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이 사라졌다.

장애인은 존엄을 경험하지도 못한다.

by 즐거운 사라



우리나라는 5천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고조선이 이 땅에 처음 건국 됐다고 전해진다. 고조선 건국신화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늘에서부터 내려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뜻을 이 땅의 본(本)으로 삼았다. 현재 우리나라 대표 교육 기본이념도 홍익인간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뜻을 해석하면 결국 인간을 크게 도우라는 것이다. 인간이 모든 가치에 앞세우는 사상이며 휴머니즘이다. [동물<사람, 국가<국민, 나<타인]이라는 상대개념의 의미도 담는다.


홍익인간의 뜻은 참 착하다. 크게(널리) 도와주고 행복하게 해주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고조선이 무너지고 이 땅에 다른 왕조들이 등장했지만, 모두 조선의 홍익인간 뜻을 계승해 나라를 세웠다. 이성계가 세운 조선은 문자 그대로 나라 이름을 복원했다. 고(古)조선은 이성계의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우리나라는 본디 조선이었다.


우리는 본디 홍익인간이었다. 유구한 세월 동안 우리는 홍익인간이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과연 홍익인간인가?


모든 문명장치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며, 이타적인 윤리관은 삶을 위대하게 한다. 인간의 행복을 방해하는 상황은 모두 반대하고, 국가는 홍익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가?


단군 신화 속에서 환인은 홍익인간을 펼칠 수 있는 곳으로 이 땅에 환웅을 내려보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홍익인간대로 인간은 존엄한 존재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든다. 환인의 판단이 잘못된 것인가? 우리는 홍익인간 즉, 존엄과 멀어졌다.


내가 홍익인간을 갈망한 날


지난날 뇌병변장애인 지인과 함께 전철에 올랐다. 그의 장애는 소위 지체장애라고 표현하는 신체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나는 그를 좌석에 앉히고 싶은 마음에 노약자석 앞으로 갔다. 노인 세 명이 앉아있었지만 아무도 양보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제일 젊어 보이는(60대로 추정) 노인이 다른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중증장애인이 앞에 있는데도 양보해주지 않더니 노인이 오니 양보해준 것이다.


아마 노약자석의 취지와 다르게 노약자석은 노인만을 위한 자리인가 보다. 분명히 노약자석 설명에 [장애인·노약자·임산부·영유아]라고 순서대로 적혀있었다. 자음·모음 순서대로 나열된 게 아닌 걸 보니 아마도 우선시되는 순서라고 해석한다. 또, 노약자는 늙은 자, 약한 자다. 노인만을 지칭한 게 아니다. 그러니 묻고 싶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존재가 우선인가?


일반석 앞으로 이동했다. 아무도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았다. 그래, 운이 나쁜 날이었을 거다. 내 지인을 배려해주는 사람은 평소에 많았을 거다. 하지만 그는 배려받지 못하고, 어느 날은 모멸감을 느끼는 일도 당할 것이다. 그것이 그의 일상이고 삶인 것이다.


장애인에게 어떤 배려를 하든 간에 분명히 비장애인보다 핸디캡이 있다. 어쩌면 남들보다 불리하게 사는 것은 숙명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회적 서비스와 수준 높은 복지지원이 이루어지더라도 장애인의 핸디캡을 완벽하게 채울 순 없다.


그는 후천적 중증장애인이다. 어쩌면 노약자석에 앉아있던 노인들보다 더 빨리 죽을 수도 있다. 큰 수술을 겪었고, 건강하지 않은 신체와 신체기능 때문에 그들보다 더 긴 시간 불편한 몸으로 살다가 빨리 죽을 수 있다. 그런데 그는 배려받지 못했다.



우리나라 장애인들은 어떤 복지적 혜택을 받을까? 그들에게 주어지는 장애연금은 대개 최저생활비조차 안 된다. 그것도 모든 장애인·중증 장애인 모두가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중앙·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생계비를 받는 것도 장애인 중에서도 선택받은 자만의 이야기인 것이다.


부모·형제 등의 수입과 재산으로 장애인의 생계비를 막는다. 금수저 집안이라서 막는 게 아니다. 많은 장애인의 가족들이 서민이고 그들도 힘들게 자신의 가정을 돌보며 벌어 먹고사는 사람이다. 가족의 수입과 재산으로 장애인의 생계비를 지급 유무를 가리는 것은 결국 가족들에게 장애인의 생명권을 떠넘기는 행위다.


밥 먹을 때 숟가락 하나 더 놓고, 잠잘 자리 하나 더 깔면 되는 문제로 보는 것이다. 이 국가가, 사회가, 공동체가 말이다. 실제로 장애인(일상생활 및 사회생활에 지장 없는 장애인을 제외한다)을 돌보기 위한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돈을 만들기 위해서 일하고, 일하려면 돌볼 사람을 필요로 한다. 악순환이다. 장애인도 장애인 가족도 같이 병드는 시스템이다.


생리적 기능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약을 매일 먹고, 밥을 만들 능력 혹은 직접 떠먹을 능력도 부족한 장애인들이 있다. 일을 할 수 있어도, 까다로운 조건과 최소한의 노동만 가능한데 그런 장애인들을 고용하는 문을 바늘 구멍만하다. 생명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도 어려운 삭막한 사회에서 인간적인 배려를 바라는 건 어리석은 짓거리가 된다.


아, 인간으로서 응당한 진리를, 존재 자체를 망각한 세상이다.

우리는 홍익인간이 아니다. 최소한 홍익인간이 되려는 노력조차 부족한 존엄도 없는 인간이다. 당신의 존엄 따위는 타(他)를 행복하게 하면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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