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일어나 이르게 집을 나선 건, 생일 케이크를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 간밤에 눈이 내린 건지 거리는 여전히 눈이 녹지도, 쌓이지도 않은 채 질퍽거렸다. 그 길을 조심히, 그러나 조급히 걸어 아직 한산한-이제 막 문을 열었기에- 카페로 들어갔다. 예약하려고 전날 들어가 보았으나 이틀 전까지 예약이 가능하다고 한다. 너무 당연히도 전날 예약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조차 하지 않은 나와, 반대 상황이었다면 이미 일주일 전에 모든 정보를 파악해 날짜에 맞추어 케이크 예약을 완료하고도 남았을 생일자를 떠올려 본다.
다행히 예약 없이 케이크를 살 수 있었고, 손에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종이봉투를 든 채 지저분하고 질퍽한 거리를 걷는다.
서점은 이른 시간이라 아직 한산했지만 앉을 자리는 없었다. 빠르게 한 바퀴를 돌아보고-이틀 전에 이미 왔었기 때문에- 몰스킨 앞에 선다. 설날도 지나 50% 세일하는 2025년 다이어리를 사기 위해서다. 데일리 컴팩트 레드 소프트 커버,가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나 -여기는 50% 할인 매대다- 당연하게도 없었고, 라지 사이즈는 인터넷에서 30% 할인하는 걸 보긴 했으나 그렇게 택배를 받으면서까지 사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되도룩 눈으로 보고 거기에서 바로 사 오는 걸 선호한다. 위클리 제품은 사이즈 컬러별로 꽤 있었지만, 그 알팍한 두께에 아무래도 마음이 가질 않는다. 데일리는 블랙 하드커버 라지 사이즈 밖에 남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도 커버만은 소프트를 사고 싶다. 결국 돈을 더 주고 2024년 7월부터 2025년까지 쓸 수 있는 데일리 -가장 두꺼운- 소프트 커버 블랙으로 골랐다. 너무 오래 고민해서 직원분께 사과까지 하고 나왔다. 오늘 일기를 쓰려고 펼치니, 앞의 반 정도가 고스란히 빈 종이다. 그럼 이 빈 종이에는 매일 그림을 한 장씩 그려볼까, 뭐든 상관없겠지. 낙서든 습작이든 수채화든. 그리고 그 그림이 많이 모이면 전시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자선 바자회처럼 그림들을 만 원, 이만 원에 팔아도 좋겠다. 그 돈을 모아 내년에 또 몰스킨을 사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빙그레 웃고 있다. 이것으로 이미 본인의 역할을 다했다. 행복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