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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의 손을 잡고

3부 여름 09

by 싱싱샘

사람이 좋으면서 무서웠다. 별것 아닌 내가 드러나는 게 두려웠다. 좋은 사람으로 웃으며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했고 상처받으면 손절할 결심도 해두었다. 나는 나에 대한 이미지만 있을 뿐 아는 것이 없었다. 알아야 한다는 사실도 몰랐던 것 같다. 최소한으로 사람을 남기고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했는데 사람들은 나를 책임감 강하고 똑부러진 캐릭터로 보았다는 사실이 웃프다. 나는 그것에 다시 눌리는 형국이었다.


회사를 옮기며 방황을 했다. 좋은 직장을 버리고 시작한 일이었다. 하고 싶던 일이었으나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다. 나는 강한 사람들 사이에서 버텨낼 힘이 없었다. 회사를 옮기고 리셋 버튼을 눌러 관계를 끊었다.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없었고 연락도 오지 않았으니, 카톡과 디엠의 시대가 열리기 훨씬 전이었다. 그래서 좋기도 했다. 아쉬움이 없는 건 마음을 준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랬다.


이십 대, 삶의 의미를 찾지 않으면 살 이유가 없을 만큼 다크했다. 일을 했지만 일만 했고, 사람을 만났지만 사람만 만났다. 교감이라는 건 없었다. 성공이란 실패의 역사이므로 관계도 연습이 필요한데 나는 관계의 장에 나를 내던질 자신이 없었다. 비뚤어질 마음도 못 먹어, 갇혀 있다 탈출한 듯, 자라지 못한 채 이십 대를 맞이했다. 뒤늦은 사춘기를 홀로 외롭게 겪었다. 되고 싶은 나, 보여주고 싶은 나만 가득했다. 미성숙했다. 자식이 부모에게 치어 오래 아팠다는 걸 그들은 정말 몰랐을까. 탓하지 않으려 하나 탓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 어린 나를 안쓰러워하게 된다.


삼십 대에 전직을 했다. 시작이 참 초라했다. 전 직장에서 관리자까지 올랐으나 명함을 내려놓고 나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임신과 출산을 막 겪었고 육아를 시작해 모든 면에서 초보 같았다.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나 혼자만 잘하면 됐다. 어쩌면 혼자니까 망해도 된다는 편안함이었을지 모른다. 청소년기 아이들을 만나고 읽고 쓰며 그들이 커가는 것을 보았다. 다른 답도 없어 그냥 계속 걸었다. 그리고 나는 나에 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대단한 야심가는 못 된다는 것. 그럼에도 계속 성장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다는 것. 심리학자 매슬로의 욕구 단계의 하위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나는, 딛고 선 땅이 흔들리는 사람이 되어 의미에 매달린 것 같기도 하다. 세월이 가진 힘은 ‘견디면 지나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해주는 것이다. 감기를 앓고 난 어린애가 쑥 자라는 것처럼 나는 세월의 힘으로 컸다. 내가 겪은 모든 일이 인간사에 흔하디흔한 일이고, 인간의 삶에 거대한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어 좋았다. 남들은 생각보다 내게 관심이 없고 나는 내가 겪은 경험과 내가 찾은 의미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됐다. 행복해야겠다. 나에게 다정해야겠다. 나는 서서히 나를 찾은 것 같았다.


운 좋게 삼십 년 가까이 일하며 한 방향으로 걸어왔다. 이력이 차곡차곡 쌓였고 내 발걸음으로 연결한 길에 서 있다. 남은 사람을 돌아보니 몇 되지 않았지만 모두가 나를 지지하고 아낌없이 사랑해 주는 이들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형식적인 호구 조사, 사적인 정보 하나 없이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맺어가고 내 수업을 아는 양육자들은 메시지 자주 주고받지 않아도 몇 년을 믿고 보내기도 했다. 한 시절 곁에 머무는 사랑, 나는 그 사랑이 좋았다. 남 보기에 대단하지 않아도 내가 만든 내 자리를 한결같이 지켰더니 그 일의 의미와 나의 정성을 아는 사람들이 남았다.


삶이 가벼울 때 관계도 가벼워진다. 우리는 만나고 헤어진다. 있는 그대로 만나 편안한 관계도 있고, 불필요한 말을 삼가며 거리를 두어야 하는 관계도 있다. 그 관계들은 발전하기도 변하기도 한다. 나를 글로 먼저 만난 사람은 직접 만나고 나서 생각보다 밝아서 놀랐다고 했고, 나를 알고 나서 글을 읽은 사람은 언제나 필요한 말만 정확히 하는 사람이 이렇게 깊고 풍성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줄 몰랐다고 했다. 나는 내게 두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안다. 글이 원래의 내 모습에 가깝다는 것도. 소설 속 인물처럼 우리도 납작하지 않다. 입체적이고 복잡하게 선하고 나쁘다. 그렇기에 가치관과 결이 맞는 사람은, 십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므로, 꼭 잡아야 한다. 마음껏 사랑을 표현해도 된다. 삶이 무거울 때 관계도 무거웠지만 (관계가 무거워 삶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이제 나는 곁에 남아 마음 가까이까지 온 사람을 환대한다. 있는 그대로. 가장 편안한 모습이다.


내가 내 모습으로 있어도 받아들여진다는 건 자식을 키우며 배웠다. 원가정 대신 내가 만든 가정에서, 사회에서 혹은 어디선가 누군가와 깊이 관계 맺으며 사람은 다시 자랄 기회를 얻는다. 나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인생이 살아볼 만하다고 느꼈다. 딸은 나와 많이 달라 힘들고 어려웠다. 번번이 부딪친 시절에 끝까지 싸움을 피하지 않던 아이가 자라, 학창 시절 끝자락에 쓴 편지에 엄마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고 또박또박 적어주었다. 사랑받는 일만큼 사랑 주는 일이 사람을 키운다는 걸 그때 알았다. 잘 싸운 싸움이 얼마나 관계를 깊게 만드는지 경험했다. 내 부모의 전쟁은 치열했지만, 회피하고 도망가는 나보다 훨씬 나았다. 밉지만 이해되어 눈물이 난다. 눈물 나는 순간만큼씩 용서한다.


선입견 갖지 않으려고 한다. 첫인상이나 몇 마디 말이 많은 것을 결정짓는다고 하지만, 사람의 진가는 시간이 지나 드러나기도 한다. 나 역시 드러나게 되어 있으므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 나는 지금 내 자리가 소중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이 소중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적당한 거리도 중요하다. 내 삶을 크게 나누면 나를 몰랐던 시간, 나를 모르고 일했던 시간, 나를 알고 일하는 시간 이렇게 셋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제 나는 나를 알고 일하는 세 번째 시간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좋은 사람들의 손을 잡고.


충분히 사랑한 날들이 있었다. 사랑 이면엔 난투극도, 자책과 후회, 고군분투의 시간도 있게 마련이라 그 덕분에 힘이 길러졌다. 인생의 싸움이 길고 지난해서 상처받거나 버림받을 거라는 두려움을 어느새 잊고 부지런히 사랑하고 싸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상처 주거나 내 쪽에서 버릴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건강할 때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곁을 지켜준 사람에게 영광 돌려야지. 당신 사람 하나 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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