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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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관해 쓴다. 글? 시를 처음 쓰기 시작한 아홉 살 때부터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내게 가장 많은 가스라이팅 가하는 상대다. 지금까지도 그는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고 낭떠러지 밑으로 밀어붙인다. 그러나 난 언제나 똑같은 결론으로 돌아오고 만다. 난 그를 사랑한다는 것. 어찌할 수 없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하는 상대, 그는 ‘글’이다.


어린 시절엔 사랑받기 위해 글을 썼다. 9살 때 담임 선생님께선 백일장 대회 참가자로 나를 추천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반 아이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시곤 했다.


“너는 나중에 커서 동화작가 하면 딱이겠다!”

“동화작가가 뭔데요?”

“동화책을 쓰는 사람. 선생님은 네가 동화작가가 되었으면 좋겠어.”


담임 선생님은 내 일기가 가장 재밌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일기 쓰는 숙제가 힘겹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두 장이나 세 장씩 일기를 썼다.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았는지, 하루에 일기를 두 번 쓰는 날도 있었다. 일기장 검사를 맡을 때마다 선생님은 도장을 찍어주시며 매번 다양한 코멘트를 남겨주셨다. 그 덕에 나는 일기장 걷는 시간이 되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선생님이 글을 칭찬하시며 나를 예뻐해 주시는 것이 그저 좋았다. 그래서 난 담임 선생님이 추천했어도 백일장 대회에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내가 꼭 백일장 대회에 나가야 한다며 나를 여러 번 설득하셨고, 설득에 못 이긴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백일장 대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방과 후 몇몇 학생들(모두 5, 6학년 여학생이었다)과 함께 글쓰기 연습을 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 나는 어쩌다가 방정환 선생님의 이야기가 적힌 위인전을 읽었다. 그 책엔 방정환 선생님이 학우들을 모아 토론하고 웅변하던 일이 적혀있었다. 특히 어떤 학생의 웅변 내용이 상세하게 적혀있었는데, 그 글을 보면서 ‘아, 누군가를 설득하는 글은 이렇게 쓰면 되는 건가?’ 느낀 바가 있었다. 난 그 글을 예시 삼아 글 쓰는 방법을 터득했고, 백일장에 나가 최우수상을 타왔다. 상을 타오자 담임 선생님도, 부모님도 굉장히 기뻐하며 나를 칭찬했다. 다른 반 선생님들도 내게 소식 들었다며 아는 체를 했다.


‘아~ 이거네!’


무엇 하나 잘난 것 없고, 공부도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니었던 나는 글을 쓰면 칭찬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난 백일장 대회나 여러 글짓기 대회가 열리면 무조건 참가했다. 그럴 때마다 최우수상이나 금상을 받아왔고, 아쉬운 성적이면 장려상이라도 꼭 받아왔다. 전교생이 바라보는 구령대 앞에서 교장 선생님이 주시는 글짓기 대회 상을 받은 적도 여러 번 있다. 사랑받는 방법을 터득한 나는 초등학생 시절 내내 각종 백일장과 글짓기 대회에 참가했다. 물론 늘 상을 타올 수는 없었지만, 대부분 대회에서 작은 상이라도 타왔다. 덕분에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는 상장 이름으로 글자가 빼곡했고, 족히 12장 이상의 기록부가 될 수 있었다. 기세를 이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난 어른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글쓰기를 지속했고 글 쓰는 대회라면 늘 참가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서부터 글은 그냥 내 인생이 되고 말았다. ‘나’라는 사람과 떼려야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초등학생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담임 선생님을 ‘그냥’ 순수하게 좋아했기에 무조건 내 꿈은 ‘동화작가’였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꿈은 ‘소설가’로 자리 잡았다. 지고지순하게 집필을 지속하며 꿈을 지켜온 나는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7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나의 외길인생이 결과를 입증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여느 학교들처럼 그렇게 높은 경쟁률이라곤 할 순 없지만, 글로서 뚫은 이 시각적 수치는 우습지만 한때 나의 자랑이 되어주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더 폭넓은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 난 행복했다. 날밤을 까더라도 닥치는 대로 여러 장르의 글을 쓰며 경험과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했고 연달아 부모님이 별거하게 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 오고 말았다. 당시 대학생 2학년이던 나는 휴학을 감행하며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졸업하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꽤 피곤한 삶이었다. 물론 나만 힘든 시절을 보냈다고 칭얼거리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러나 밤늦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그때부터 책이나 교재를 읽고 비평문을 쓰거나 시와 소설, 시나리오 과제들을 처리하는 일은 확실히 고된 일임은 분명했다. 과제를 하는 것이 내겐 어느 정도 재미이긴 했지만. 때론 울면서 밤새 과제를 하다가 해가 뜨면 그대로 학교로 달려갔다. 자고 싶은데, 쉬고 싶은데, 이 부담감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그러나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어찌어찌 졸업한 후 회사생활을 하던 중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작가’란, 결혼하고 애 낳고 아줌마가 되어서도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일단 현실이 시급하다고. 현실이 우리 가족 또는 나의 목을 옥죄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물여섯 살의 어느 시점엔 글에 대한 애정을 버리자고 다짐했다. 어느 월간지 회사에서 행정직을 맡아 딱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만 월급을 받던 때였다. ‘글’이 있고 ‘출판’되는 책자가 있는 회사에서 행정직 편집기자로서, 글 가장 가까이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겐 큰 힘이 되었다. ‘그래, 꿈을 이룰 수 없다면 이런 삶도 꽤 괜찮지.’ 안심했다. 어떻게든 먹고살 만한 스킬을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던 때였다.


