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암에 걸린 게 화난다.

by 즐거운 사라

친구가 암에 걸렸다. 소위 착한 암이란다. 하지만 10년 이상 생존율이 95%다. 백 명 중 다섯 명은 그 안에 죽는다는 거다. 꽤 높은 수치라고? 그렇게 따지면 완전히 안전한 삶은 없을 거라고?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긍정적인 95%의 확률은 장식인 양 신경 안 쓰고, 부정적인 5%만을 상기시키고 있다. 내 친구는 십 년 뒤에 어떤 모습일까? 곁에 있을까? 없을까? 5%의 막연한 미래를 상상한다.


암으로 돌아가신 아빠는 두경부암 말기였다. 5년 생존율이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희망적이었다. 당연히 소수의 확률에 해당할 것 같았고, 더 살 수도 있다고 느꼈다. 진단 후에도 다른 말기 암 환자보다 건강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적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대체 언제 돌아가실지 감을 잡을 수 없는 게 힘들었다. 위독한 때는 시간표가 있는 게 아니었기에 시간 맞춰 달려가기도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임종을 놓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순간 ‘오늘 내일이 고비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최소한 이번 달, 이번 주가 고비라고 시간표를 듣고 싶었다.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됐던 건 아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준비가 안 됐는데, 죽음을 기다리게 되는 게 괴로웠다.


아빠는 당연히 5년도 못 살고 돌아가셨다. 의사들은 꽤 오래 버텼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시기에 당연히 진행된 아픔으로 돌아가셨다. 근데 죽기 전까지 더 오래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미리 장례식 절차나 비용을 알아보고, 장례식장소까지 고려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더 오래 살 거라고 생각했다. 현실적인 대처를 고려하면서 왜 죽음에 대한 예감은 막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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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 났던 거다. 아빠가 오래 살면서 내가 꿈을 이루는 것, 가정을 이루는 것 등을 보길 바랐다. 하지만 아빠가 아픈 상태로 오래 사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아빠는 오래 살 수도 없고, 건강해질 수도 없었다. 그래서 화가 났다. 화를 누르다 보니 죽음에 대한 감각도 꾹꾹 눌렀다. 멀고 먼일처럼 생각하지 않으려, 느끼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금도 친구가 암에 걸린 게 화가 난다. 늦게 아파도 되는 것은 젊은 나이에 느끼는 게 잔인하고, 좋은 청년인데 상이 아닌 벌(암)을 받은 것 같아 불공평하다고 느낀다. 그 친구가 또 힘들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게 분하다.


그 친구가 빨리 내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예상을 못 하면 이번에도 막연한 희망에 괴로울까 봐 십년 뒤쯤은 내 가슴이 아플 수도 있다고 방어하는 거다. 지금은, 일이년쯤은 괜찮아 보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어갈걸 걱정한다.


아빠는 말기 암 환자였지만 일도 했고, 운동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그럴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을 줄 알았다.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을 기회가 더 있을 거라고, 같이 산에 오를 날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위에 호스를 연결한 뒤에야 더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그 뒤로는 모든 걸 빨리빨리 잃어갔다.


친구는 젊으니까, 착한 암이니까, 예후가 좋다고 하니까. 방심하고 괜찮다고 하다가 하나를 잃고 전부를 잃어버릴까 봐. 아쉬움만 덩그러니 남을까봐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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