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누군가의 이 소설집의 리뷰에서 성소수자와 여성서사가 질린다는 식의 의견을 읽었는데 저는 전혀 동의 할 수 없었습니다. 감추려해도 세상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삶의 모습을 눈감을 수 없거니와 소설을 소재주의로 한정하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올해도 젊은 작가들은 현실에 눈돌리지 않고 삶 속에서 느끼는 이야기들을 소설로 표현해냈습니다. 이런 시도들을 볼 수 있게 앞으로도 젊은 작가상이 영원하길 바랍니다.
초파리 돌보기 임솔아
얼마전 임솔아작가의 신작 단편 소설집 리뷰에서 이미 적은 글이 있어서 링크로 대신합니다.
https://brunch.co.kr/@pungoy/46
저녁놀 김멜라
레즈비언 커플에게 들어온 모모라는 성기보조기구가 자신을 사용하지 않는 커플들에게 비난과 적의를 쌓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최근들여 대두되고 있는 구애에 성공하지 못한 남성성이 여성혐오와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촉발시켜 비판하고자 한 것인가 생각했는데, 이 커플들은 섹스를 위한 보조기구가 모모에게서 다른 쓸모를 발견해나갑니다. 처음 모모는 이런 변화에 당황하지만 이내 적응해 나가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세상의 적의와 혐오 속에서도 씩씩하게 이 커플이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며, 구애에 탈락한 남성들도 단순히 여성에게 쓰여질 쓸모만을 골몰해 좌절하고 혐오를 키우기보다. 자신의 삶의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기다리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김병운
소설가이자 게이인 내가 양성애자이며 무성애자인 친구를 오랜만에 다시 만납니다. 게이 독서 모임에서 만날 때부터 그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었음을 고백하곤 하죠. 그럼에도 둘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하지만 배우를 꿈꾸던 그가 배우를 포기하면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오랜만에 그 친구와 그의 애인과 함께 만나게 되고 나는 숨겨져 있던 사실을 알게 되죠. 소설 속에 친구를 이해하지 못하고 혐오하는 모습을 무심코 썼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몇년전 있었던 오토픽션 논란을 떠올리게 되더군요. 소설가가 타인의 삶을 마음대로 소설 속에 다뤄서 현실 생활에 곤란함을 겪어야 했던 사람이 있었던 이야기였죠. 현실적인 어려움이 없었다 하더라도. 마음대로 자신의 기억과 추억이 소설로서 누군가의 시선 속에 노출된다는 건 아픔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삶과 소설의 관계와 창작자의 책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 소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소수자 중에서 무성애자나 양성애자라는 이유로 더 차별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더 이상 성적지향 때문에 차별과 혐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원에서 김지연
남자로 곧잘 오해를 받고했었던 나는 어느날 공원에서 남성으로부터 무차별 폭력을 당합니다. 공원의 많은 사람들은 나를 도와주지 않고 무신경하게 지켜보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남자인 불륜남은 오히려 나의 마음을 보호하고 감싸주는 것이 아닌 잘잘못을 따지려고 하죠. 나는 그리고 오래전 버스에서 당했던 성추행을 기억하기도 합니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말하고 있는데요. 그런 것들이 쌓여오면서 남성에 대한 분노를 다스리기 힘들 지경에 온 상황을 보여줍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가득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미애 김혜진
미애는 이혼후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애가 우연히 선우라는 사람을 알게 됨으로서 겪는 이야기입니다. 선우는 기후위기 독서 모임을 다니고, 자신보다 약자들을 신경쓰려는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미애는 선우와 친하게 지내게 되고, 자신의 딸을 맡기게 됩니다. 하지만 어느날 선우의 딸과 미애의 딸이 사라지고 나서. 미애의 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미애를 나쁜 사람이라는 소문을 내기까지 하는 옹졸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선우가 내비쳤던 선의는 자신이 조금이라도 불편을 겪게되면 깨질정도로 무척이나 얕은 두깨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미애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되지만, 선우에게 매달립니다. 도움을 받을 사람이 선우 밖에 없었던 것도 있지만, 선우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마음이 더 아프더라고요. 사과를 해야할 대상이 바뀌 었음에도. 오히려 미애가 선우에게 사과를 하며 다시 만나줄 것을 부탁하는 장면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기후위기, 장애인 차별등에 관심을 갖게 된 최근의 제 모습을 다시 살피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혹시 내가 시해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온다면, 그들에 대한 관심을 폐기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반성하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골드러시 서수진
오래전 사람들이 금을 찾아 모여 들었던 곳으로 진우와 서인은 떠납니다. 호주에 와서 영주권을 얻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던 진우와 서인은 한번의 헤어질 위기를 겪었지만,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진우는 영주권을 위해 쉬는 날 없이 일을 해야했고, 서인은 외로운 시간을 보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지난 일이다. 오늘은 결혼 7주년을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가는 길에 캥거루와 충돌하는 사고를 겪고 캥거루는 곧 죽을 것이었습니다. 아니 산채로 동물에게 뜯어 먹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길을 지나쳐 갔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숙소에 머물며 오래된 것들을 보았습니다. 돌아오는 길 진우는 쇠막대로 캥거루의 숨통을 끊었습니다. 고통스럽게 삶을 연명하는 것, 다른 동물에 산채로 뜯어 먹히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진우가 죽었다고 말했지만, 서인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골드러시는 한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찾아온 진우와 서인의 상황을 빚대는 것 같았습니다. 캥거루는 그들의 유예된 이별을 말하는 지도 모릅니다. 진우가 결심한 듯 캥거루의 목숨을 끊었을 때, 그들의 만남은 이별로 귀결될 것입니다.. 사랑의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만 헤어지고 사랑하지 않지만 계속 될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 커플의 사랑과 이별을 담담하게 지켜본 기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