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해방을 원했던 어린 소녀.

내가 성 칼럼을 쓰고 있는 여정.

by 즐거운 사라

9살 때 이차성징이 시작됐다. 가슴이 아프고 음모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가족들은 내가 여성으로 자라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무렵 언니는 아동용 브래지어를 착용했다. 언니와 비슷하게 이차성징을 시작했지만, 언니는 언니라서 신경 써주고 나는 어리니까 별로 신경 써주지 않았다. 아마 고작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에게 여성 속옷을 입히는 거 자체가 정서적으로 익숙하지 않았던 거 같다.


10살 때, 같은 반 친구가 유방 생기기 시작했다고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차성징을 시작한 처음으로 신체변화가 자랑스럽고 좋은 일이란 걸 느꼈다. 수줍지만 누군가에게 자랑할 수 있는 친구의 모습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하루는 그 친구네 놀러 갔는데, 가족들 모두 친구의 이차성징 과정에 관심이 많았다. 속옷 착용부터 유방의 진화에 대한 것까지 대화했다. 요즘 그 가족의 핫이슈는 친구의 이차성징 시작이었다. 곧 초경도 시작할 거 같다며 가족 모두 축제를 기다리듯이 즐겁게 대화했다. 심지어 아빠는 직접 새 브래지어를 친구에게 입혀줬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개방적인 걸 지나쳐 과한 게 아닐까 하는 속으로 판단의 갈등을 겪었지만, 그 가족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브래지어를 입지 않은 내게 친구는 우쭐거리며 말했다. 자기가 나보다 유방이 조금 더 커서 반드시 브래지어를 입어야 하고, 나는 조금 더 있으면 엄마가 꼭 사주실 거라고 위로를 가장한 자랑을 했다. 우쭐거림이 못마땅했지만 큰 유방이 질투 나진 않았다. 성적 매력에 대해 깨닫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친구는 뚱뚱했고 나는 날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브래지어를 입은 친구가 부러운 건 사실이었다. 엄마에게 몇 번 브래지어를 입어야 할 거 같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매번 내가 어리고 아직 유방이 작아서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느 날은 언니 가슴과 내 가슴 크기가 비슷하다고 말했다가 나를 한심스러워하는 태도에 수치스러워 더는 브래지어를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언니가 첫 브래지어를 착용한 시점인 11살 때 브래지어를 입게 해줬다. 기분이 묘하게 좋았지만, 한껏 티를 내면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까 봐 덤덤한 척했었다.


사실 몰래 언니 브래지어를 입어보곤 했다. 그러다 발각되면 언니는 짜증을 냈다. 자기 속옷을 입는 게 불쾌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마저 언짢았다. 언니만 유방이 나온 게 아닌데 브래지어는 언니만의 전유물이란 사실이 너무 언짢았고, 매일 어깨를 구부리며 가슴을 가려야 하는 내 신세가 너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브래지어를 입고 싶으냐며 짜증을 내던 언니가 어찌나 속 좁고 치사해 보이던지 그 태도만으로 수치스러웠다.



유방이 나온다며 자랑하던 친구에게는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여동생이 있었다. 새 브래지어를 선물한 아빠도 있었고, 온 가족이 축제 기다리듯 친구의 초경을 기다렸다. 그런데 나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학교에 가면 짓궂은 남자애들이 장난으로 가슴을 때릴 때 느끼는 엄청난 고통뿐이었다.



12~13살 정도 되자 나는 거의 성인 여성의 몸이었다. 신장과 몸무게는 160cm와 50kg을 조금 넘었다. 가슴은 B컵이었고, 엉덩이는 36인치였다. 가끔 고등학생이나 성인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인 대상 설문조사에 질문을 받거나, 성인인 줄 알고 접근하는 남자도 있었다.


어린 나이에 노골적인 시선이나 성희롱 수준의 시선을 받는 일이 잦았다. 가슴이나 엉덩이를 빤히 쳐다보거나 몸매에 대한 발언을 서슴없이 던지는 사람들이 다소 있었다. 칭찬을 가장하며 함부로 던지는 말과 시선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 당시에는 잘 몰랐다. 주니어 옷이 맞지 않아 숙녀 매장에서 옷을 사야 했는데, 외모 때문에 문란한 옷을 입지 않아도 문란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실제로 가장 긴 시간 수치심을 느꼈던 건 학교였다. 성숙하고 튀는 외모로 나를 차별하던 남자 교사가 있었다. 그는 유난히 나를 싫어하고, 차별하고, 뒤에서 비방하기도 했다. 내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그 교사가 나도 싫었다. 그리고 나를 성적으로 바라보는 그 눈빛도 싫었다. 어린 나이지만 느낄 수 있었다. 엉덩이가 딱 붙는 운동복을 입거나, 소매가 없는 상의를 입었을 때, 치마를 입었을 때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눈빛과 평소와 다른 표정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표정은 말하기도 역겹지만, 남자의 표정이었다.






