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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Nov 22. 2021

이런 것도 먹을 줄 몰라서야

고창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고창 선운사 들렀다가 올라오는 서해안 바닷가 어느 횟집에서 먹었던 생조개 백합 회




 사업 부서 소속일 때 지방 출장을 내키지 않아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운전을 못해서였다. 새카만 후배 주제에 조수석에 앉아서 가는데 그 좌불안석이 또 없었다. 어느 날엔 선배가, 다른 어느 날엔 부장이, 심지어 어느 날엔 본부장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지방으로 떠났다. 몸은 편했지만 마음이 편할 리. 하지만 남도행 출장만은 불편함 따위 시나마 한 구석에 치워놓고 은근 피어오르는 기대감으로 두근거려했. 이번에는 또 얼마나 맛있는 밥과 술과 안줏거리를 먹을 수 있을까. 여정이 끝나면 또 얼마나 살이 쪄 있을까.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남도 음식이 맛있다는 건 일종의 전설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그 양반이 보기에 전국 팔도 음식이 기실 다 거기서 거기란다. 전라도라고 특별히 맛있지 않고 경상도라고 그저 짜고 맵기만 한 게 아니라고. 그런데 사람들은 왜 "전라도 음식은 맛있다."는 생각을 다들 갖고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답한다. 전라 지역은 수도권이나 경상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된 곳이다. 그래서 산업화 이전의, 머릿속에 오래된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전라도에서 그 맛을 찾는 거란다. 그러니까, 우리가 진즉에 잃어버린 고향의 맛, 그 원형이 여기 남아있다 머리로 생각하기 때문에 분별없는 혀도 이 따라맛있게 느낄 뿐이라는 말이다.


 나는 공감할 수 없었. 전국으로 출장 다녔던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전라도는 어느 도시에 가더라도 맛집들의 행렬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바, 호남은 전주, 영남은 진주에 양반들이 많이 살았으며 덕분에 양반 문화발달해서 음식 수준도 높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진주에서 스무 해를 살았는데 고향의 음식이 훌륭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 나름 유명하다는 진주냉면도 서른이 넘어서야 비로소 . 전주에 와 본 후에야, 그동안 믿지 않던 그 말이 정말이구나, 하 고개를 끄덕였다. 과 화려한 양반 문화의 흔적이 남아있는 . 이곳에선 밥상에서 수저를 내밀 때마다 두근거렸다. 이건 또 얼마나 맛있을까, 저건 또 무슨 맛일까 하면서. 오늘 상다리 한 번 부러뜨려 보습니다, 하듯 고운 자태의 음식이 무진장 차려져 나오는데 하나같이 맛없는 게 없다. 적어도  입맛엔 남도 음식의 맛은 환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이었다.


 물론, 맛도 맛이거니와 다른 이유도 있었다. 현지의 지역 총판 사장 아재들이 밥상에서 다들 이런 말씀들을 하시는데 어 감히 맛없다고 할 수 을까.

 "김 대리, 요가 거시기 허벌나게 맛집이니께 맛나게 드쇼잉. 아, 싸게싸기 드셔 보시라니까잉."


 수차례의 남도 출장 중에서 전북 고창으로 갔던 때가 생각난다. 많은 출장이 그렇듯이 일은 '조금', 밥과 술은 '많이' 했던 일정이었다. 유명한  년 고찰 선운사에 들렀다. 굽은 자연목껍질만 벗겨 그대로 가져다  기둥 직접 보고 만져다. 이런 게 바로 자연제멋대로 깎고 자르기보다는 는 그대로 두며 어우러지 '한국의 미'구나. 유홍준 선생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절경으로 묘사한 동백꽃은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초봄이 아니라 늦봄에 왔으면 좋았으련만. 시나 유명한 특산물 풍천 장어를 제짝인 복분자주와 함께 먹기도 했다. 어는 배가 터지도록 먹었지만 복분자주는 그리 많이 들이켜지 못했다. K 부장이 자꾸 지분거리면서 술잔을 뺏어갔기 때문이었다. "총각은 이런 거 많이 마시면 안 돼. 밤에 불끈불끈해져서 잠 못 자." 그러는 당신께서는 어따 쓰려고 그렇게나 마셔댑니까,라고 리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 서해안 도로를 따라 서울로 올라오던 길에 있던 어느 횟집에서. 난생처음으로 어떤 음식을 접했다.


