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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달팽이 May 23. 2023

다정함에 대한 갈망은
'나'라는 고유함의 발견으로

고유한 너와 나를 존중해 주세요 

나는 그대에게 다정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다정한 문체로 당신을 위로하고 싶다. 모두가 애쓰며 살고 있으니까 나까지 보태어 조언과 충고를 하고 싶지 않다.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 내 생각 내 상황이다. 같은 사람이어도 다 같지 않다. 모두가 다 다르다. 슬프고 기쁜 감정도 각자만의 슬프고 기쁜 감정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나도 이해받고, 존중받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존중'이란 단어를 참 좋아한다. 존중이란 단어를 풀어보면 '높이어 매우 중요하게 대함'이다. 나는 상대를 높이는 것보다 '모두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에 집중한다. 서로에게 높고 낮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중요한 사람이다. 


나는 존중받고 싶어 글을 쓴다. 말로는 길게 나를 표현하지 못한다. 이렇게 긴 말을 누가 시간을 내어 들어줄까. 글도 세세하게 읽어 주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내게는 참 다정한 사람이다.



다정하지 못한 현실이지만... 


어른이 되면 무조건 독립적으로 내 힘만으로 살아가게 될 줄 알았다.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내 힘 만으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스무 살이 되고 대학 졸업을 해도 나는 그대로였다. 결혼을 하고도 마찬가지였다. 집도 내 힘으로 장만할 수 없었고, 생활비도 음식도 모두 내 힘만으로 마련할 수 없었다.


시부모님께서 전셋집을 마련해 주셨고, 쌀도 반찬도 모두 시댁에서 얻어다 먹었다.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충당이 되지 않았다. 모든 것에 도움을 받았다. 모든 걸 도움 받아서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마음도 의지하고 싶었다. 남편과의 다툼과 싸움 뒤엔 항상 부모님이 계셨다. 여전히 나는 어린아이였다.


아이 셋을 낳고 키우는 지금도 여전히 나는 등대처럼 나를 지켜줄 든든한 지원군이 내 옆에 있길 바란다. 엄마가 되었어도 엄마가 필요하다. 몸이 피곤하고 힘들 땐 아이들을 잠시 부모님께 맡기고 쉬고 싶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있으면 조잘대며 엄마에게 말하고 싶다.


하지만 엄마와 다정히 말을 주고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명령적인 말투와 추궁하는 듯한 물음들은 나를 지치고 힘들게 했다. 남편과 싸우고 친정 집에 갔을 땐 경찰을 불러야지 왜 집에 오냐며 나를 내쫓으려 했다. 나는 따뜻한 부모님의 품이 그리웠을 뿐인데 부모님은 나를 내치려 했다. 자신들에게 내가 짐이 되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등대처럼 나를 지켜줄 희망이 필요하다. 지금 나의 등대는 글쓰기이고, 나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다. 글을 잘 썼다 못 썼다 평가를 하는 대신 힘을 내라는 응원의 메시를 남겨주시는 분들이 있어 살아갈 희망을 갖는다. 그들의 따뜻하고 다정한 한마디는 나를 독립된 어른으로 성장시켜주고 있다.




부모님과 정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힘들어도 말하지 않고 참기로 마음을 먹었다. 절대로 힘든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참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이 공허했고, 몸이 괴로웠다.


현실은 냉혹했지만 꿈에서 만큼은 누군가 나의 손을 잡아 주었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몇 차례 이런 꿈을 꾸고 나니 내가 얼마나 다정한 말 한마디와 품이 그리웠는지 깨닫게 됐다. 혼자가 아님에도 외롭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외롭고 힘들수록 글쓰기에 집했다. 잘해서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인정받고 싶은 욕구만으로는 잘할 수 없었다. 내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에게 나의 글이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글을 썼고, 나답지 못하게 하는 현실들로부터 버터내기 위해 글을 썼다. 내 생활이 만족스러웠다면 실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글쓰기라는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외롭고 힘들수록 나에 대해 생각했다. 나라는 한 사람, 한 존재에 집중했다. 나라는 한 사람은 다른 이들의 말로 바꿀 수 없었다. 그들에게 맞추며 살아갈 수 없었다. 맞추려 하면 할수록 마음이 괴로웠고 행복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나라는 한 존재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나만의 생각과 느낌을 거절당할수록 왜 자꾸 '나'가 '나'여서는 안 되는 건지 궁금했다.


울고 떼쓰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자 하는 어린아이를 혼내고 다그치는 어른들을 보며 그 의문이 더 커졌다. 왜 자꾸 말을 잘 들으라고 하는 건지, 아이의 생각과 욕구에 귀를 기울여 주면 안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 들어주고, 지금 당장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면 이유를 설명해 주면 될 것 같은데, 자꾸만 안된다 하고 말 잘 들어야 한다고 한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니 '나'라는 답이 나왔다. 나 자신이 갖고 있는 '고유함'이었다. 나는 어떤 것으로도 대체되고 표현될 수 없는 고유한 한 사람이었다. 돈이 많고 적고 높고 낮음으로 나라는 한 사람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단지 나였다. 그래서 나라는 한 사람을 비판할 수도 모함할 수도 없다. 모두가 개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살아가게 하는 데에는, '나'라는 고유함이 있었다. 누구의 자녀도, 엄마도 아내도 아닌, '나'였다. 다정하지 못한 말들로 인한 상처가 깊어지려 할 때 '나'에 집중하니 마음을 가라앉일 수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음이 단단해야 한다. 단단함은, 나는 고유하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진다. 힘들어도 도망가지 않고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나라는 존재는 언제든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 고유한 나는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거나 무너질 수 없다. 


'나'라는 고유함을 찾기까지 많은 노력을 했다. 참고 또 참았다.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이 생기거나, 어떤 말들이 나를 괴롭힐 때 같이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상대의 행동과 말 뒤에 숨은 욕구를 생각해 보려 애썼다. 상대방도 나와 같은 고유한 한 사람으로 여기니 견딜 수 있었다. 


스트레스로 몸도 마음도 지칠 땐 내 몸 상태에 집중을 했다. 일찍 잠에 들었고 저녁을 거의 먹지 않았다. 피곤함을 씻는 데에 잠 만한 것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도 10시쯤 잠에 들면 몸이 회복됨을 느꼈다. 덕분에 글도 쓰고 책도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현실을 견디고 있었다.




나는 글을 통해 당신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열심히 살라고 채찍질하고 싶지 않다. 다정한 말들이 그대에게 힘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게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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