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한가운데>를 오랫만에 다시 떠올리니까 이 소설에 생각이 머물게 된다. 그래서 오래 전 읽었던 책을 찾아서 펼쳐보기도 했다.
이 책을 산 건 고등학교 때라고 기억한다. 가격은 700원. 당시에 앞 몇 페이지만 읽고 멈추었다. 그리고 열 몇 해가 지난 다음 서른 살도 확실히 넘어서 처음으로 이 책을 완독했다. 표지의 그림은 누가 그린 것인지, 제목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유명한 그림일 것이다. 삼중당 문고에서는 명화를 표지로 썼다. 이는 고마운 일이다. 작은 크기로나마 좋은 그림을 볼 수 있어서.
오늘 여기저기 펼쳐보다가 이런 구절을 만났다.
우리가 어떻게 남을 알 수가 있겠어! 우리는 자기 자신에 관해서조차도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거니까 우리가 알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 몰라지는 거야. 또 우리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고양이처럼 사는 걸 배우게 돼. 점점 더 소리 없이, 점점 더 필연성 같은 게 없이--그것이 늙은 징조야. 나는 늙어가는 게 기뻐.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니나는 조금도 늙어가는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웃지 말아. 니나는 심각하게 말했다. 누구든 욕망하기를 그치면 늙기 시작하는 거야. . . . (73-74)
Was weiß man denn vom andern Menschen! Man weiß ja nicht einmal von sich selbst etwas, und je mehr man zu wissen glaubt, desto besser lernt man, auf Katzenpfoten zu leben, immer leiser, immer weniger unbedingt. Und das ist dann das Zeichen dafür, daß man beginnt, alt zu werden. Ich freue micn darauf, alt zu sein.
Ich mußte lachen, denn sie sah wirklich noch nicht so aus, als wäre sie dabei, alt zu werden.
Lach nicht, sagte sie ernsthaft. Wenn jemand aufhört zu wollen, fängt er an, alt zu werden. . . .
(58-59)
번역문에서 첫번째 밑줄 친 부분은 원문에는 없다. 두번째 밑줄 친 부분, 곧 "늙은"이라는 단어는 원문을 직역하면 "늙기 시작하는"이다. 늙기 시작하는 것과 늙은 것은 다르다.
니나는 우리가 자기 자신도 모르므로 남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말은 훌륭한 소설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가끔 듣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말에 동의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비록 우리 자신을 잘 모르지만 때때로 다른 사람을 귀신처럼 정확하게 간파하는 것 같다. 특히 다른 사람의 단점을!
그래서 타인의 시선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단점과 한계를 깨닫게 하려고 신이 주신 선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건설적인 비판을 건넬 필요가 있다. 그리고 비록 다른 사람이 나에게 사심 가득한 공격을 퍼붓더라도 기분이 나쁜 가운데에서도 혹시 그 안에 신이 주신 정확한 이해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니나는 사람은 욕망하길 그치면 늙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오늘의 나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이다.
나한테 있는 독일어 책이다 (Fischer 출판사). 우리 삼중당 책과 달리 표지 그림이 사뭇 화려하다. 클로드 모네의 "창문의 카밀 모네"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