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 vs 진짜 의약품 정보
코로나 시국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백신을 강렬하게 기다렸으면서 그와 동시에 시행된 백신 패스,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백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 모두가 혼란스러운 그 시기에 나는 식약처에서 가장 뜨거운, 백신을 관리하는 부서에서 근무 중이었다. 어느 날, 한 중년 여성의 전화가 사무실로 걸려 왔다. 그는 교양 있는 목소리로 코로나 백신에 대해 이것저것 나에게 질문하더니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전화받으신 선생님은 코로나 백신을 맞으셨나요?”
“네. 2차까지 맞았습니다.”
“진심으로, 선생님께서 건강하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나와 통화한 민원인 중에서, 내 건강을 빌어준 사람은 그분뿐이었기에 지금도 그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임신 중 해열진통제 타이레놀 복용이 자폐 위험을 높일 수 있어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인용한 미 보건당국 통계에 따르면 최근 자폐증 유병률은 2000년에 비해 4배 증가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또한 타이레놀 라벨에 경고문구를 추가하겠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지지했다. 그러면서도 FDA는 “연관성은 보고됐지만 인과 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라고 선을 그었다. (매일경제, ‘임신 중 타이레놀 먹으면 안 된다는 트럼프... 의사들은 괜찮다는데, 왜’ 2025.9.23. 자)
미국 산부인과학회 등 학계는 곧장 반박에 나섰고 우리나라 학계에서도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건은, 임산부들이 사용할 수 있는 해열진통제가 타이레놀뿐인 상황에서 국민의 불안한 마음만 가중하고 이렇다 할 결론 없이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주장을 번복하지도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도 않았고 이 사건은 ‘아님 말고’ 식으로 흐지부지 사라졌다.
이 사건을 보면서 코로나 시국에 식약처에서 근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의 전체 공직약사 생활 중에서 가장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힘들었으면서도 가장 많은 것을 배웠던 그 시절. 당시 전 국민 백신 접종으로 집단 면역을 확보하겠다는 정부와 백신 접종 강제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 간에 갈등이 있었다. 질병관리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비슷한 장소에 위치해서 같은 정문을 공유하는데 바로 그 문 앞에서 거의 매일 코로나 백신 반대 집회가 열렸다. 집회장에는 커다란 스피커가 있어서 출퇴근 시간, 어떨 때는 점심시간에도 “나 차라리 코로나 걸릴래”, “코로나 백신 아웃” 등의 구호가 들려왔다.
2021년 12월, 코로나 백신 안에 괴생명체가 있다는 괴담이 등장했다. 일부 사람들이 해외 기사를 인용하며 백신을 접종하는 순간 괴생명체의 조종을 받을 거라고 주장했다. 이후 집회는 백신 패스에 대한 반대에서 코로나 백신 자체에 대한 반대로 성격이 바뀌었다. 백신을 포함하여 생물의약품의 제조·수입·안전성 정보를 관리하는 부서인 우리 사무실 전화기는 불이 났다. 여러 기관, 여러 부서에서 백신에 대한 항의 전화를 모두 우리 부서로 돌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코로나 백신 당장 취소하라고!”
“코로나 백신 안에 뭐 들었는지 공개해!”
허가 취소는 법령 위반이 아니고서야 일개 말단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요.
백신 포함 의약품 전 성분은 식약처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에 공개되어 있습니다만.
실제로 하고 싶은 위와 같은 말은 마음속으로만 하고 ‘불편감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식약처 공식 발표를 믿어달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지금 코로나 백신은 국가에서 주관하는 필수 예방접종 대상에 해당하지 않으며 주목하는 언론도, 인플루언서도 없다. 코로나 백신 괴생명체 괴담은 한때 많은 사람들을 뒤흔들었지만 이제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게다가 코로나 백신을 최종 3차까지 맞았음에도, 이름 모를 여성분이 나의 건강을 빌어주었음에도, 나는 지금까지 두 차례나 코로나에 걸렸다. 백신 안에 나를 조종할 괴생명체를 넣을 정도로 과학이 발달했다면 이렇게 무력하게 바이러스 따위에 졌을 리가 없다. 아마도 백신이 심었던 항체의 형태는 지금 내 면역체계 내에서 까맣게 잊혔을 것이다. 결국 코로나 백신도 세월 앞에서는 무력했다. 그렇기에 질병관리청은 해마다 코로나19 고위험군에 대한 백신 예방접종을 당부한다.
지금 다른 기관 공직약사로 근무하면서도, 나는 의약품에 관한 최신 정보가 필요할 때 식약처 의약품안전나라(https://nedrug.mfds.go.kr) 사이트에서 검색한다. 물론, 이 사이트에는 코로나 백신의 전 성분이 공개되어 있고 심사 보고서도 일부 공개되어 있다. 그리고 식약처 공무원이 직접 이 사이트에 행정처분, 품목허가, 안전성 정보 등을 게시하므로 어떤 뉴스보다 더 정확하다. 식약처 공식 보도자료도 여기서 확인할 수 있고, 출처를 알 수 있도록 자료 하단에 담당부서 명칭이 기재되어 있다. 정확한 자료를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정부 안팎에서 일하는 전문가를 신뢰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