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차오른다

by 백현진

한 달 만에 왔더니 항상 샌드위치를 사던 편의점이 허물어져 있다. 바로 근처에는 식사 할만한 곳도, 음식을 살 만한 곳도 없어 무거운 가방을 들고 조금 기울어진 채 묵묵히 이미 지나 온 다른 편의점으로 되돌아간다.
밝고 넓은 그곳은 맛있는 냄새가 풍기고 넓은 와인 매대까지 갖추고 있었지만, 정작 샌드위치처럼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여기서도 빈손이라면 이제 역 앞으로 가야한다. 도보 10분 정도 거리지만, 내가 이미 그곳에서부터 걸어온 걸 생각하면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같은 거리를 40분 정도 헤매는 것이 된다. 보통 때라면 그 정도는 걸을 수 있지만, 오늘은 시간도 없고 짐이 너무 무겁다. 할 수 없이 평소라면 고를 일 없는 유부초밥 도시락을 -남아있는 음식 중 그나마 가장 자극이 적어 보인- 결제하며 커피를 살까 말까 고민한다. 어째서 그냥 걷는 길은 괜찮지만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가 다시 걷는 건 싫은 기분이 드는 걸까, 결국 커피는 사지 않는다. 짐이 무거워 거기에 커피까지 들 마음의 여유가 남아있지 않다. 이미 지친 채 목적지를 향해 걸었던 길을 다시 걷고 있는데 오른쪽 뺨이 환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보름달이다.
아직 어두워지지 않았는데도 크고 밝은 달.
내일이 바로 정월대보름인 걸 떠올린다.
2월의 첫날 가느다란 손톱달을 본 기억이 있는데, 달이 차오르는 건 열흘이면 충분하구나. 달을 보고 비로소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그것도 매우 빠르게-을 실감한다. 커다란 우주 속에 살고 있는 게 맞구나, 내가 어떤 상태든 상관없이 바닷물은 밀려 들어왔다가 빠져나가고 달이 차올랐다가 다시 저물어가는구나. 아무 불평도 없이 묵묵히 돌고 있는 지구를 생각하며 그 속에 포함된 티끌 같은 존재인 내 속에서 시시각각 변해가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기분을 떠올려 본다. 인간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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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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