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행기 -27
여행을 하다보면 언젠가 사고를 한번 당하거나 내가 사고를 치겠다고 긴장을 하고 다닙니다.
조금의 긴장이 여행을 안전하게 만들어 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빨리 사고가 터질 줄은 몰랐습니다.
1인실에 단독 화장실까지 있는 편안한 방에서 충분한 휴식을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하루를 만끽하기 위해 조식도 챙겨먹고, 여느 아침과 달리 더욱 힘이 넘쳤습니다.
하지만 사고는 긴장이 풀릴 때 다가오는 법이죠.
조식을 먹고 씻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휴대폰을 보며 양치를 하고 있었는데,
마른 바닥임에도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습니다.
타국의 잠긴 방 안에서 다쳐 사늘한 시체로 귀국 할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눈 앞의 변기를 잽싸게 잡았습니다.
다친 곳은 없었습니다.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초 후, 물 내리는 변기 배수통에서 바닥으로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넘어지면서 관을 잘못 건드렸나 봅니다.
쏟아지는 물을 보고 당황해서 잠글 생각은 하지 못하고 수건으로 막아 보지만 터져버린 관에서는 쉴 새 없이 물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습식 바닥이 기본인 우리나라와 달리 건식 바닥인 화장실에는 물 내려가는 배수구가 막혀있습니다.
물이 쏟아지는 관을 막아도 보고,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수건을 겹쳐 깔아도 보아도 물은 도무지 멈출 생각 없이 나왔습니다.
30분이 지나고, 물 빼내는데 지쳐 가만히 앉아 있다보니 드디어 관을 잠구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관을 잠구니 물이 똑 똑 떨어집니다.
아까보다는 한결 괜찮아 졌습니다.
아침부터 난리를 치다 보니 벌써 체크 아웃할 시간입니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체크아웃 하고 나갈 수는 있지만,
그러기에는 양심이 찔립니다.
카운터로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같이 화장실로 가서 확인을 했습니다.
카운터 직원은 사장과 전화 통화를 하더니 괜찮다고 하며 오히려 저에게 다친 곳은 없는지 물어봅니다.
다행입니다.
혹시 제가 물어내야 할 돈이 있는지 물어보아도 괜찮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마음 놓고 체크아웃 할 준비를 했습니다.
아침에는 기운이 넘쳤지만 사고를 한 번 치니 이제 힘이 빠집니다.
카페에 들려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이 카페에서 카드를 도난당해 여행 경비의 비상금 전체를 도둑당하기도 했는데,
이 일은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죠.
이 때 까지만 해도 몰랐으니까요.
어쩐지 오늘 운수가 괴상하게 좋더니만 이라는 명대사가 떠오르는 아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