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잘할수록, 성과를 내면 낼수록 나에게 손해만 끼치는 사회구조가 있다. 바로 사회주의다. 모두가 평등하고 잘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이 위대한 사상은 결국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내가 아무리 일을 잘해도 똑같은 대우를 받으니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 근로의욕이 저하되었다. 사람의 본능을 무시한 이념의 최후는 독재자 혼자만 잘먹고 잘사는 세상이었다.
완벽하게 역사의 심판을 받고 실패로 증명된 이 사회주의 논리가 2023년에도 아이러니하게 적용되는 곳이 있다. 바로 공무원 사회다. 아니 어쩌면 사회주의 국가보다 더 못하지 않을까 싶다.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는 열심히 일하면 남들과 똑같이 대우라도 받는다. 그런데 공무원 사회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남들보다 같은 처우는 커녕 오히려 더 못한 대우를 받는 경우마저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면 호구 잡히고 이용만 당하며 그 열심에 대한 보상은 전혀 없다. 왜 더 열심히 하지 못하느냐고 오히려 미움을 살 위험마저 있다.
보통 신규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근무를 시작하게 되면, 그 부서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 배정된다. 신규 직원이니까 매사에 배려받고 업무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어야 하는데 관리자의 무관심과 선배 직원들의 이기심은 신규 공무원의 파릇파릇한 미래를 무참히 짓밟아 버린다. 어렵고 힘들어 아무도 맡기 싫어하는 일은 아무런 발언권도 없고 힘도 없는 신규직원에게 떠맡기기 안성맞춤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직원은 '처음이라 고생하는 거라고 누구나 다 시작은 힘든거야'라고 애써 자위하며 힘겹게 업무에 적응해 나가지만 경험 많은 고참도 힘들어 하는 업무가 그리 쉽게 적응이 되겠는가. 지치기만 할 뿐이다.
열에 하나 끝까지 버텨내고 이겨내는 신규직원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더 슬픈 일들이 벌어진다. 일을 잘하니까 꾹 참고 버텨내니까 일을 더 준다. 가스라이팅은 덤이다. ‘너가 에이스다. 우리 부서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라면서. 너무 힘들지만 주변 직원들의 칭찬과 격려의 힘으로 또 젊음으로 계속 버텨 나가기는 한다.
반기마다 돌아오는 근무평가 시즌에 이 직원은 관리자에게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어이없게도 가장 낮은 평가점수를 받는다. 이유는 ‘신규직원’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근무평가 시스템은 서열과 경력이 우선이다. 아무리 일을 안하고 핑핑 놀아도 선배직원이 좋은 근무평가 점수를 받게 되어있다. 신규직원뿐만이 아니다. 경력 5년차 직원과 6년차 직원이 서로 경쟁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6년차 직원이 무조건 좋은 점수를 받는다. 일을 열심히 할 동인이 완전히 사라진다.
고통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욕망은 모든 인간의 본능이다. 나쁜 것이 아니다. 이 욕망을 토대로 인류는 발전해 왔다. 열심히 일해도 내게 돌아오는 구체적 이득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신규직원은 이제 일을 열심히 하지 않게 된다. 그저 평범하게 남들 하는만큼 할땐 하고 안할땐 안하고 무색무취 시간만 가길 바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내 차례가 오면 당연히 나도 좋은 근무평가 점수를 받을테니까. 이게 공무원의 기본 마인드다. 그러니 공공기관에서 추진하는 그 어떤 일도 성과가 날리 없다. 그 일을 직접 추진하는 공무원들이 아무런 열정도 노력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심히 해도 내가 받는 이득이 없는데 왜 열심히 하겠는가? 뭐하러 아까운 내 정력을 쏟겠는가? 당연히 쏟지 않는다.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의 문제다.
