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은 날엔 떡볶이

by 김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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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떡.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즐겨 배달시켜 먹는 음식이었는데, 웬일인지 이젠 시켜 먹을 기회도 별로 없다. 그러다 오늘 갑자기 생각나서 배달앱을 들어가 주문했다. 한때 여러 번 시켰던 메뉴도 맛 단계가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착한맛, 초보맛, 덜매운맛, 오리지널, 매운맛. 내가… 먹던 맛이 무슨 맛이더라? 매운 걸 좋아하고 잘 먹는 나이기 때문에 ‘착한맛’은 아닐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초보맛’을 주문했다. ‘덜매운맛’에서 망설였지만 만일 욕심을 부려 생각보다 매운맛을 먹으면 눈물 콧물 다 뽑을 것 같아서…. 30분 정도가 지나자 그렇게 기다리던 엽떡이 도착했다. 떨리는 손으로 함께 온 주먹밥을 비닐장갑을 낀 채 비비며 동글동글 모양을 만들고, 튀김이 담긴 종이봉투를 찢었다. 그리고 커다란 엽떡 그릇의 플라스틱 뚜껑을 열었다.


아, 이거지!


감사의 마음을 담아 후다닥 기도를 올리고 추가 주문한 분모자부터 입에 물었는데 매웠다. 이거 맞아?


맵긴 매워도 주먹밥과 튀김까지 떡볶이 국물에 콕콕 찍어 배부르게 먹었다. 물론 같이 딸려온 쿨피스가 없었다면 좀 힘들 뻔했다. 내가, 쿨피스 따위에 감사하게 될 줄이야…. 엽떡이 처음 나왔을 때를 기억한다. 생각하기론 오리지널 한가지 맛밖엔 없었고, 지금보다 훨씬 매운맛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맛으로 나뉜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초창기엔 아마도 치즈가 기본 장착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기본 메뉴부터 치즈가 뿌려져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맛있게 잘 먹었지만, 이상하게 속이 쓰렸다. 이젠 초보맛도 못 먹는 위가 되었나? 나이가 들었나…?


태어나서 처음 먹었던 떡볶이를 기억한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엔 떡볶이를 모르고 살았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입학 후 학교 앞에서 파는 분식집의 컵떡볶이를 친구와 하굣길에 늘 사 먹던 기억이 있다. 당시 종이컵에 담겨 나오는 컵떡볶이는 500원. 엄마한테 하루에 500원씩 용돈을 받으면 늘 친한 친구와 컵떡볶이를 사 먹었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난 떡볶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친구와 하교하면서 컵떡볶이를 먹는 것이 루틴 중 하나였다. 수업을 마치고 친구와 컵떡볶이를 사 먹으며 집으로 가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나는 이제 떡볶이라면 환장하는 어른이 되었다.


매워서인가?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떡볶이를 배달시켰다. 어릴 땐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떡볶이가 어른이 되고 나니 귀해졌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제 떡볶이 한 입이면 평화로워졌고 이걸 부정할 순 없었다.


대학생이 되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한 경기도 과천을 떠나 외할머니가 계시는 서울로 이사 왔다. 살던 동네가 재건축하면서 부모님도 별거하시는 통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오랜만에 학창 시절을 보낸 동네인 과천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내가 졸업했던 초등학교 앞을 지나다가 그 옆의 분식집을 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 늘 컵떡볶이를 사 먹던 곳. 하필 시간도 초등학생들이 하교할 타이밍이어서 가게 앞은 키가 작은 어린아이들이 가득 줄지어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옛날 생각도 나고, 나도 모르게 홀린 듯 줄을 섰다. 빨리 떡볶이를 달라며 아무 얘기나 재잘대는 초등학생들을 달래며 주인 할머니가 종이컵마다 떡볶이를 국자로 푸고 있었다. 그러다 내 차례가 되었다.


“컵떡볶이 하나요.”


너무 오랜만이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겨우 내뱉었는데, 할머니는 “아휴, 아가씨는 안에서 먹고 가지.” 말하는 것이었다. 잠깐 망설이자 할머니는 “이건 아가씨한테 기별도 안 가! 안에 들어오면 오뎅 꼬치 하나 줄게!” 말씀하시기에 난 가게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가게 안은 비좁았다. 그 옛날 초등학생 때도 몇 번 들어온 적 있던 가게였지만, 성인이 되어 들어와 보니 안은 그때보다 더 볼품없기 그지없었다. 멋쩍어하던 것도 잠시, 할머니는 초록색 하얀 점박이가 박힌 그릇에 떡볶이를 가득 그리고 오뎅 꼬치를 담은 그릇을 들고 오셨다. 투박하게 내려놓고는 “먹어!” 외치는 모양을 지켜보며 마침 시장했던 나는 떡볶이와 오뎅 그릇을 남기지 않고 비웠다. 국물까지 싹 다. 그러다 이 집 떡볶이가 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생 때 컵떡볶이를 먹었을 땐 나름 매웠던 것 같은데, 성인이 된 후 먹어보니 떡볶이는 터무니없이 달았다. 케첩과 설탕이 버무려진 맛이라고 해야 하나. 고춧가루를 달라고 할까 하다가 그만두고 그냥 다 먹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카운터에서 TV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계셨다. 생각보다 빠르게 떡볶이와 오뎅 그릇을 비운 나는 계산하려고 카운터에 다가섰다. 계좌번호가 적혀 있기에 계좌이체를 하고, 송금 내역을 할머니께 확인받은 후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래전인데, 언젠진 모르겠다. 분홍색 머리띠를 내내 하고 다니던 애가 있었는데, 매일 우리 집 왔었어. 얼굴 보니 알겠네. 아가씨가 그 애 맞지?”


분홍색 머리띠라는 말에 나는 반응하고 말았다. “네, 제가 걔 맞아요.” 나도 모르게 반자동적으로 뒤돌았고 할머니는 껄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초등학생 시절, 분홍색 플라스틱 머리띠를 좋아해서 그 머리띠만 하고 다니던 나는 수업이 끝나면 친구와 학교 앞 분식집으로 달려가 컵떡볶이를 주문했다. 그러면 늘 한결같은 아줌마가 종이컵에 떡볶이를 퍼주셨다. 그분이 지금 이 할머니구나, 난 깨달았다. 그 자리에선 그냥 건강하시고 늘 번창하시라고, 인사만 하고 나왔는데 오히려 집에 돌아오니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었다. 작은 종이컵 안에 담기는 떡볶이를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의 표정까지도 할머니는 눈에 하나하나 담아두셨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후 별다른 일정이 없어 과천에 내려가지 않았다. 그 할머니가 그 분식집에 지금도 계시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김이 식지 않는 떡볶이 한 그릇을 내 마음에 남겨두셨다. 그 자리에서 5분 동안 먹으면 사라졌던 컵떡볶이 하나가 이젠 한평생 사람의 마음에 남게 되었으니 사람 일은 참 알 수 없는 인생의 연속이기도 하다.


떡볶이를 먹을 때마다 호탕하게 웃으시던 할머니 얼굴이 생각난다.



23.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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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날엔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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