‘응, 난 이제 작가 지망생이 아니야.’


스물여섯 살이 되고도 좀 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확고히 다짐했다. 취미로는 글을 쓸 수도 있겠지만, 작가로서의 꿈은 포기해야겠다고. 다음 달 월간지에 실릴 기사를 검토하다가 갑작스레 깨달은 나는 글을 읽다 말고 바로 회사 화장실로 달려가 서럽게 울었다. 약 4년간은 그 월간지 회사의 행정직으로 살았다. 그렇지만 난 퇴근하고 돌아오면 다이어리에 꼭 조그맣게 일기나 글을 썼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했고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


한편, 끊임없는 나의 애정결핍을 따라 연애 상대는 여러 번 바뀌었다. 그들은 글을 향한 이전 나의 목표와 애정에 관한 이야기들을 배려심 있게 들어주었다. 그러나 딱 그뿐이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그는 나와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이었다. 나보다도 냉철하고 현실과 효율을 중시하는 그를 어쩌다 만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우린 싸우지 않을 때보다 다투고 싸우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내가 깊숙이 숨겨둔 꿈에 불을 지펴주었다. 본인 성격대로라면 그저 닥치고 열심히 일하며 살라고만 했을 것 같은데, 그는 나에게 끊임없이 용기를 심어주었다.


“넌 나랑 다른 사람이야. 다시 글을 써야 해. 내 눈은 정확해.”


그 누구도 내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없다. 이 말을 난 가슴 속 깊이 담아두었다.


글을 쓰지 않고는 살아내지 못하겠다고 다시 한번 깨달은 어느 날,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처음엔 자신이 없어 미루고, 미루고, 미루었지만 한 자라도 쓰기 위해 억지로라도 시간을 좀 더 들여 책상 앞에 앉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의 글을 다시 쓰기 위해. 남자친구가 아니었으면 하마터면 모를 뻔했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를 코앞에 두고도 놓칠 뻔했다는 사실을. 그 사이에 직업도 바뀌었다. 어느덧 나는 글이 있는 회사의 행정직보다 ‘편집자(에디터)’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편집자에겐 작가를 만나고 그 글을 편집하고 다룰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물론 내가 문장을 다룰 수 있는 범위는, 작가와 구체적으로 협의를 마친 딱 그 안에서 가능한 정도이긴 하지만. 그리고 마침내 온종일을 글과 더 오랜 시간 함께일 수 있는 이 직업을 사랑하게 되었다.


집안 사정이 나빠지지 않아서 글을 쉬지 않았다면, 난 대학생 때처럼 환영받으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어떤 이들은 지금 나의 글은 내가 대학생이던 때보다 못하다고도 한다. 가끔은 나도 정말 그렇게 느껴져 안타까움으로 온몸이 떨릴 때가 있다.


내가 쓰는 문장은 전혀 화려하거나 유려하지 않다. 아름답다기보단 솔직한 편이지. 그러나 그 점이 때로 누군가에게 어필될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지금은 뭐라도 열심히 쓰고자 한다. 글을 쓴다는 이 행위 하나만으로도 내 삶은 의미 있다고 말해준 남자친구 덕에 나의 새로운 삶은 시작되었다. ‘작가’가 되지 않아도 좋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 사랑받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어쩌다 그만, 내가 ‘그’를 사랑하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나도 알고 있다. ‘그’ 또한 가슴 속 깊이 나를 사랑해주고 있다는 걸.



2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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