필자가 직접 겪은 사례를 소개한다. 과거 어느 부서에서 근무하던 시기에 예상치 못했던 프로젝트 사업이 떨어졌다. 긴급하게 떨어진 업무였기에 당연히 따로 업무분장이 되어 있지 않은 일이였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했다. 동료 직원들을 위해 희생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자원하여 업무를 맡았다. 관련자료를 공부하고 발표 PPT와 동영상을 만드는 등 애를 써서 프로젝트를 마쳤다. 다행히도 결과가 좋았다. 나름 뿌듯하게 생각하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아뿔싸 비슷한 프로젝트 업무가 생길 때마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 일을 필자에게만 맡기는 것이었다. 마치 그 일이 처음부터 필자의 업무인 것처럼 계속 업무를 배정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였다. ‘당신이 해봤으니까.’ 이 얼마나 폭력적인 이유인가. 팀에 업무가 배정되었을 때 내가 하겠다고 나선 게 후회되었다. 그 한 번의 선택으로 이후 수차례 관련 업무에 끌려다니는 최악의 결과가 벌어졌다. 심지어 그 일을 한다고 원래 내가 하던 일을 빼주지도 않았다. 물론 나쁜 점만 있지는 않았다. 힘든 일을 감당하니 관리자의 인정을 받고 동료직원들의 대우도 달라지고 나에 대한 긍정적인 평판이 많아졌다. 하지만, 구체적인 이득은 없었다. 근무평가 점수를 좋게 받은 것도 아니고, 금전적인 이득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 순수한 노력과 열정이 아까웠다.
"노력. 그런건 그저 굶주린 야수의 먹잇감이 될 뿐이지." 다자이 오사무 <사양>
이뿐만이 아니다. 일을 잘하면 인간관계마저 위험에 빠진다. 내가 강연자료 업무를 잘 감당해 낸다는 소문이 기관 내에 퍼지자 다른 부서에서까지 관련업무를 비공식적으로 요청하기 시작했다. 물론 거절하려면 거절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거절하면 당연히 내 평판은 저하될 것이고, 내게 업무를 부탁하는 관리자들의 면도 볼 낯이 없었다. 경력도 많고 계급도 위인 선배 공무원들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다. 울며 겨자먹기로 할 수밖에 없었다. 조직에서 요구하는 대로 다 받아주자니 내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고, 그대로 하지 않으려니 조직 내에 평판이 깎이는 상황이었다. 나는 양자택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모두 싫었다. 이런 난처한 상황은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에 벌어졌다. 내가 남들처럼 적당히 평범하게 시간 보내면서 이득을 챙기려 했다면 애초에 벌어지지 않을 일이었다.
내가 아는 선배직원 중 한 분은 요령 있게도 자신이 일을 잘한다는 사실을 숨기면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선배직원의 특기는 이미지 편집이었다. 그분은 각종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하여 이미지를 보기 좋게 편집하고 말끔하게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알고보니 관련 직종에서 몇년 일하다가 공직에 들어온 케이스였다. 아마 사회경험이 있어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도 그 직원의 이미지 편집 능력을 모르고 있었다. 그 업무능력이 필요한 순간에도 그 선배직원은 자신은 그 일을 할 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나서지 않으면서 생활했다. 그 일을 멋지게 한번 감당해냄과 동시에 이 직원이 그 업무분야에 특출나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고, 그 직원을 아무런 대가 없이 이용해 먹으려는 야수들의 먹잇감이 된다는 사실을 그 선배직원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시로 든 사례처럼 동영상 제작이나 이미지 편집과 같은 특수한 업무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공무원의 기본업무는 문서 작성이다. 한마디로 보고서다. 보고서를 잘 쓰는 직원으로 소문이 나면 역시나 착취당한다. 내가 근무하던 기관의 선배직원 한 분은 깔끔하고 깊이 있는 보고서 작성으로 인정받는 분이었다. 모두가 그 선배의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기관 내에서 중요한 보고서를 만들 일이 생기면 무지성으로 그 선배를 불러다가 일을 맡겼다. 당연히 그 선배직원에게 따로 주어지는 혜택은 없었다. 불합리한 지시에도 묵묵하게 일을 감당해내는 그 선배직원에게 아무런 보상이 없었다.
