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30일 쓰는 편지
드라마에서 머리에 종양이 있는 노인이 임상실험인 수술을 받기로 해. 완전한 치료법이 아니기 때문에 종양이 사라지거나, 수술대에서 죽겠지. 만약 수술을 받지 않아도 그 노인은 곧 죽을 거야. 머리에 나쁜 종양이 있거든.
그녀는 수술동의서에 싸인하면서 CPR에 동의하지 않는 싸인도 해. 심장을 살려서 누워만 있는 삶은 싫다면서 말이야.
예전에 나도 그 서류를 받았어. 아빠의 심장이 멈췄을 시에 다시 뛰게 할지, 그냥 둘지 정하는 서류였어. 나랑 언니가 결정해야하는 문제였어. 그때 나는 단호하게 아빠 심장이 멈춘다면 다시 움직이도록 하지 말라고 했어. 언니는 그래도 아빠인데, 아빠 생명인데 어떻게 그렇게 포기할 수 있냐고 했지. 우선 의사에게는 상의하고 싸인하겠다고 전했어.
그리고 언니를 붙잡고 말했어. 아빠 심장이 멈춘 다음에 다시 뛴다면 아빠는 더 이상 오늘까지 보던 모습조차도 아닐 거라고. 기계에 의존해 있을 뿐이라고. 그리고 죽지도, 살지도 않은 아빠를 기계에 맡긴 채 병원비는 폭탄같이 나올 거라고. 그리고 운이 좋으면 아빠는 며칠, 한 달, 일 년, 삼 년, 얼마나 살다가 의학적으로 죽은 상태가 올 거라고. 운이 나쁘면 십년쯤이나 더 오래 우리는 병원비로 빚을 감당해야할 거라고.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나도 아빠가 건강하게 살길 바라고, 심장이 멈춘다면 그건 죽음으로 놓아줘야 한다고 했어.
그날, 10월 12일 9시께 아빠는 사망했어. 피범벅인 의사, 간호사들 사이에서 누군가 사망시간을 말했을 거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을 거야.
만약 그때 아빠의 심장을 돌려놨다 해도 말이야. 아빠는 또 그런 응급상황을 맞이했을 거야. 한두 번 혹은 더 그걸 반복해도 아빠는 얼마 못가 출혈이나 뇌에 산소공급이 안 되서 떠나버렸을 거야. 아빠에게 남은 시간은 아무리 애써도 제정신일 수 없을 만큼의 고통과 악취 속에서 반복되는 위기만은 맞을 뿐이었어.
아빠 마지막 모습이 마치 옛날 도깨비 만화영화에 나오는 망태할아버지 같았어. 배추도사 같기도 했어. 내가 아마 배추도사 같다고 했던 거 같은데, 아빠는 내 목소리에 집중이 됐어? 아빠 얼굴이 너무 부어서 잘생긴 얼굴이 망태할아버지처럼 변했었어. 그래서 아빠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어. 목이 너무 아파져서, 콧물이 흘러서.
아빠 혹시라도 내가 CPR동의 안한다고 싸인한거 알고 있다면 서운하거나 배신감 느끼지 않아? 나는 아빠를 살릴 수 없었어. 의사도 아빠를 살릴 수 없었어. 알아. 불공평하지. 아빠는 너무 일찍 죽었어. 내가 결혼하는 모습도 못보고, 손주도 못보고, 아니 내가 취업하는 모습이나 글쟁이로 살아가는 모습도 못봤잖아. 그래서 나는 아직도 아빠 애기야. 아빠의 작은 딸, 어린 딸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