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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값이 비싸다고요

보건소로 약값에 대한 민원이 들어올 때

by 이진영

“거기 보건소죠, OO역 앞에 △△약국 약값이 비싸기도 하고, 거기 좀 이상해요. 그러니까 그 약국 문 닫게 해 주세요.”

전화기 너머 민원인의 말투로 보니 약국에서 약값으로 실랑이가 있었나 보다 추측하며 나는 머릿속으로 대응 순서를 정리했다. 전화기 너머에 있는 민원인들은 공무원의 침묵을 3초 남짓 정도 견딜 수 있기에, 다음 불호령이 떨어지지 않으려면 빛의 속도로 생각하고 순발력 있게 답변해야 했다.

충북 음성 한독의약박물관 내 과거 약국모형

첫 번째, 우리 보건소 관할 구역이 맞는지 생각했다. OO역이면 우리 지역이 맞던가? 약국 이름을 듣는 순간 바로 내부 시스템에서 검색해 보았다. 이런, 우리 보건소에서 허가한 약국이 맞았다. 아니, 오히려 잘 되었다. 여기 관할 약국이 아니니 다른 보건소로 전화하시라고 말하면 더 크게 폭발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두 번째, 발생한 일이 법을 위반한 것인가 생각했다. 검색하기 쉽도록 항상 열어두는 법제처 사이트에서 약사법을 찾아보았다. 보건소에서는 약사법에 근거하여 약국을 점검, 위반 여부에 따라 행정지도 또는 처분할 수 있는데, 약사법과 그 하위 법령에는 약국의 약값 적정선을 규정하지 않고 있다. 이쯤에서 나는 생각을 멈추고 민원인에게 답변했다.


“선생님, 보건소에서 약국 개설 허가를 내주는 것은 맞지만 약국 문을 닫게 하는 건, 약사법 위반으로 폐업 처분받을 때만 가능해요. 그런데 비싼 약값만으로 약국을 처벌할 수는 없어요. 약값은 보건소에서 관여할 수가 없거든요. 이 점은 양해 부탁드려요. 말씀하신 그 외 사항들은 저희가 수시로 약국 점검을 가니까 꼭 확인해서 필요시 행정 조치하겠습니다.”


모든 지자체의 보건소에는 약무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다. 소속된 과는 보건소마다 다를 수 있어도 팀의 명칭은 약무팀, 의약무팀, 의약팀 등 비슷하다. 지방약무직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보건소로 발령을 받으면 주로 이 팀에 배치되어 약무 업무를 맡는다. 공무원의 업무 범위는 법을 기준으로 나누는데, 약무에 해당하는 법은 약사법, 마약류관리법, 의료기기법, 화장품법 등이 있다. 보건소에서 일하는 공직약사는 이런 법령에 따라 약국, 마약류취급자, 의료기기판매업자, 안전상비의약품판매업자(편의점) 등을 관리하고, 이에 관한 민원을 처리하는 일을 한다.

향정약.jpg 마약류에 해당하는 향정신성의약품

약국에 대한 민원 중에는 약값이 차지하는 지분이 꽤 높다. 약에는 권장 소비자가격이라는 개념이 없다. 약국에서는 도매상으로부터 사들이는 가격과 인건비, 시설 유지비용 등을 고려하여 자체적으로 약값을 결정한다. 소비자의 알 권리도 존중되어야 하기에 타이레놀, 후시딘 연고와 같은 일반의약품에는 판매가격을 명시하도록 약사법에 규정되어 있다. 의사의 처방 없이 약국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의약품을 일반의약품이라고 하며, 포장지 외부에 일반의약품 표시가 인쇄되어 있다. 그러니까 다른 곳보다 비싼 약값은 약사법 위반으로 볼 수 없지만, 일반의약품이 얼마인지 가격을 도통 알 수 없게 해 두었다면 약사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일반의약품.jpg 일반의약품

최근 전국적으로 창고형 대형약국 개설 소식이 들려온다. 도매상으로부터 대량으로 물품을 사입하면, 개당 가격이 감소하여 최종 소비자가가 낮아지는 시장 구조가 약국에도 도입된 것이다. 같은 약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으니, 구매자에게는 기쁜 일이지만 소규모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들에게는 비상이 걸렸다. 대규모 자본에 맞설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소형 약국은 버틸 수 없다는 불안감이 약사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여러 지역의 약사회에서 보건복지부, 보건소에 관련 규정 신설을 요청하는 등 대책 마련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데일리팜, ‘수도권에서 지방까지 확산... 창고형 약국 개설 속수무책’ 2025.9.27. 자)


창고형 대형약국이라는 표현은 편의상 만들어진 용어로, 법에도 없는 말이다. 편의상 100평 이상을 대형약국이라고 정의했을 때 25년 10월 기준 전국에는 총 7곳이 있으며, 운영시간은 3곳은 9시간(10시-19시), 3곳은 12시간(9시-21시, 10시-22시)으로 조사되었다. 더 많은 대형약국이 속속 개설될 예정이라는 소문은 무성하지만, 시기나 실체가 불분명한 지역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데일리팜, ‘메가·메디·테라’... 창고형 약국은 어떤 상호 선호하나 2025.10.10. 자)


현재의 창고형 대형약국의 수 그 자체로는 지역 약국을 위협할 여지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100평 미만의 규모라도 유사한 유통 체계로 운영 중인 약국은 분명 더 많이 존재할 것이다. 외국에는 일본의 돈키호테, 독일의 DM, 미국의 월그린 같은 체인 약국이 이미 유명하다. 일부 관광객들은 입소문 난 해외 대형약국에서 우리나라보다 저렴한 의약품을 대량 구매해서 국내로 반입하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나라 의약품 시장도 변화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것이 당연하다.


소비자가 넓은 선택권과 저렴한 가격을 선호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익숙한 일이다. 다만, 그 소비 품목이 의약품이기에, 단순히 시장의 흐름에만 전 유통과정을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 공직약사의 시선으로 이런 사회 분위기를 볼 때, 의약품 오남용이 가장 걱정된다. 그렇기에 대형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는 소비자가 바르게 의약품을 복용할 수 있도록 복용법 안내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고, 소비자는 구매하는 품목이 정확히 어떤 약인지 알고 주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이 대량 구매한 약을 타인에게 권하며 나누는 것은 절대 안 된다. 모든 약은 의사나 약사와 상의하여 복용하는 것이 안전을 위한 원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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