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
미리내 성지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촉촉한 가을비에 노랗고 빨간 단풍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요 예수는 승천하신 지 이천 년 전, 대건 신부는 참형을 당한 지 이 백 년 전이었지만 이름 모를 산새들이 산골짜기에 울음을 터트려 바람과 비와 안갯속에 오뚝하니 서 있는 건물 주위에 메아리쳤지요 저는 묵언 수행을 위해 한 마디 말을 하지 않았지만 걷는 내내 자연과 교감하고 있었습니다 간혹 가슴이 너무 저려 와 눈에 힘을 주어야만 했어요. 여기에 머문 수많은 발길의 눈물이 가을비 되어 내려서 내 마음에도 강물처럼 윤슬이 반짝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괄목상대하기 어려워 성지순례를 통해서라도 개과천선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서 가끔은 사람들의 동네를 떠나와 미리내를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