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시간 큰 문제 없이 잘 지내왔다. 그래서 같이 무언가를 배워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두 시간씩 같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근처 식당을 돌며 매주 맛있는 걸 먹었다.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내가 너무 많은 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 시간은 오래 계속되었을지도 모르고 우리는 여전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불쑥, 같이 커피를 마시다 계속 내 신경을 곤두서게 했던 후루룩 소리가 다른 테이블이 아닌 그 아이한테서 난다는 걸 눈치챘다. 그날은 그냥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감기에 걸렸다거나 코가 막혔다거나 하는 이유로 후루룩 소리가 날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있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지난 몇 년간 수십 번, 어쩌면 수백 번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셨을 텐데 소리가 나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루룩 소리는 다음 주에도 이어졌다. 인식했기 때문인지 곧이어 밥 먹을 때에도 소란스러운 소리가 난다는 걸 알아버렸다. 매주 무얼 먹을지 밥을 먹고 후식은 어떻게 할지 커피가 맛있는 곳을 갈지 디저트가 맛있는 곳을 갈지 아니면 시원한 맥주를 마실지, 즐겁던 시간은 그때부터 괴로움으로 바뀌었다. 무얼 먹든 마시든 내 귀에는 씹고 넘기는 소리만이 날카롭게 내려꽂힐 뿐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것 때문은 아니었지만,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 같이 그림을 그리기 어렵게 되었고 그러자 같이 밥을 먹을 일도 그리 많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알지 못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것 때문은 아니었지만.
낯선 사람, 혹은 충분히 친밀하기 이전의 사람과 마지막으로 함께 식사를 한 건 언제였을까.
지금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친구 몇 명을 제외한 그 누구와도 함께 식사하지 않는다. 이 친구들을 이외의 약속이나 미팅이 생기면 항상 오후 3시로 정한다. 그리고 우리는 5시쯤 헤어진다. 가끔 저녁을 권하는 사람도 있지만 상대방의 맛있는 식사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 그럴 때면 항상 에델리를 떠올린다. 호노카아 보이에 나오는 에델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라고 했더니 눈을 크게 뜨고 그 에델리 말인가요? 라고 되물은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 에델리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에델리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도 오후 3시 카페에 앉아 있다. 케이크를 권하는 상냥함에 미소로 거절한다. 커피잔만 놓인 테이블을 바라보며 누구와도 허물없이 즐겁게 식사하던 시절을 마치 전생처럼 떠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