 첫 경험의 상대는 바로 '백합 회'. 봄철 조개의 여왕이라 불리는 백합을 생으로 먹는 요리. 그동안 탕으로 끓이거나 구이로 먹어보기만 했지, 날것 그대로 조개를 먹어보는 일은 낯설었다. 숨이 붙은 채로 요동치는 빙어도, 껍질만 벗겨놓은 살아있는 새우도 먹어봤지만 조개는 처음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음식을 앞에 두고 장했다. 굳은 손 움직여서 사장 이모님의 말씀에 따라 생조개 위에 초장 한 젓갈, 마늘 한 조각, 다진 고추 약간을 얹었다. 눈을 슬몃 감고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한 입에 후루룩. 그 순간 입 안에서 새로운 맛의 세계가 펼쳐졌다. 마치 펄떡거리는 바다를 한 모금 베어 무는 듯다. 아무 양념 없이 그저 조갯살만 씹어봐도 비린 하나 없 입 안 바 내음으로 다. 색다른 맛을 경험했다, 싶다. 아는 음식 하나가 또 늘어나고 새로운 경험 하나 더 .


 백합 회를 한창 던 중. 회사 동료들 중 음식을 가리는 친구들 면면이 떠올랐다. 이런 걸 먹어보라 권한다면 아마도 낯빛이 허옇게 질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겠지. 회를 비롯한 날음식을 못 먹거나, 곱창이나 육회 같은 걸 삼키지를 못한다. 심지어는 오이에서 비린 맛이 나서 먹을 수가 없다는 이까지 있다. 이들과 함께하는 회식 자리에서는 퍽 난감해진다. 횟집에선 생선회를 뺀 유부초밥만을, 곱창집에선 따로 삼겹살을, 추어탕집에선 어린이용 메뉴로 구비된 돈가스를 별수 없이 주문해야만 한다. 그네들을 향해 어린이 입맛이라 놀리면서 생각하곤 했다. 정말로 입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어렸을 때 먹어 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  본 적 없으니 모르고, 모르니까 두렵고, 두려우니 다가가지 못하고, 결국 영영 멀어지게 되는 법이다.

 

 어느덧 굳어버린 입맛과 취향과 사상 이제 와서 바꾸기란 려울 터. 그래서 나이를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먹고 느끼고 겪어보려 한다. 낯섦을 마주하면 주저하면서도 이해하려고 애쓴다. 무슨 경험이든간에 삶을 살아가는 데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거라 믿기에. 전람회가 어느 노래에서 "난 힘들 때면 너의 생각을 하지 / 알 수 없는 힘이 되어 준 너의 기억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괴로운 시절에는 어떤 기억의 편린들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그땐 그랬지, 그때 그렇게나 힘들었는데 지금 이 정도야 뭐, 그때보단 잘할 수 있겠지, . 그러니까, 경험 쌓기에 천착하는 건 아는 척, 잘난 체하기 위함이 아니. 조금이나마 더 께가 있는 사람, 파고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그러다 보면 지금보다 더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한다.


 그나저나 남도에 아무리 출장이며 여행을 가 '' 삭힌 홍어는 도저히 삼키질 못하겠. 그나마 삼합으로 나오면 돼지고기와 함께 몇 점 집어먹을 수 있는데, 홍어만 단독으로 출현하면 선뜻 젓가락을 들기가 망설여진다. 런 것도 먹을 줄 몰라서야. 일찍이 먹는 버릇을 들였어야 했는데, 거 참. 경북 포항의 과메기까지는 한참 우물거리면 삼킬 수 있겠는데 홍어까지는 아무래도 어렵다. 이런 주제에 누가 누구더러 어린이 입맛이라 놀렸던 건지.



 고창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끝.





(20133월, 고창에서)

비내리던 날, 고창 선운사에서
굽어있는 자연목을 그대로 기둥으로 썼다
그야말로 남도 바다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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