더 황당했던 건 최소한의 감사 표현조차 하지 않는 직원들이 많았다. 누군가 자신의 일을 아무 상관없는 다른 부서 직원이 해주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일을 대신해준 직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내적으로는 나도 실력을 키워 이렇게 신세지지 않고 다음에는 내 힘으로 해내리라 결심함이 온당한데 공무원들의 태도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일단 부끄러움이 없었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보였다. ‘내가 저 사람을 이용해서 내 고생 하나 안하고 일을 끝냈다.’라는 생각인 듯했다. 다른 사람 고생시키고 나는 편하게 살고 있으니 내가 승리자라는 도취감마저 느껴졌다. 백번 양보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일을 대신하며 고생한 그 직원에게 감사의 마음은 반드시 표현해야 함이 사회인으로서 기본매너다. 그런데 그것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지겹지만 다시 군대 이야기다. 군대생활을 하다보면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중간만 해. 잘하지도 말고 못하지도 마."
이 말은 군대라는 조직 특성에 기인한다. 군대는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곳이다. 군대에 가고 싶어 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입대한 그 날부터 전역하는 날만 기다린다. 군대에서 아무리 훈련을 잘하고 성과를 거두어봤자 의미는 없다. 사회에 나오는 순간 리셋이다. 그저 건강하게 전역만 하는게 최고다. 따라서 군대에서 무언가를 잘하면 내게 돌아오는 구체적인 이득 없이 고생만 하다가 전역하기에 ‘중간만 해’라는 격언이 나온 것이다. 공직사회가 이와 꼭 같다.
물론, 어느 한 분야에 전문적인 역량을 키워서 내 인지도와 평판을 높이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공무원들은 대부분 일정기간(2~3년)마다 근무부서를 옮겨 다니는데 그때 일을 잘한다는 평판을 무기로 내가 원하는 부서를 골라갈 수 있는 장점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게 골라간다 해서 내게 떨어지는 구체적인 이득은 역시나 없다. 성과금이나 인센티브는 당연히 없고 근무평가 점수도 이미 언급했듯이 경력 있는 직원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 운이 따른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1~2년 정도 빠른 진급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1~2년 진급 빨리 하자고 내일 남일 다 떠맡아 워라밸 없이 고생할 이유가 과연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것도 실무직원으로 생활하는 10~15년의 긴 시절을 말이다. 지쳐가는 당신의 몸과 마음은 어찌할 것인가? 게다가 빠른 진급은 노력보다는 관운의 여파가 크다. 운칠기삼이다. 그리고 진급을 위한 노력이란 것이 꼭 일을 열심히 하는 노력을 해야 빠른 진급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일을 위한 노력 말고 다른 노력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상사 술시중이다. 진급을 빨리할 수 있는 노력이란 여러가지다.
최근 인사혁신처에서도 이러한 불합리함을 고쳐보겠다고 나섰다. 서열과 연공 중심의 공직문화를 없애고자 다양한 대책들을 내놓았다. 경직된 조직문화와 불합리하게 일하는 방식을 일소하겠다고 한다. 무엇보다 직무와 성과에 따른 공정하고 확실한 보상으로 공직 내 성과주의를 강화한다는데 언론에 발표된 내용은 이렇다.
업무성과에 따라 7급 직원이 2년만에 5급으로 초고속 진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3년 이상 최상위 성과등급을 받은 공무원에게 50% 추가 성과금을 지급하는 장기성과급제도, 업무실적 우수자 1호봉 특별승급 제도 도입 등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일 열심히 하면 진급도 엄청 빨리 시켜주고 돈도 많이 준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인사혁신처에는 미안한 말이지만 수레만 요란하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대책들이다. 우수한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결국 근무평가 권한자들의 주관적인 판단이 기준이 될 것인데 이를 기준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성과’라는 것은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 객관적 판단으로 측정되어야 한다. 또한, 장기성과급을 주거나, 1호봉 올려준다 해서 하급 공무원들의 소득액이 크게 올라가지 않는다. 공무원의 성과급 규모는 민간기업에 비하면 매우 작아서 성과금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굳이 의미를 두자면 국가 차원에서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은 하고 있다라는 데에 작은 희망을 가질 수 있을 뿐, 실질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근간이며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직업공무원 제도의 개념까지도 재검토할 때가 되었다. 호봉제 폐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70년간 공무원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제도들을 원점에서 다시 살펴봐야 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돈 좀 더 줄게 진급 좀 빨리 시켜줄게 정도의 대책으로는 공무원의 근로의욕을 고양할 수 없다. 공무원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파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