는 소리가 찜찜하다. 공무원들끼리 서로 증언이 엇갈린다고 한다. 사실은 하나일텐데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고 국민들은 큰 상처를 입었다. 누가 더 잘못했느냐를 떠나 책임 있는 자들끼리 이렇니 저렇니 재판에서 논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 슬픈 현실이다. 필자는 말단 공무원일뿐이지만 같은 서울의 공무원으로서 국민 앞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필자가 경험한 공무원 사회는 책임 떠넘기기가 일상이었다. 당장의 이익과 순간의 위기 모면을 위해 거짓말을 일삼는 공무원을 너무 많이 보았다. 거짓말이 얼마나 횡행을 하는지 거짓말을 안하는 사람이 바보인 분위기다. 속아 넘어가는 사람은 무능한 사람으로 치부되고, 잘 속이는 사람이 능력자로 여겨진다. 공무원 사회의 현실이다.


관리자나 기관장이 좋아할 내용의 보고는 서로 보고하려고 안달이다. 때로는 남이 한 일을 내가 한 것처럼 꾸며서 보고하기도 한다. 반대로 관리자가 기분을 상하게 할 것 같은 부정적인 내용의 보고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보고하지 않으려 한다. 기관장이 성과를 꼭 내야 한다고 강조한 분야에서 실제로 성과가 나지 않으면 담당 국장은 과장에게 보고하라 하고 과장은 팀장에게 보고하라 한다. 울며 겨자먹기로 가장 아래 직급의 담당자가 보고하는 경우가 많다. 관리자는 책임을 지는 자리인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보고 과정에서 거짓말을 일삼으며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도 있다. 상사에게 보고를 하다 보면 상사의 질문이 나오게 마련이고 보고자와 상사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진다. 보고자가 여러명인 상황에서 일어난 사례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보고 도중 상사의 질책이 있었다. 그런데 그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이 아무런 죄 없는 후배 공무원에게 그 책임을 실시간으로 떠넘겨 버렸다. 그래놓고는 보고가 끝난 후 서로 웃으며 인사하고 아무렇지 않게 헤어졌다. 물론 그 후배 직원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으리라. 하지만 티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게 올바른 공직에서의 사회생활이라 배웠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공직사회가 병들어 있다.


관리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말단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업무 중에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내가 예상한 대로 업무가 추진되지 않을 수 있다. 솔직하게 내 업무역량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상사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 혼날 일은 혼나면 된다. 그게 사회인의 올바른 자세다.



‘Nobody learns without getting it wrong.'



사람은 실수하면서 잘못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봐 주고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관리자의 일이다. 하지만 공직사회에서는 이 모든 체계가 무너져 있다. 직급을 가리지 않고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떠넘길 수 있으면 떠넘긴다. 당장 질책만 안받으면 된다. 당장의 내 이익만 취하면 된다. 저열하고 저급하다.


한번은 참다참다 못해 이런 불합리함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적이 있었다. 공직사회에서는 속이고 거짓말한다 해도 그저 후배 직원이 꾹 참아내야 하는 불문율이 있기에 매우 튀는 행동을 했던 셈이다. 나름대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기도 했고 내 잘못이 아닌데 이렇게 당하는 것은 아니지 싶어 내게 책임을 떠넘긴 부서에 찾아가 공개적으로 따져 물었다. 내 당돌한 태도에 해당 부서장은 순간 당황한 듯 보였으나, 일단 흥분한 내 감정을 다독이며 나를 돌려보낸 다음 내 직속상사인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내 태도가 잘못되었다며 뒷담화를 했다. 팀장을 통해 이 사실을 전해들은 나는 매우 화가 났다. 그 부서장이 나를 험담한게 문제가 아니라 앞에서 하는 이야기와 뒤에서 하는 이야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문제를 제기하러 찾아갔을 때에는 내 말이 맞다는 식으로 편을 들어주다가 금새 내 직속상사에게 전화를 해 뒷담화를 하는 아수라 백작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지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하지 않고 항상 이런 식으로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공직에 모여 있다.


정직의 가치는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앞에선 웃고 뒤에선 공격한다. 더 뻔뻔한 경우도 있다. 앞에서 공격하고 앞에서 웃는다. 그래서 공직에서 성공하려면 뻔뻔해야 한다. 뻔뻔함도 능력이다. 앞에서 공격하고 앞에서 웃을 정도가 되려면 얼마나 뻔뻔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수조차 없다. 대놓고 그 사람의 험담을 하며 공격해 놓고서는 그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다시 웃으며 말을 걸고 시덥잖은 농담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당한 상대방도 그걸 받아낼 수 있는 멘탈을 갖춰야 한다. 가끔은 정말 공무원 사회가 무섭고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이세상 어느 조직에서 정치술수가 없으랴만 공직사회만큼 심한 곳은 없을 것이다.


만약 타고나기를 눈 하나 깜짝안하고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공무원을 평생직업으로 추천한다. 결코 농담이 아니다. 


이토록 거짓말과 속임수가 횡행할 수 있는 기반은 반복해서 말하지만 책임지지 않고 서로 떠넘기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공직문화다. 이는 어찌보면 공무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뉴스에서 이런 현실을 수도 없이 목도한다. 어떤 사람은 이런 문제를 토로하는 나에게 자주 위로하곤 했다. ‘우리나라에서 안 그런 회사가 어디 있느냐 다 그런 것이다.’ 라고.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위로는 되지 않았다. 공직사회가 그 어떤 곳보다 이런 현상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직자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잘못된 행동을 저지를 때, 알고 행동하는 것과 모르고 저지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알고 행동하는 사람은 그 리스크를 안다. 그래서 사후 교정 가능성이 있다. 리스크를 알기에 그 행동을 쉽게 반복하지 못한다. 그 행동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근본적으로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르고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는 사람은 교정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 아예 모르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라는 이야기다. 아무리 끔찍해 보이는 일도 남들이 다 그 일을 하고 있으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 나도 당연히 따라하게 된다.      


거짓말과 무책임으로 점철되어 있는 공무원 조직이 꼭 그렇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책임을 떠넘기면서도, 업무회피를 하면서도, 관리자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도, 놀면서 월급을 받으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의 현재 수준이다. 모두가 애꾸눈인 사회에서는 양 눈이 달린 정상적인 사람이 장애인 취급을 받는다. 정직과 성실과 같은 미덕의 가치가 옳다고 믿는, 열심히 살아온 누군가가 공직에 들어와 상처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공직사회에서 소모되지 말고 정직과 성실함으로 승부할 수 있는 분야에서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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