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를 느끼고 싶었다.
저번 날, 팟캐스트 게스트 인터뷰를 했다. 레드홀릭스에 글을 올리는 글쟁이로서 인터뷰였다. 운영자들과 자연스러운 토크 중심의 녹화를 마쳤다. 두 시간 가까운 인터뷰 시간 속에서 내가 했던 인터뷰 이야기도 흥미롭게 전개됐다. 마광수 교수를 인터뷰했던 것, 에세머들 인터뷰했던 것이 언급되기도 했다.
인터뷰 내용은 글을 쓰는 이유, 성 이야기를 하는 이유, 글에서 언급했던 페니스에 대한 생각, 어린 시절 포르노를 접한 이야기, 즐거운 사라 닉네임과 마광수의 연관성, 마광수와 에세머 인터뷰, 구강 성관계에 대하여, 성적 취향, 성에 있어서 도덕적 한계에 대하여, 혼외정사에 대하여, 꿈에 대해서 등 정말 많은 소재를 나눴다.
내용을 떠나 오랜만에 인터뷰한다는 자체가 매우 신났다. 팟캐스트 녹음을 통해 내가 여태 해왔던 인터뷰가 생각나면서 인터뷰를 참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인터뷰란?”
10살 때, 친구들과 팀을 꾸려 대선과 대선후보에 대해 일반인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확한 주제는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을 것인가? 그리고 왜 그 인물에게 투표하는가?’였다. 당시 생애 처음으로 정치적 성향을 확립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나와 같은 성향과 다른 성향의 의견이 궁금했다. 신문 기사 내용으로 사고를 어느 정도 키울 수는 있어도, 어린 나이에 이해하기는 어려운 내용이 많았다. 그래서 직접 사람들의 견해를 들어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실패작인 인터뷰였다. 불특정 다수의 의견은 정리되지 않았고, 의견을 뒷받침하는 타당한 근거가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하지만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정당이나 인물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나름의 사고방식대로 나쁜 것과 좋은 것에 대한 구분을 짓고 있었다. 합리적인 선택보다 사고방식에 맞는 선택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인터뷰를 사고의 확장과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신문이나 책이나 학습지를 통한 글을 읽으면서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생(生)것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 뒤로 궁금한 것에 대한 도전은 인터뷰였다. 무모한 도전으로 위험한 것을 알고 싶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거의 흥미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에 설레는 흥분이었다.
나는 글을 쓸 때 내가 온전히 체험하지 않은 것도 알아야 했다. 지식적인 습득은 상황이나 인물에 대한 정서적인 부분까지 아는 것은 힘들었다. 깊이 체험하지 못한다면 가까이서 정서를 느끼고 싶었다. 그게 바로 인터뷰의 장점이었다. 오롯이 전달될 수 없어도, 유추할 수 있었다.
12살 때 인터넷에 성문화에 대한 글을 올렸다. 한 PD에게 연락이 왔고,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PD 두 명이 찾아와 나를 인터뷰했고, 그 후 포털사이트에 인터뷰 동영상과 기사가 올라갔다. 첫 공식적 인터뷰였다.
당시 내가 겪는, 그리고 또래의 성문화에 대한 인터뷰였다. 지금이야 사춘기가 빨라지고, 성적인 걸 접하는 연령이 내려간다는 게 상식이지만 십 년 전만 해도 지금만큼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초등학생 나름의 성문화가 존재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물론 인터뷰에서는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성이라는 주제가 민감하다 보니, 너무 신랄하게 까발리면 까진 애로 낙인찍힐 게 두렵기 때문이었다.
이후 다른 주제로 모 방송사 휴먼프로그램에서도 인터뷰가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인터뷰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던 거 같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고 싶었다. 그래서 주제를 잡고 마광수 교수나 에세머 몇 명을 인터뷰했다. 당시 섹슈얼한 글을 쓰기 위한 사전 조사 같은 거였다.
여전히 인터뷰에 대한 귀여운 꿈을 꾸고 있다.
나는 인터뷰를 좋아한다. 인터뷰는 흥미로운 주제의 냄새를 맡는 행위다. 날 것을 만나면서 조사과정에서 알 수 없던 정서를 느끼는 것. 인터뷰는 말하고 듣는 행위의 향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