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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인경 May 24. 2022

track#6 빅뱅이론

라이너노트 Liner Notes


track#0 카세트테이프

track#1 늙은 개의 여행

track#2 하얀 방 안에서

track#3 까만 그림

track#4 혼자 듣는 노래

track#5 273

(Now)track#6 빅뱅이론

track#7 요란한 웃음과 시끄러운 낮의 열기

track#8 날씨 때문에

track#9 바람길

track#10 언제든 슬퍼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track#11 깨진 빛

track#12 타고난 길치






2017-2018년 발매한 12곡의 가사에 대한 이야기를 연작 형태로 적어보려고 합니다. 발매 당시 앨범 소개글에 기초한 글입니다. 한 싱어송라이터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떤 가사를 썼는지 궁금하신가요? 여섯 번째 트랙은 <빅뱅이론>입니다.






https://youtu.be/fW62AipllZU


빅뱅이론


밤바다는 그리 멀지 않아요

그대 머리카락에 소용돌이치네요

흰 별빛은 멀리 있지 않아요

온통 그대 입속에 숨겨져 있네요


작은 바람에도 쉽게 멍드는

그대 가슴을 나는 잘 몰라요

꿈에서 깨면 다시 혼자가 되지만

꿈속에선 아닌가요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바라봤을 때

거기 네가 없으면 몹시 실망할 것 같아

오래전 보다 더 오래된 그 기억 안에서

우린 행복한 것 같은데


하루하루 그저 넓어져 가는

빛도 없는 공간이 우릴 갈라놓네요

그 여름이 다시 찾아올까요

그땐 보게 될까요 하얗게 빛나는 너를


작은 파도에도 쉽게 멍드는

그대 마음을 나는 잘 몰라요

꿈에서 깨면 다시 혼자가 되지만

꿈속에선 아닌가요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바라봤을 때

거기 네가 없으면 몹시 실망할 것 같아

오래전 보다 더 오래된 그 기억 안에서

우린 행복한 것 같은데





 

1. 최초의 이야기


 BBC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칼 세이건의 동명의 저서를 바탕으로 총 13부작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입니다. <코스모스>는 우주의 기원에서 은하의 형성, 태양과 지구, 빛과 생명, 소립자의 세계까지 현대 과학이 밝혀낸 우리 세계의 거의 모든 역사를 들려줍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흥미로웠지만 가장 제 마음을 끈 건 빅뱅이론에 관한 에피소드였습니다.


 빅뱅이론은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설 중 하나로 '대폭발우주론'이라고도 합니다. 기나긴 우주의 시간을 테이프를 되감듯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모든 것의 시작이 되는 한 점이 있다는 이론이지요. 엄청나게 높은 밀도와 온도를 가지고 있다는 그 점이 지금의 모든 은하와 행성, 지구와 우리라는 가능성을 품고 있었던 셈입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동일한 조상을 갖는다는 찰스 다윈의 이야기만 해도 머리가 아득해지는데, 더 나아가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의 시작을 갖는다는 건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빅뱅은 모든 동물과 모든 식물, 모든 행성과 모든 은하가 공유하는 단 하나의 순간입니다.

 


2. Origin of Love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 멀리 보이는 별이 우리 태양계로부터 멀어지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계인도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간이 지나고 그렇게 모든 천체가 멀어지고 나면 우리도 서로 멀어지게 되는 걸까요. 역행할 수 없는 헤어짐의 흐름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같이 야속하고 섭섭합니다. 멀어지고, 흩어지고, 결국은 소멸하는 게 우주의 법칙이라면 우리의 정신은 어디에서 위로받아야 할까요.

 

It was the sad story how we bacame lonely two-legged creatures,
It's the story the origin of love
That's the origin of love

'Origin of Love', Hedwig and the Angry Inch

 

 영화 <헤드윅>의 삽입곡 'Origin of Love'에는 사랑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플라톤의 저서 <향연>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것인데, 책 내용 중 아리스토파네스의 입을 통해 전하는 우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득한 옛날, 인간은 본래 두 사람이 붙어있는 듯한 기묘한 모양이었습니다. 여자와 여자가, 남자와 남자가, 또 여자와 남자가 붙은 듯한 모양이었죠. 다리 넷에 머리가 둘이며 둥글둥글하게 생긴 그 당시 인간들은 신에게 도전했다가 올림푸스 신들의 분노를 사게 됩니다. 인간의 힘을 약화시키고자 신들은 이들을 반으로 갈라 둘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여자와 여자로, 남자와 남자로, 여자와 남자로 각각 나눠진 인간은 처음처럼 한 몸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그 욕망은 (에로스적) 사랑의 기원이 됩니다.



3. 우주의 빛깔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을 보다가 <헤드윅>에까지 생각이 미친 건 다소 과하게 뻗어나가는 제 의식의 흐름 탓도 있겠습니다만,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는 공통점 때문이기도 합니다. 본래 하나였으나 이제는 멀어져 버린 일을 설명할 때 그리움이라는 단어 없이 달리 말할 수 있을까요. 우주의 기원과 사랑의 기원은 닮은꼴입니다.

 빅뱅이론에 따르자면 우리는 영원히 멀어져 갈 테지만 나의 그리움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기억 속에서든 기억나지 않는 먼 과거의 일이든 우리는 하나였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결국은 외롭고 영원히 그리워할 테지만 가끔은 떠올려도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빅뱅으로 시작된 우주의 빛깔을 하나씩 나눠 갖고 있다는 사실을.






라이너노트 Liner Notes


track#0 카세트테이프

track#1 늙은 개의 여행

track#2 하얀 방 안에서

track#3 까만 그림

track#4 혼자 듣는 노래

track#5 273

(Now)track#6 빅뱅이론

track#7 요란한 웃음과 시끄러운 낮의 열기

track#8 날씨 때문에

track#9 바람길

track#10 언제든 슬퍼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track#11 깨진 빛

track#12 타고난 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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