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면 꼭 시원한 물 한 잔이 제공되는 게 필수다. 물을 사 먹어야 하는 유럽에서는 커피 한 잔 값에 물값도 포함이 되었겠지만, 물 한잔의 용도는 다른 데 있다. 그것은 에스프레소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함이다. 식도를 시원하게 씻어주고 다음 향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맛의 커피는 어떻게 고를 수 있나? 답은 원두다. 원두는 까다롭다. 제각각의 원산지와 재배 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고 원두를 선택하여 로스팅하는 카페에서는 바리스타별로 맛이 다르다. 정말 맛있는 커피를 만들려면 그 과정을 직접 하거나 아니면 내가 맞는 맛을 찾아 카페를 찾아다니며 발품을 파는 일이다. 커피를 좋아한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에는 쓴맛을 커피 맛인 줄 알고 마셨는데 과일 맛과 단맛이 나는 원두를 맛보고는 쓴 맛을 기피하여 지금은 신맛이 나는 과일 향을 좋아하게 된 것을 보면 내 입맛도 줏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패턴은 유명한 카페라고 소개된 곳에 가면 영락없이 에스프레소를 먼저 주문하는 습관이다.
에스프레소를 취급하지 않는 곳은 진심으로 카페로 인정하지 않고 커피 외에 다른 음료를 주문한다. 대부분 에스프레소를 시키면 에스프레소 한 잔만 제공되는 카페에는 별도로 시원한 물 한잔을 추가로 주문한다.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도 일부러 제공하지 않는 곳이 많아서다.
에스프레소는 프레마의 두께를 눈으로 가늠해 보고 한 모금 입에 넣은 뒤에 입안에서 오랫동안 맛을 음미하다 마신다. 풍부한 맛이 나면 합격이다. 그 뒤 시원한 물 한잔을 같은 방법으로 마신다. 그러면 입 안에 남아 있던 커피의 잔향이 뒤이어 되살아나며 식도를 통해 깨끗하게 제거된다. 물 한 잔의 목 넘김은 다음에스프레소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이다. 에스프레소는 식어도 맛이 좋다. 신맛은식었을 때 더 또렷하게 잔존하는 것 같다.
콩의 원산지인 우리나라의 특성상 나는 콩을 좋아한다. 외국산 커피콩도 그래서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로스팅한 원두는 씹어 보면 그 맛을 알 수 있다. 콩 심은 데 콩 나듯 맛도 변하지 않아서다. 쓴 맛보다 풍부한 과일 맛과 신맛이 나는 원두를 씹으면 내리는 커피 맛도 증명이 된 것이다. 좋은 원두는 좋은 맛을 보장하니까.
무더위가 한창인 여름이다. 폭염과 장마에 몸과 마음이 지쳐갈수록 맛있는 커피 한 잔에 삶의 활력이 되살아나는 시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