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에 차려진 보이지 않는 서열과 침묵의 식사
일 년에 두어 번,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는 명절 밥상은 겉으로 보기에 더없이 풍요롭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갈비찜과 정갈하게 부쳐낸 전들이 식탁 가득 차려지고, 오랜만에 만난 이들의 웃음 섞인 인사가 거실을 메운다.
하지만 이 화기애애한 공기 아래에는 서로의 삶을 가늠하고 재단하는 차가운 시선들이 날카롭게 교차하고 있다.
"요즘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니?"
고모의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금세 각자의 사회적 성취를 증명하는 각축장으로 변한다.
자본의 속도에 맞춰 번듯한 결과물을 내놓은 이들은 은근한 자기과시를 밥상 위에 얹어 놓는다. 그들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식탁의 무게중심은 승승장구하는 이들의 의자로 급격히 기울어진다.
그들이 내뱉는 승진과 투자, 성공의 서사는 향기로운 안주가 아니라, 누군가의 평온을 조금씩 갉아먹는 예리한 소음이 되어 공중을 떠돈다.
그 비대한 확신들 사이에서, 아직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의 자존감은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린다.
돈을 벌지 못하거나 사회적 기준에 미치지 못한 이들에게 명절 밥상은 그저 고통스러운 심판대일 뿐이다.
그들은 쏟아지는 시선과 질문의 화살을 피해 아무 말 없이 밥그릇 속으로 시선을 떨군다. 입안으로 밀어 넣는 밥알은 고소한 풍미를 잃고 비릿한 소외감으로 변해 목구멍을 넘어간다.
자랑을 늘어놓는 이의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침묵하는 이의 존재감은 식탁 구석으로 초라하게 밀려나 그림자처럼 희미해진다.
친척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공동체는 이 순간, 철저하게 세속의 가치로 서열화된 냉혹한 전시장이다. 거실 한구석에 쌓인 선물 세트 상자들은 이 왜곡된 애정을 증명하는 부속물들이다.
상자 안의 내용물이 화려할수록 그것을 내민 이의 목소리는 힘을 얻고, 소박한 봉투를 건넨 이의 위축된 마음은 화려한 포장지 아래서 갈기갈기 찢겨 나간다.
서로의 상처를 외면한 채 주고받는 이 정형화된 호의는, 사실 서로를 사랑해서라기보다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한 비겁한 의례에 가깝다.
식사가 끝나고 친척들이 하나둘 떠난 자리를 본다. 소란스러웠던 비교의 잔치가 끝나고 남은 것은 음식의 잔해와 서늘하게 식어버린 적막뿐이다.
누군가는 승리감에 취해 문을 나서고, 누군가는 난도질당한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무거운 일상으로 도망치듯 떠난다.
우리는 명절마다 '가족'이라는 온기를 회복하려 애쓰지만, 정작 우리가 하는 일은 서로의 삶을 재단하며 가장 가까운 이의 영혼을 맷돌에 넣고 갈아버리는 일이다.
결국 명절 밥상은 우리 삶의 가장 비루한 민낯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화려한 포장지를 벗겨낸 뒤 마주하는 진실은 서글프다.
이 식탁 위에서 진정으로 대접받는 것은 한 인간의 인격이나 고뇌가 아니라, 그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은 자본의 크기였다는 것을.
어머니의 뭉툭해진 손마디로 정성껏 차려낸 그 밥상은, 친척들의 허영과 비교의 칼날 아래서 매번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지고 만다.
식탁 위로 겹겹이 쌓인 웃음소리는 사실, 서로의 높낮이를 확인하며 쌓아 올린 투명하고 견고한 성벽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