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미쓰 Dec 27. 2020

장사의 신

퇴사자를 미리 사랑해주세요

나는 외국계 회사의 세일즈 부서에서 꽤 오랜 기간 일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주 같은 세일즈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2명의 후임들이 회사를 그만둔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건 보통 나보다 연배가 있는 사람들의 얘기다. 이건 보통 회사의 목표이기도 하다. 연봉이 높은 사람들을 쳐내는 것이 경제학적인 논리로 아주 효율적이며, 그러면서 젊은 피의 신입들을 받아들여서 항상 긴장과 활기를 부여하는 것이 대부분의 회사가 추구하는 운영방식이다. 회사에서 급여나, 나이나, 업무의 강도나 중간쯤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나인데, 나보다 어린 연차의 친구들이 이 코로나 시국에 회사를 떠나간다는 것은 아주 간단히 두 가지의 이유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회사가 X 같아서', 두 번째는 '하는 일이 X 같아서'이다. 아주 낮은 확률로 떼돈을 벌어서도 있는데 경험상 떼돈을 벌더라도 회사가 좋거나 하는 일이 좋으면 쉽게 나가지 않는 케이스를 많이 접했다. 보통 두 가지가 한 번에 오는 케이스가 많은 것도 문제이다. 그러면 결론은 뭐다? 우리 회사는 X 같고, 우리는 X 같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로 치환이 가능하다.


자기가 나온 군대가 제일 힘들다고 군대 썰을 푸는 남자들의 허풍처럼, 직장생활도 자기가 다니는 회사가 가장 힘들기 마련이다. 자기객관화를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나로서는 우리 회사는 굉장히 워라밸을 갖춘 회사이며, 업계에서 수준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고객들도 우리의 입지를 인정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보수도 나쁘지 않다. 같은 업계의 다른 회사 직원들은 우리 회사 직원들을 부러워하며 한 번쯤 가고 싶어 하는 회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계속 사람들이 이탈하고 내홍이 생긴다.


이 상황을 보면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딱 하나였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우리 회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일즈와 마케팅의 가장 큰 목표는 두 가지의 갈래로 수렴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고객을 사랑해야 하고, 내가 우리 회사를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세일즈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며, 열반이자 유토피아이다. 축구에서 4-2-3-1을 쓰든 4-4-2를 쓰든 결국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것이며, 속독을 하든 10 회독을 하든 합격하면 장땡인 게 현실이다. 결과 지향적이란 특성이 나쁜 것이 아니다. 특히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앞서 얘기한 판매의 가장 큰 두 가지의 기틀. 고객을 사랑하고, 회사를 사랑하면 세일즈가 완성된다는 논리는 사실 실생활에서 정말 많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진짜 친한 사람 한테, 내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정보가 있다고 치자. 그러면 그걸 알려주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의 선한 이치이다. 내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는 '야 내가 진짜 곱창 찐 맛집 하나 알아냈는데 다음에 꼭 같이 먹으러 가자' ' 너 치킨 좋아하지 않냐? 오늘 배민 교촌치킨 5천 원 할인이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부가적인 의사결정 요소가 따라붙기는 하지만 진심을 담은 호객행위는 호갱 양산이 아니라 단골을 양산한다.


진짜 곱창이 괜찮을 수도 있고, 교촌치킨이야 항상 맛있다. 하지만 이럴 수도 있다. 나와 같이 곱창을 먹었던 친구가 다른 사람과 약속이 있을 때 우연히 곱창을 먹게 된다면? - 나랑 같이 먹었던 그 곱창집을 한번 떠올릴 수도 있다. 재방문에도 퀄리티가 나쁘지 않았다면, 긍정의 경험은 중첩되면 굉장히 두꺼운 갑옷처럼 벗겨내기가 쉽지 않다. 곱창에 관성이 붙는다. 교촌치킨도 마찬가지다. 교촌의 팬이라면 교촌 메뉴를 보다가 허니콤보에 손이 갈 수도 있다. 이럴 때는 교촌에 갑옷이 입혀지며, 배민의 팬이라면 또 언제 쿠폰을 주나 보다가 다른 메뉴를 먹어볼 수도 있다. 이럴 때는 배민에 갑옷이 입혀진다. 갑옷으로 단단해진 재구매의 파워는 세일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판매를 해야 할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세일즈맨으로서는 당연한 것이다. 나랑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나만의 곱창 핫스팟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 그런데 이것은 직업인으로서의 윤리와 연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돈을 받으면 하기 싫은 대상에 애정을 가지고 노력해야 할 필요도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누가 나에게 돈을 준다면 나의 곱창 핫스팟을 알려줄 용의도 있다.


