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가장 평온한 시간은 언제일까. 나의 경우는 밤 열한 시이다. 평소 아침 6시쯤에 기상하고 밤 12시에서 12시 반 정도에 취침한다. 다음날을 위해서 최소한 6시간 수면을 확보하자고 다짐하건만 생각만큼 잘 지켜지지 않는다. 직장일과 집안일을 병행해야 하니 직장에서의 퇴근은 또 다른 일터로 출근한다는 말이 맞다. 아직까지는 엄마의 손이 필요한 때이어서 퇴근 후 저녁식사 준비와 집안 뒤치다꺼리를 하고 나면 거의 10시가 넘는다. 그때부터 마음이 조급해진다.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을 다 끝맺고 온전히 편안한 마음이 되는 시간이 밤 11시다. 그래서 11시가 가까워지면 주섬주섬 책들을 모아 오고 설레는 마음으로 벗을 만날 준비를 한다. 또는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지난 생각에 머물러도 보면서 내 안에 오고 가는 감성들과 놀이를 한다. 그러다가 마음이 내키면 아버지가 쓰셨던 낡은 앉은뱅이책상 위에서 글을 끄적이기도 한다.
어쩌면 밀려뒀던 책을 읽거나 짬짬이 글을 쓰는 일이 나의 긴장된 하루를 이완하는 의식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라즈니쉬 오쇼가 말한 '이완의 각성'이 떠오른다. 어느 작가는 글쓰기 전략을 말하면서 오전에는 이성적인 글을 쓰고 늦은 밤 시간에는 감성적인 글을 쓰라고 하던데 굳이 전략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밤은 감성을 불러온다.
밤 열한 시는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 아쉽지만 그렇기에 하루를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더욱 일 분 일 초가 아깝고 소중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또한 밤 열한 시는 나를 정제하는 시간이며 그로 인한 충만감으로 온 하루가 되살아나는 축복 같은 시간이다. 살아있음은 눈만 떠 있고 숨만 쉬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과의 진정한 마주침이 일어나는 일이다. 밤 열한 시가 되면 나는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