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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ding Sep 05. 2016

또 다른 이별, 다짐

헤어진 사람들을 위한 사랑 보관함#4

그녀를 만났고,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었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1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했고 그녀와 또 다른 이별을 해야 할 때가 왔다. 그렇게 앉아있던 정자에서 일어나 집으로 걸어갔다. 집으로 가면서도 그녀는 나에게 더 궁금한 게 없는지 이야기를 해줬고 뭐가 됐든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말을 해줬다. 무슨 말을 해도 잘 들리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동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냥 집이 가까워질수록 걸음이 더 늦어지길 바랬다. 예전처럼 동네 한 바퀴만 더 돌고 가자며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녀와 헤어질 때가 찾아왔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손 한 번 잡아보고 싶었고 한 번 안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서로를 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 있진 않았다. 그녀의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마음만 받고 내려왔다. 어디 하나 스치지 못하고 우린 또 다른 이별을 맞이했다. 잘 가라는 말만 남긴 채.


그녀의 집 앞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헤어졌다. 그냥 그렇게 가버리면 집에 들어가는 걸 볼 때까지 쫓아갈걸 알았는지 여기서 헤어지자고 말한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돌아섰다. 그리곤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 내 시야에서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집으로 내려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나도 그만 해야 할까?', '그녀는 어떤 생각일까?' 결국 또 혼자 상상하며 언덕을 내려온다. 혼자 중얼거리며 내려오다 보니 버스정류장이 보이기 시작했고 버스를 기다렸다. 금방 버스가 왔지만 타지 않았다. 그렇게 한대 두대 지나가니 눈에 띄는 파란색 버스가 멈춰 섰다. 그녀와 가장 많은 추억이 담긴 버스였다. 마지막엔 그렇게 파란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우리가 데이트했던 곳부터 추억이 숨어있는 동네를 지나 집 앞에 도착했다. 당연한 걸 알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해서. 1년 동안 헤어졌던 우린 그렇게 만났고 또 다른 이별을 했다.





누군가 물어본다. '그래서 좋게 끝났어요? 안 좋게 끝났어요?',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어요?' 글쎄다.  우리가 좋게 끝난 걸까?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을까? 아니 그전에 이런 질문들이 그렇게 중요한가? 다시 만난다면 예전과 같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녀와 헤어지고 집에 도착하니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내가 힘들걸 알기에 안 만났다고 한건 이런 감정 때문인 건가? 뭔가 복잡했다. 그녀가 눈앞에 있었음에 잡지 못했고 잡을 수 없었다. 그냥 평소에 어떻게 지냈는지와 헤어진 연인이 하는 그런 평범한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으니깐. 잘된 건지 아닌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나만 선택하면 되는 듯했으니깐. 출근해서도 눈물이 났고 그날은 그냥 일찍이 집에 가서 쉬었다. 다시 지우지 못한 그녀의 카톡이 눈에 보인다. 여름 감기가 걸렸다는 말을 보고 그녀 집에 조심스럽게 약을 걸어놓고 왔다. 그리곤 그렇게 다짐해본다. 그렇게 2주일 동안 그녀를 생각했고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싶다. 어차피 나에게 별다른 선택권은 없었으니깐. 이미 나는 어떻게 할지 정했으니깐.





그렇게 다짐한다



아마 그녀는 나에게 말했던 첫사랑을 아직 잊지 못하는 거 같았다. 지금은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지만 그 사람을 이야기할 때 눈빛이 바뀌었다. 그녀 나름대로 5년이라는 시간이 넘어가 잊으려고도 가까워지려고도 노력했으니깐. 나는 다른 사랑을 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 거니깐. 마음 아프지만 모두 납득할 수 있었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기다려보고 조금 더 노력해보려고 다짐해본다. 이런 다짐을 그녀가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도 사랑하는 사람을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다리면서 포기하고 잊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녀의 마음을 전부 이해할 순 없지만 나도 그녀처럼 조금 더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려고 다짐한다.



그렇게 다짐한다



1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잠깐 만났지만 그녀는 많이 힘들어 보였다. 구체적으로 왜 힘든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첫사랑의 기억과 함께 여러 가지 현실의 벽이 있었겠지 생각한다. 그냥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일이든 도와주고 곁에 있어주고 싶다. 그 사람을 못 잊어도 괜찮다. 나 역시 그랬었으니깐. 아니 지금도 그러고 있으니깐. 현실의 벽이 높은 것도 알고 있다. 나 역시 그걸 몸소 느꼈으니깐. 그럴 때마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많이 의지를 했었던 거 같았다. 그 사람이 비록 내가 아닐지라도 언제든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비록 그녀는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겠지만 누구에게나 힘들고 지칠 때는 항상 찾아오니깐.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연락해도 될까 그녀를 만나도 될까 생각하기보단 먼저 그녀를 위해 움직일 거다. 그녀는 연인 이기전에 나를 변화시켜준 사람이니깐. 나에겐 그만큼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니깐.





그렇게 다짐한다



그녀가 하고 싶었던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할진 모르겠다. 그래도 그녀가 이번 도전으로 하고 싶은 일을 꼭 하게 됐으면 좋겠다. 내가 얼마나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꼭 그녀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아마 내가 그녀에게 연락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남은 기회라고 하면 그때가 아닐까 싶다. 그때까지 그녀에게 필요한 준비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그녀를 떠나보낼 준비를 해보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그때까진 그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건 확실하니깐. 꼭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너는 비행기처럼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거야. 네 꿈처럼. 그러니깐 지금처럼만 하면 돼. 비행기가 날기 전 꽤 긴 거리를 달려 도약하는 것처럼 아마 이제 슬슬 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다짐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가야 할지, 그녀를 기다렸던 지금의 1년처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지. 그렇지만 이렇게 다짐해본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든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람이 되자고.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응원한다. 그리고 그녀의 사랑도 응원한다. 그냥 뭐가 됐든 다 잘됐으면 좋겠고, 하고 싶은 일 포기하지 않고 해나갔으면 좋겠다. 뭔가를 원하는 게 아니다. 그냥 나를 변화시켜줬던 사람이고 소중한 무언가를 느끼게 해 준 사람이기에 그냥 이대로 멀어지고 싶지 않다. 설령 가까워질 수 없다고 생각할지라도 그녀를 위한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를 안아주고
네 손을 꼭 잡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만큼 가까웠는데

어느 순간 우리 서로 등 돌리고
우리 사이 벽이 세워지니깐

널 보기 위해선
너와 멀어져야 하고,
널 만나기 위해선
지구 한 바퀴를 돌아야 하네.

하염없이 너와 멀어지겠지만,
언젠간 널 마주 볼 수 있겠지.


_by puding



그녀와의 이야기가 이렇게 끝났다. 지금이라도 그녀에게 연락하고 싶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냥 소소한 일상을 함께하고 싶고 그런 평범한 대화를 하고 싶다.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고, 재미있는 영화가 있으면 함께 보고 싶다. 아직 그녀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저기.. 있잖아
석촌호수에 슈퍼문이 왔다던데
시간 내서 잠깐 보러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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