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비령 Apr 28. 2022

다시 살고싶다는 의욕에 대하여

- 랜드(land) 영화 리뷰


이 영화의 초반에서 심리 상담사과의 대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다른 사람과 감정을 공유하기 힘든가요?"


"네..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대체 왜 그걸 공유해야하나?

어차피 공감 못 할 텐데."

"그럼 혼자 고통 속에 있게 되잖아요."


  이 대화를 끝으로 주인공은 휴대폰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버린 채, 세상과 작별하며, 인적이 드문-아니 거의  없다시피 한- 산 중턱의 낡아빠진 통나무 집에서의 은둔 생활을 시작한다. 렌트카도, 트레일러도, 일체의 화학적 생활용품도 버린 채로.


  나는 솔직히 이 영화가 '리틀 포레스트'류의 힐링 영화인 줄 알고 보기 시작했는데, 끝까지 다 본 뒤의 느낌은, '리틀 포레스트'의 잔잔함을 기대하기엔 너무 '광활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잔잔하고 평화롭다기보다는 울창하고 한적하고 고독한 느낌이다.

일단 등장인물이 많지 않다. 우리네 인생에서 그렇게 많은 인간 관계가 필요없듯이, 영화는 치유와 의욕을 얻는 데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치 않음을 알려준다.


  그녀를 다시 살고 싶게 만들고, 살아갈 방법을 알려준 사람은 단 한명이었다.

'요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숲 속 사냥꾼, 한 남자.

그렇다고 이 영화가 남편을 잃은 여자와 아내를 잃은 남자의 통속적인 로맨스를 보여주는 건 아니다.

그들의 로맨스는 시작과 동시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거친 숲 속 생활에서 견디지 못한 죽어가는 그녀를 우연히 발견한다. 그리고 아무 댓가 없이 그녀를 돌보고, 치유하고, 거친 야생 속에서 살아갈 방법도 가르쳐준다. 사람들을 싫어하고, 세상에 지친 그녀가, 그의 도움을 거부하려하자, 그저 '사냥할 방법'만 알려주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주인공 그녀는 참으로 무모하다. 죽고싶은 것도 아니면서, 야생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하나도 모른다. 통나무를 패는 법, 씨를 뿌려 농작물을 키우는 법, 곰과 같이 거친 동물들을 피하는 법, 육식 동물을 사냥하는 법 등....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울창한 숲 속에 들어가서 대체 어떻게 살아남겠다는 건지..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표현밖에는 할 수가 없다. 결국, 한 겨울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낡은 통나무 집에서 곰의 습격을 받아 아사 상태에 빠지고 만다.


  영화의 초반에서 그녀가 번번히 실패하는 모습을 보며, 만약 내가 저 숲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여자 혼자 야생에서 살아남는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사람이 없는 곳이라면 범죄의 우려는 없겠지만, '힘의 크기'로 살아남을 수 있는 약육강식의 원초적 자연의 세계에서, 누구라도 혼자 살아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 어려움을 알면서도 최후의 선택으로 사람들을 피해 산 속 깊은 곳에 숨어버린 그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상해 있었을까.


  사실 극도로 비극적인 상황을 겪은 뒤에는 누구의 위로도 위로가 되질 않는다. 위로는 아픔을 모르는 사람이 형식적으로 건네는 가식일 뿐, 진짜 슬픔에 공감한다면 차마 어떤 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같이 옆에 있어주는 것 정도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랄까.


  영화 속 그녀는 우발적 총격사건으로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을 한 순간에 잃었다. 상실의 슬픔에 대하여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차마 그 아픔의 깊이마저 짐작할 수 없으리라. 슬픔이란 녀석은 너무나 주관적이어서, 누군가에겐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큰 것이라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그 정도'의 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내가 원하는 것을 줬어요. 나는 용서 받았어요."


죽을 병에 걸린 남자의 대사. 그녀는 그 한 마디에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당신 덕에 살고 싶어졌어요."


이건 뭐.. 크리스마스의 선물도 아니고, 서로 아이러니하게, 엇갈리는 장면.


  자신 때문에 가족을 잃었다는 죄책감에 평생 시달린 남자와, 뜻하지 않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여자의 슬픔은 그렇게 서서히 치유가 되어간다. 상처가 치유되는 시간은 때로는 평생에 걸쳐 지루하게 이어진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삶은 어떤 느낌일까?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가슴 속 상처를 안은 채, 언젠가 모든 것이 나아지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그 상처가 너무 깊어서 흔적을 지울 수 없을 때에는 때로 상처는 낫지 않고 더 곪아간다. 영화 속 그녀는 운 좋게, 그녀의 상처를 치유해 줄 천사같은 남자를 만났지만, 우리네 삶에서 그런 행운이 쉽게 오지는 않기에...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잃을 뻔했던 주인공이 '랜드' -깊은 숲 속 대자연의 품에서 상처를 치유했듯, <살아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음>을 영화는 이야기해주고 있다.


 "내가 고통스럽다. 힘들다. 살고 싶지 않다."라는 말조차 할 힘이 없을 때,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롯이 자연 속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보는 것은 어떨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