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하루의 일과를 모두 끝내지 못했는데 못 견디게 피곤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보통 내일 하는 것으로 일을 미루기보단, 얼른 해치워버리자고 마음먹고 그 일을 하는 편이다. 그러나 말만 ‘해치워버리자’지, 한창 일하다 말고 시계를 확인하면 어느새 두세 시간은 훌쩍 넘어가 있는 것이 태반이다. 아무리 서둘러 일을 마치려 해도 대충 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만다. 나는 늘 한 가지 일에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어쩔 땐 그냥 일이 느린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힘들이지 않고 주어진 일을 매번 대강 처리하는 것보다 지금 나의 모습이 나아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게 최선일까 고민에 빠질 때도 있다. 또 이런 나의 모습을 답답하게 보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무엇보다 나날이 이런 식이면 정신이 맑은 날이 거의 없다는 것이 흠이다. 일을 미루지 않겠다는 마음이 ‘성실’에서 오는 것이면 좀 괜찮겠는데, 그게 아니라 나에게 있는 ‘강박’으로부터 온다는 걸 잘 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나는 굉장히 피폐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습지만 나는 ‘강박’으로부터 오는 동기로 움직일 때가 더 많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여러 종류의 강박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문단속에 대한 강박(문을 5번 이상 잠그고 확인해야 마음이 편하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으면 되로 갚아야 한다는 강박(그게 물질이든 말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렇다), 타인에게 어떤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강박(예를 들어 장녀처럼 보여야 한다는?) 등등…. 이처럼 여러 종류의 강박을 품고 사는데 이 강박이란 것이 나 혼자 있을 때도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중의 하나로, 모든 일을 마쳐야만 잠을 잘 수 있다는 강박이 있는 것이다. 이 습관 같은 강박을 없애기 위해 일을 다 마치지 못했어도 자야 하는 다른 이유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강박에 예민하고, 그로 인해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순서가 뒤바뀌어 버린 것을 알았지만, 고치기 쉽지 않다.
여러 해를 두고 이 강박 습관을 고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조용히 받아들이자고 다짐도 했다가, 강박에 다시 친숙해졌다가, 다시 곰곰이 내가 가진 강박을 관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어느 날은 조급한 마음을 미뤄두고 애써 잠을 청했다. 그러나 일을 끝마쳤다는 마음이 들지 않자 불편해진 나는 하룻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말았다. 그래서 또다시 밤을 지새워서라도 일을 쉬지 말고 끝마치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뭐, 이렇게 밤을 지새우나 저렇게 지새우나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다다른 결말은 이것이었다. 뜬금없기도 했는데, 어느 한 편으로는 강박이라는 나의 커다란 자아에 한 획을 그어준 깨달음이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이 질문을 내게 먼저 던지고 나니 답변에 자신이 없어졌다. 나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단 이것저것 다른 감정으로 온몸이 채워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 혹은 나는 나를 사랑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사랑이 아니었든지…. 아무튼 그렇다. 그래서 난 다시 결심했다. 일단 자보기로. 먼저 불을 끄고, 자리에 눕고, 이불을 덮고. 옆에 있는 인형을 꼭 끌어안아 보기도 한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일단 불 끄고 일찍 자자.”
이걸 몇 날 며칠 동안 시도해보기도 했다. 결과는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매번 한가지 방향으로만 실천하기보단, 나의 컨디션을 보고 그때그때 다르게 계획을 세워야겠다는 결말을 얻었다. 그러나 난 이제 피곤하면 자리에 먼저 누워 내 귀에 속삭여본다. 우선 한번은 해보는 게 중요하니까.
일단, 불 끄고 일찍 자자. 자보자.
2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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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끄고 일찍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