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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루 Jul 27. 2023

낯선 상황에서 오는 느낌

산문시

 1100 도로




1100 도로를 지난다. 웅장한 온화함, 롤러코스터 타는 꺼지는 내리막길에 이중섭도 모를 짜릿한 통쾌함, 구름 품은 낮은 기압의 투명한 겨울, 산답지 않은 평면적 안정감, 낙엽활엽수와 관목림이 혼재된 초지의 신비함, 담수 빛깔의 영롱함, 흰 사슴이 물 마시던 습지에 전란도 비껴간 소도,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는 숲.


너의 풍성한 갈색 머릿결 같은 스물한 살의 낯섦, 미묘한 예감과 떨림 이런 것들을 가지고.




미술관



미술관에 들어선다. 가슴 두근대는 설렘. 나혜석도 느끼지 못했을 기대감. 아크릴 물감 냄새로 뒤덮인 아늑함. 예상치 못한 전시 작품의 당혹감. 혹은 너무 평범함에 오는 실망감. 다리 아픔. 내부에 울리는 구두 소리의 일정함. 큐레이터 보다 뛰어난 우월감. 작가의 사랑스러움. 한눈팔다 동선 놓친 황당함. 교과서에서 본 작품 앞에서 공감하는 일체감. 미술관 옆 동물원은 포기해야 할 것 같은 시간적 촉박함. 다시 못 볼 명화에 대한 아쉬움. 소장하고 싶은 작품에 대한 아련함. 미술에 대한 안목이 미덕일 거라는 오만함 같은 것들로.





공항


공항에 도착한다. 공항 관제탑의 걸출함. 3분 혹은 2분 간격으로 이•착륙하는 일정한 리듬감.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의 고립 같은 외로운 전경에 습윤 품은 녹음. 산록도로 위에서 내려온 까마귀 떼들의 산만한 날갯짓. 카렐 교각 밑 백조 무리 닮은 활주로의 눈부신 비행체들. 황혼에 물든 블타바 강보다 더 광활한 노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금빛 조각들. 기억의 조각을 주워 담으며 푸른 저녁으로 향하는 새 한 마리. 마치 새 한 마리 같은 외로움 같은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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