나의 여성성은 초경 때도 빛을 바라지 못했다. 청소년드라마 반올림의 옥림이처럼 케이크식도 없었고, 나만의 생리대를 선물 받지도 못했다. 대신 변기에 앉아 산부인과에 가야 한다며 소리를 질렀고 화장실에 메아리만 남았다.


나는 일찍이 성에 관심이 많았다. 나의 소중한 여성성을 충분히 환영받지 못한 아쉬움 때문인지, 부정과 불공평함에 대한 반사 작용인지, 어쨌든 관심이 많았다. 초경 당시, 현재와 별 차이가 없을 만큼 성 지식이 상당했다. 오히려 아는 게 탈이었다. 초경의 흔적을 보며 부인과 질환이 생긴 줄 알고 소리 질렀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초경을 상기시켰지만, 이미 불안과 공포로 초경을 시작한 셈이었다.


생각해보면 특별하게 좋은 성적 체험은 없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나쁜 성적 경험 때문에 내가 성적 존재로서 예민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성적인 존재라는 인식하기도 전에 나는 성적인 존재임을 체험하곤 했으니까. 나는 9살 때 처음 몽정을 했고, 사정 비슷한 것을 경험했다. 내 버자이너는 신랄하게 성적 존재를 알려왔다. 잠복기에서 눈을 떠버렸다는 걸 알려왔다.



첫 몽정 이후로 확실히 나는 예민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것과 느낌을 표현할 자신도 없고, 표현해서도 안 됐다. 성적인 부분이라면 신체변화부터 신체적, 정신적 경험까지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나눌 수 없어서 답답했다. 내가 왜 몽정한 것인지, 그 이상한 버자이너의 느낌은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대화할 사람조차 없었다. 몽정인지 개념도 몰랐지만, 입 밖으로 내보내선 안 된다고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예민한 유방 때문에 어깨를 구부리고 다니는 아이에게 브래지어도 입혀주지 않는 부모님과 대화했어야 했을까? 이미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한 담임교사와 대화해야 했을까? 나보다 덜 예민한 어린 언니와 대화해야 했을까? 브래지어라는 단어만 나와도 쑥스러워 쥐구멍을 찾는 친구들과 대화할 수도 없었다. 나는 겪고 있는데, 내 존재가 이러한데 갇혀있는 성이라는 주제는 몹시 답답했다.



언젠가 갇혀있는 성(性)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9살 때는 브래지어를 입고 싶어 했고, 유방이 제법 나왔던 14살 때는 ‘NO bra’를 선언하고 입지 않고 다녔다. 그 당시 속옷을 입지 않는 건 이단적이었다. 9살 때는 브래지어 입는 게 이상한 일이더니, 14살이 돼서는 노브라가 이상한 일이었다. 교내에 이상한 소문이 퍼질 정도로 괴이한 일이었다. 소문이라 봤자, 팬티조차 입지 않는다, 야한 걸 좋아한다, 유두 가리개만 하고 다닌다는 둥 하는 어처구니없는 소문들이었다. 나는 소문 아랑곳하지 않고 한동안 노브라 상태로 다녔다. 속옷 착용 여부는 사람들 이목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 브래지어가 불편하게 느껴졌고, 브래지어로 정돈된 유방 모양이 아닌 자연스러운 유방의 모양도 예쁘다고 표현하고 싶었다.


13살 때는 거미의 짝짓기 행위를 완전한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시를 썼다가 담임과 상담해야 했다. 12살 때는 나중에 이성과 완벽한 키스하기 위해서 동성 친구와 키스 연습을 하는 문제로 친구들과 많은 고민을 했다. 결국, 키스 연습은 하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처음으로 성에 대해 과감하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밖에 나는 그쯤 성과 관계에 대한 글을 썼다. 주로 시나 산문을 썼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내 습작 노트를 학교 친구들이 돌려 보곤 했다. 쉬는 시간에는 성 고민 상담은 주로 내 주위로 몰려와 시작했다. 거의 성적 용어나 이차성징에 대한 것이었는데 어리기 때문에 경험담도 아니고 거의 막연한 궁금증이라 시시했다. 그리고 어느 날 엄마가 습작 노트를 보고 심각한 고민이 담긴 이메일을 보내셨다. 일기장이 아니라 친구들이랑 돌려보는 습작 노트라고 말한 뒤에야 엄마의 걱정이 끝이 났다. 그 뒤로 엄마는 내게 마광수 같은 작가가 될 거 같다고 하셨다.


내 성장기는 성과 떼어낼 수 없는 사건이 가득했다. 내가 특별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더 예민하고, 더 도드라지는 것에 자연스럽게 집중했던 것 같다. 성에 대한 어떤 주제도 나의 일상이고, 삶이었다. 지금도 성에 대한 글을 쓰고 앞으로도 계속 쓸 생각이니 말이다. 오늘도 성적 존재로서 글을 쓰는 여정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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