또한 내가 팔고자 하는 대상 역시도 사랑해야 한다. 나는 곱창을 사랑하고 교촌도 사랑한다. 이 두 가지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친절히 소개하고 안내해주고 싶다. 내가 자주 가는 곱창집은 언제 가도 친절하게 나를 맞아주고, 이것저것 추가 메뉴를 시키면 곱창전골에 라면사리 정도는 항상 서비스를 내어준다. 교촌의 허니콤보는 정량화된 조리법으로 단짠단짠의 세계에서는 실망시킨 적이 없다. 치킨을 사랑하지만 호식이 치킨이나 처갓집 치킨에 요지부동한 사람들이라면 한번 권유해보고 싶은 욕구가 절로 생긴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회사는 보통 끊임없이 일하기를 요구한다. 사랑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회사는 다르다. 치명적인 것은 세일즈맨과 회사가 대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회사는 세일즈를 하면서 물건을 사줄 대상만을 분석하고 사랑한다. 구매층의 학력, 취미, 월 사용량을 치밀하게 분석하면서 세일즈맨들이 진짜 이 제품, 혹은 우리 회사를 사랑하고 있는지 조사하지는 않는다. 한 명의 세일즈맨이 100명의 고객을 관리한다고 치면, 고객 100명을 분석하고 관리하는 것보다 세일즈맨 한 명을 분석하고 관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하지만 어느 회사도 이렇게 운영하지는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 회사의 물건을 잘 팔아올 수 있는 세일즈맨은 사실 죽은 영업이다. 기계적인 어투와, 기계적인 브리핑이 따른다. '이 곱창에는 콜라겐 몇 그람이 들어있으며, 특별 배합된 양념으로 제조되었습니다' 보다는 '오늘 제가 진짜 좋은 데서 한번 쏠 테니 가실래요?'가 잘 먹히는 법이다. 하다 못해 제품이 좋아도 세일즈맨이 잘 팔아줄 마음이 없다면 매출이 지지부진하기 마련이다. 흔히 비용절감이나, 경영진의 보여주기 식 의사결정이 이러한 사례를 잘 야기하곤 한다. 조직을 불합리하게 재단하고, 연봉이나 성과급에 인색하며, 공정성을 해하는 의사결정이 반복되면 직원들은 마음이 흔들린다. 나비효과처럼 직원들 마음의 사소한 흔들림은 고객 100명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며 매출 100억을 흔들리게 하는 일이 항상 발생해 왔다.


수많은 회사가 조직문화 개선을 새해에 외치지만, 올바른 방향을 정확히 인지하는 회사는 많지 않다. 가장 핵심은 직원의 마음을 사는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연봉의 대폭 인상이지만, 그보다 더 비용이 적게 들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법으로는 정확한 의사결정이나 공정함 추구. 위기시 직원들의 방패막이가 되는 것. 업무 스트레스 관리. 진심을 담은 직원 사랑 표현 같은 것들이 있다. 정량적 해결과 정성적 해결은 동시에 진행될 때 효과가 배로 증가한다.


우리 회사는 직원들을 감시하고, 부당하게 조직변경이 발생했고, 공정하지 못한 업무분담이 이뤄져 왔다. 직원들은 시종일관 부당하다고 이야기해 왔으나 개선되지는 못했다. 의사결정권자들이 무언가 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은 백번 이해한다. 그러나 이 계획이 실패했을 때 어떤 식으로 직원들을 배려하고 도와줄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 직원은 시키는 일을 해야 하니까 일단 다닐 수밖에 없다. 그것이 월급쟁이의 비애이기도 하다.


경영진들은 의사결정 후 그 결정이 잘 되었는지 잘못되었는지를 항상 수치적으로만 비교한다. 숫자는 경향성을 오롯이 잘 표현해주는 지표이지만 그 이유를 공표해주지는 못한다. 이유는 또다시 분석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경영학적 툴이나 시스템을 사용하게 되면 결국 그것도 또다시 숫자로 치환된다. 세일즈는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것인데, 숫자로써 완벽히 계량화한다는 것 자체가 애당초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떠날 예정인 후임들은 (아마도) 상기 기술한 이유로 회사를 사랑하지 못했다. 회사를 사랑하지 못해서 회사의 제품 역시 사랑하지 못했으며, 업무도 불편하게 여겼을 것이다. 맛없는 곱창집을 사랑하는 사람한테 데려가야 한다고? 와. 죽기보다 싫은 일이다. 나도 회사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린 지 오래이다. 하지만 다시 사랑하고 싶다. 역설적으로 내가 가장 신나게 일했을 때는 회사에서 세일즈 압박에 굉장히 시달리고 있을 때였는데, 팀장님이 해준 한마디 때문이었다.


"스미쓰야,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되면 말지 뭐, 열심히 해서 안 되는 건데 어떻게 더 하냐. 그건 니 잘못이 아니야"


일이 힘들고, 팔아야 할 제품도 그다지인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때 우리 조직을 좋아했다. 모든 사람이 다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몇몇은 날 좋아했으며, 팀장님이 내편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애정과 의욕은 이렇게 사소한 불씨 하나에서 들불처럼 번지기도 한다. 늦게 퇴근해 달빛 색깔의 맥주를 목으로 넘길 때 피곤함도 같이 삼키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직장생활은 누구에게나 고단하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당신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아 따뜻한 얘기를 해보길 바란다. 옆에 있는 사람의 직장생활을 걱정하지 말고, 옆에 있는 사람의 삶과 행복에 대해서 말을 건네주길 바란다. 당신이 윗사람이면 더 좋겠다. 당신이 만약 어느 회사의 사장이라면 당신의 회사는 이미 성공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나도 모르게 육아를 시작당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