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뽀뽀"
"쪼오옥"
"잘 놀고 있다 봐"
어린이집 앞에서 벨을 누르기 전 들여보내기 아쉬워 아이에게 볼 뽀뽀를 해주고 꼭 안아주었다. 아이에게 뽀뽀해 달라며 엄마 뽀뽀,라고 말하니 아이가 내 볼에 쪽 뽀뽀를 한다. 선생님이 나오자 큰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데 어찌도 그 목소리가 힘찬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독 담임 선생님에게만 씩씩하게 인사하는 아이를 보며, 인사교육 잘 받았나 보네 라는 생각을 하곤 했지만, 한편으론 엄마의 사랑 때문에 아이가 힘이 나는 걸까?라는 궁금함이 생겼다.
아직 엄마의 품이 좋은 다섯 살 셋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찡찡대며 엄마를 찾는다. "안아줘"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알면서도 몸이 바쁜 나는 "조금만 기다려"라고 외친다. 더는 아이의 소리침에 늦출 수 없어 아이가 누워있는 방으로 향한다. "이리 와 안아줄게." 아이의 품이 따뜻하고 좋지만 이제 어린이집에 갈 시간이라 조금은 단호하게 "어린이집 갈 시간이야. 옷 입자"라고 말한다.
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와 서둘러 옷을 입히고 머리를 묶어 주었다.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를 보내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아이를 보내기로 결정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밥을 먹이고 세수를 시킨 후 전날 사준 신발 신고 나가자고 아이의 관심을 끌었다. 아이의 마음이 바뀔까 얼른 신발을 신겨 밖으로 나왔다.
아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아이의 손을 잡으면 이 순간이 천국이지 싶다. 아이와 실랑이할 때는 그리도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마음이 불안한데, 차분히 아이의 손을 잡고 걸을 땐 사랑을 막 시작한 연인들처럼 세상이 아름답고 밝게만 보인다.
아이와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햇살이 부서지는 거리를 걷는다. 양 옆으로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반짝이며 우리를 환영해 주는 듯하다. 이 예쁜 아이를 낳으려고 내가 태어난 건가 싶을 정도로 황홀한 기분이다. 엄마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때만큼은 특별한 내가 된 것만 같다. 사랑스러운 아이의 엄마가 된 것에 감사하다. 영원히 아이와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이 아이가 잘 자라도록 더 많이 사랑해주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아이이게 사랑한다고 더 많이 표현할수록 아이가 잘 자랄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일까? 아이의 힘찬 인사가 내가 준 사랑 때문인 것 같아 뿌듯함이 밀려온다. 엄마로 살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많이 있지만, 때로는 엄마가 되길 참 잘했다, 엄마여서 좋다는 진심이 마음에서 울려온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이 이렇게 애틋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아이가 나에게 먼저 사랑을 주길 기대하기보다 엄마인 내가 먼저 마음껏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 보면, 사랑이 사람의 본성이자 살아가는 힘이라는 걸 느낀다.
우리 엄마도 날 이렇게 사랑했을까,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표현은 잘 못해도 엄마가 준 사랑 덕분에 내가 아이를 많이 사랑할 수 있는 거라고, 그렇게 믿는다. 엄마가 아닌 나 자신으로만 보면 이뤄놓은 것이 별로 없지만, 엄마로서의 나는 충분히 많은 것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 아이를 키우며 서툴고 부족한 모습도 있지만 아이들과 주고받는 사랑의 크기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넘친다.
사랑은 나를 성장시켰고 부모의 마음은 나를 성숙하게 했다.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내 감정이 우선일 때 아이들과 나 자신을 바로 보지 못했지만, 나를 내려놓자 품어주고 보듬는 부모의 사랑이 내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모의 마음으로 내 자녀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니 더 이상 미워할 이유도 판단하고 비난할 이유도 없었다. 인내하고 참아내는 것 또한 부모로서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내 감정을 한발 짝 떨어져 보게 되었다. 한번 더 생각하고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관계의 문제들이 하나씩 풀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나는 나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다. 그것이 성숙된 부모로서의 사랑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셋째의 어린이집 운동회가 열렸다. 남편과 첫째 둘째 아이가 끝까지 함께 참여할 수 없어 며칠 전 엄마에게 와달라고 부탁했다. 서운해할 것 같은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흔쾌히 나의 부탁을 들어준 엄마는 예상과는 달리 운동회에 적극 참여하며 신나는 모습이었다. 전 날 비가 와 엄마가 오기 힘들 것 같아 걱정이 되었는데, 아침이 되니 날이 개기 시작했고, 엄마도 맑게 개는 날씨처럼 날개를 펴고 날아다녔다. 젊은 엄마들보다 더 활동적이었다.
가끔씩 아프다는 말을 하곤 하셔서 와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했는데,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발히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엄마가, 이렇게 활달한 엄마였지,라고 새삼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안에 있는 열정을 발견하고 어떻게 참고 사시는 건지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머리만 희셨지 움직임은 젊은 엄마들 못지않았다. 더 시간이 가기 전에 엄마가 하고 싶은 것들 마음껏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엄마의 꿈을 위해 무엇이든지 해보라고 지원해 드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엄마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잘 되어서 엄마가 날 자랑스럽게 여기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희망을 느끼길 원한다. 엄마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꿈을 펼치길 바란다.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되었을 때 성인이 되었을 내 자녀들도 엄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할까? 엄마를 위해서, 그리고 내 자녀를 위해서 내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 나가려고 한다. 삶에는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현재라면 나의 엄마는 과거이고 자녀들은 미래가 된다. 서로를 보며 과거를 떠올리고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살아간다. 과거 현재 미래 모두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의 과거를 위로하고 현재를 응원하며 미래를 꿈꾼다. 그 속에 내가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테니 엄마가 안심하고 지금을 살며 희망을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엄마의 꿈을 이뤄드리는 딸로 엄마에게 기억되기를.
작가님들께 ⸜❤︎⸝
저는 엄마입니다. 엄마이기를 선택했습니다.
나 자신과 엄마로서의 나는 별개라고 생각해 혼란스러웠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이기를 희망하고 바라자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내 아이가 더 사랑스러워졌고 부모님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도 부드러워졌습니다.
나를 키우며 고생하셨을 부모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엄마를 보며, 엄마이기에 사랑으로 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표현은 투박하고 서툴러도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았습니다.
그 속에 숨은 진심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사랑 덕분에 살아가는 기적을 얻었습니다.
자녀는 부모를 떠날 수 있어도 부모는 자녀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기다림과 주는 사랑으로 다시 일어났습니다.
저 또한 부모의 사랑으로 자녀들을 바라보며 무한히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은 참 신기합니다. 잘 들여다보면 길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글도 그렇습니다. 매번 무엇을 써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작가님들도 계실 텐데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 글의 주제가 보입니다. 일상 자체가 글이 됩니다.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실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같이 글을 써 내려갔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인내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아내는 것은 속으로만 끙끙 앓는 것과 달리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상대의 진짜 마음이 보입니다.
글은 소통의 도구입니다. 마음을 나누는 창구입니다.
만약 글쓰기가 잘 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 맺고 있고 소통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작가님들의 글쓰기를 응원합니다. 사랑합니다.
저의 첫 책입니다. 사랑과 관심 부탁드려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132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