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작업을 위해 한 작가님을 만났다. 책 작업을 앞두고 앞으로 만들어질 책에 대해서 그리고 작가님의 취향이나 성향을 알기 위해 미팅하는 자리였다. 하필 그 전날 일정이 한가득 있던 탓에 난 잠을 거의 자지 못한 상태였다. 굉장히 피곤한 상태인 터라 오전 10시 전부터 커피를 두 잔이나 들이켰다. 점심 식사도 해야 하는데 배도 고프지 않고, 오히려 억지로 들이마신 커피 때문에 정신이 아득했다. 미팅하는데 피곤해 보이면 어쩌지 싶은 마음에 화장도 여러 번 고쳤다.
다행히 사당역의 한 일식집에서 만난 작가님은 굉장히 밝은 성격을 가진 분이었다. 조용한 성향의 작가님이라면, 내가 말을 더 많이 해야 할 텐데 그럴 수 있을까 걱정하던 마음이 금세 사그라들었다. 편집자인 내가 작가님한테 더 많은 어필을 해야 하는데도 걱정과는 달리 작가님은 오히려 내게 지속적으로 본인을 어필하고 계셨다. 나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이번 책도 잘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사실 아주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작가님의 말을 들으며 걱정이 먼저 앞서고 있었다. 내가 정말 마음에 든다며 천진난만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작가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어느새 잠은 조금씩 달아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작가님의 한마디 말이 귀에 걸렸다.
“저는 운이 아주 좋은 편이에요. 이번 책은 무조건 잘 될 거예요!”
이 말을 듣자마자 처음엔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어떻게 저렇게 확신할 수 있을까? 이거 괜히 내가 맡았다가 책이 잘 안되면 내 탓 되는 거 아닌가…? 문득 궁금해진 나는 작가님한테 어떻게 그렇게 잘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만나고 나니 왠지 책이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칭찬을 덧붙인 뒤 본인은 원래 엄청나게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밀려왔던 부담감은 확 사그라들었다. 나를 칭찬해서라기보다 ‘부담스러움’이 갑작스레 ‘부러움’으로 휙 바뀌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번 책이 정말 잘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작가님들을 만날 때마다 사실 부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 나도 작가로서 도전해본 경험은 여러 번 있기 때문이다. 저돌적으로 도전해본 적은 없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면 뭐가 그렇게 할 일이 많았는지, 늘 작가 데뷔는 저쪽 한구석으로 미뤄두어야 할 때가 많았다. 20대 때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다. 졸업 후엔 회사에서 이틀 혹은 삼일씩 집에 가지 않고 내내 근무하기도 했다. 새벽에 잠이 쏟아지면 불이 다 꺼진 사무실 구석에 자리한 소파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지낸 지 삼일 정도가 되면 짐을 싸서 집으로 가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피난 가나 봐” 속닥거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었는데…. 누가 눈치를 주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난 늘 눈앞에 닥친 일에 치여 살았다. 우습게도 나는 그런 내 모습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라 자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꿈을 간직한 채 남들보다 오랜 시간, 틈틈이 글을 끄적이곤 했다. 그렇지만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는 쉬이 오지 않았다. 어쩌다 한 월간지 회사에서 내게 집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긴 했다. 그를 두고 어떤 선배가 나에게 작가로 데뷔한 걸 축하한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이게 작가 데뷔인가요?” 부끄러워진 나는 되물었고 선배는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내 모습이 성에 차지 않았다.
물론, 내가 만나는 작가님들마다 허투루 작가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들 그만한 고충이 있었으리라. 그래도 평생 내 꿈이었던 일을 이룬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아주 조금이나마 부러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나의 노력이란 어쩌면 그들에겐 하찮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냥 논 것만은 아닌데…. 열심을 다 해 살아온 내 삶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에게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은 여전히 스스로에게 안타까움을 전해주기도 했다.
마주 앉은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언젠간 나도 내 책을 만들어주는 편집자에게 “저는 운이 좋거든요! 무조건 잘될 거예요!”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씁쓸한 기분. 한두 번은 아니었기에 동요하진 않는다. 그러나 난 결코 글쓰기를 쉬이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되지 못해도 계속해서 글을 쓴다면 누군가는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기억해주지 않을까. 무조건 운이 좋은 편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의 확신도 아직은 없다. 그렇지만 확신이 없기에 언제나 늘 최선을 다했던 자취가 남아있다는 것은 신의 선물이었다. 무엇보다 그 최선이란 딱 거기까지의 결과를 가져다주곤 했다. 항시 바라온 최종의 목표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난 그 최선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키며 살아올 수 있었다.
“작가님,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이 책은 무조건 잘될 거예요.”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마주 앉은 작가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작가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같은 한 달은 금세 지나갔다. 그리고 우리 곁엔 책 한 권이 남았다. 그녀가 집필한 여섯 권 책 중 가장 높은 판매지수를 기록한 채로.
2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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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less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