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몰랐던 1.5세, 2세들의 삶 그리고 나의 아이에게 주고 싶은 삶
이유는 당연히 '언어'였다. 나는 불과 작년만 하더라도 초등학교시절까지 포함하면 절반 이상을 '영어'를 해왔는데,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한마디도 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친구는 한국어도 영어도 너무 자연스럽게 잘하고 있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영어'를 어린 시절부터 배울 수 있는 환경이었다. 영어를 잘한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강점이라 생각했고 너무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한국에서의 각박한 경쟁사회, 빨리빨리의 문화 그 안에서 자란 게 아닌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자라온 그녀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녀와 이야기할수록 내가 너무 단편적인 면만 보고 있었던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K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민을 오게 된 교포들은 부모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한다. 물론, 모국에서 자라는 경우도 부모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이곳, 타국에서 자라온 본인도 주변 사람들을 보며 확실히 느낀다고 했다.
이민을 오게 되면 부모들도 적응하고 먹고살기 바빠서 생각보다 자녀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써주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일본가족, 타이완가족들이 떠올랐다. 확실히 그들은 항상 바빠 보이긴 했다.
본인의 경우 부모님께서 우리 가족이 캐나다로 왔지만, 대한민국사람이라는 것을 항시 알려주셨고, 한국말을 집에서 항상 사용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한국의 문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까지도 옆에서 알려주셨다고 했다. 그런 부분을 알려줄 수 있는 부모님이라 감사하다는 말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나에겐 별로 와닿진 않았다.
우리는 Uzi 가 사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K는 캐나다에서 자라왔고 한국에 일부 친척들이 살지만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도 정말 가끔이었을 것이다. K는 특히 한국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한국에 몇 번 들린 적 있는데, 그때마다 한국의 문화재 등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을 많이 둘러보았다고 했다. K에게 한국어와 한국이라는 나라 그 문화들은 어떤 존재일까? 이 부분이 궁금했다.
그녀가 해준 이야기는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에게서 들은 부분이다.
본인은 캐나다 시민권자였고 국적으로 따지면 대한민국 사람은 아니지만 결국 뿌리는 대한민국사람이라는 것이다. 만약 부모님께서 한국말과 한국의 역사, 문화에 대해 이렇게 까지 가르쳐 주시지 않았다면 본인은 이런 생각조차 가지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 정말 외로웠을 거라고 했다. 교포 1.5세, 교포 2세들은 10대 중후반, 20대 초반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고 했다. 본인들은 다양한 인종친구들과 어릴 적부터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 백인의 친구들과 영어를 쓰는 친구들과 그들과 같은 캐나다 사람이라 생각하며 자라왔다. 점점 나이를 먹으며 '동양인'이라는 것에 대한 부분을 인식하며 알게 모르게 인종차별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무리 속에서도 항상 필사적으로 노력해 왔다고 했다. 화장을 그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하기도 했고, 머리스타일, 옷 입는 스타일 등 그 친구들과 비슷하게 하며 그들과 같다는 것을 알리려 노력했다고 했다. 그녀가 깨달은 건 본인이 아무리 화장을 그들처럼 해도, 머리스타일을 그들처럼 해도, 옷을 그들처럼 입어도,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결국 본인은 '대한민국'사람, '동양인'이라는 것이었다. 그 사실이 피부로 와닿는 순간 본인이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것이 매우 감사했고, 한국의 역사를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감사했다고 했다. 교포들은 국적이 한국이 아니다. 그리고 자란 곳도 캐나다로 예를 들면 캐나다이다. 한국에선 그들을 외국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결국 캐나다에서 그들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내가 영어회화스터디 다닐 적 영어를 가르쳐주던 스터디 리더님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그의 이야기가 순간적으로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간단히 이야기를 하자면,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던 스터디 리더님 B는 대한민국 사람이다. 교포 1.5세, 2세는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외국에 자주 나가있었던 환경이었고, 어릴 적에는 미국에서 학교를 나왔다고 들었다. 그는 예전 정체성의 혼란이 오는 순간이 있었고 그 부분을 확실히 하기 위해 '직업군인'의 길을 택했다고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 시기에 그 이야기를 듣고 2개 국어하면 좋은 거 아니야?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고? 어릴 적부터 언어 2개를 하면 그렇게 되는 건가? 하고 예사로 듣고 넘겼던 기억이 난다.
그저 나는 영어를 못 하는 사람이었기에, 내가 부족한 부분이 '영어' 였기에 '영어'를 잘하는 그들이 부러웠고 내가 가지지 못하고 그들이 가진 부분에만 집중하기에 바빴다.
나는 이 날 K와 많은 주제에 대해 대화를 했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28년간 살아온 나이다. 지역특성상 내 주변에는 한국인들이 전부였고 모두가 한국사람이라는 사실은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냥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 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내가 영어라는 부분이 배우기 힘든 부분이라고 해서, 당연히 그들의 삶이 나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큰 착각이었고 오류였다. 교포들의 삶은 당연히 한국에서의 삶보다 행복하고 고민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건 정말 단편적인 모습만 본 나의 큰 착각이었다.
K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외국에서 자라는 게 좋은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던 나였다. 캐나다에 오기 전까진 내가 외국이라는 곳에 와서 살 수 있을지 조차 몰랐고, 그랬기에 내 아이만은 외국에서 경험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무엇이든지.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일본인 꼬마 친구 Rene. 이 친구도 영어와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 캐나다라는 나라 특성상 프랑스어까지 함께 배우고 있다고 했다. 이 아이뿐만 아니라, 일을 하러 가면 만날 수 있는 타이완 꼬마 친구 Theo는 영어와 대만어를 사용할 수 있다.
다민족국가인 캐나다에선 2개 국어 이상 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옆에서 배울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캐나다 밴쿠버, 이곳에서 짧게 생활하면서 느낀 점은 아이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다라는 것이었다.
가족들끼리 소풍을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모습을 보며, 공원에서 행복하게 걸어가는 가족들 모습을 보며 나중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이곳에서 키우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이 생각들을 다 제쳐두고, 나는 내 아이의 모국어가 '영어'이기를 원하는 것일까? 를 생각해 보았다. 그건 아니었다. 나는 '한국어'가 좋다. 그렇다면, 내 아이에게 왜 영어를 가르치고 싶을까? 왜 어릴 적부터 언어를 배우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부러웠을까? 생각해 보았다. 세계공용어라서? 내가 못 하니까? 영어 잘하면 어디든 취직이 잘 되니까? 어릴 때 배우면 커서 배우는 것보다 쉬우니까? 다 맞는 말이지만 본질적인 정답은 아니었다. 며칠간 고민을 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답을 찾았다.
나는 "영어"로 인해 나의 한계를 짓고 있었고, 내 꿈을 포기하고 있었다. 내가 더 나아가고 싶을 때, '영어'를 본다면 뒤돌아가고, 회피하곤 했다. 내 아이만은 그런 삶을 살게 하고 싶진 않았다. '영어'라는 장벽으로 인해 꿈을 포기하는 그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영어"로 인해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기에 "영어"가 두렵지 않은 삶을 살아가게 해주고 싶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삶이 아닌.
내가 외국에서 자라온 교포들의 삶을 부러워했던 이유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했던 이유도 그들은 "영어"가 두렵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들은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저 그런 모습들이 부러웠던 것 같다.
Wreck beach에서 K 와의 만남은 지금까지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준 정말 소중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