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의 달팽이 May 11. 2023

사랑받지 못해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를 떠나보내며

나는 어른이 되어 가는 중입니다.

어지러운 세상에 난 어리숙해
내가 자라기엔 턱없이 부족해
삭막한 도시 속에 길을 잃곤해
너와 숨을 쉬기엔 너무도 흐릿해
자라지 못한 아이는 등 뒤에서 울고....

-정승환, 숨 (닥터 차정숙 ost) 중에서


사랑이라는 말
어쩌면 순간의 감정의 나열
조건이 붙지 나는 무얼 사랑하는가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아이
그래서 무엇보다 신중한 타입
나는 말야 원해 진중한 사이
알잖아 영원은 모래성
잔잔한 파도에도 힘없이 쉽게 무너져
상실은 무엇때문에 슬픈 걸까
사실은 두려운 게 슬픈 거야

-Agust D, 사람Pt.2 중에서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두 곡이다. 이 두 곡을 듣다 우연히 공통점을 발견했다.

'자라지 못한 아이',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아이'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 사랑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더 느꼈다. 심리학을 공부하기 전에는 '내면아이'라는 말을 몰랐는데, 내면아이라는 단어를 알고 난 후 이 노래들을 들으니 더 와 닿았다. 진심어린 사랑이 인생을 바꿔 놓는 다는 것을.


나 또한 결혼 초반 부터 남편과 삐그덕 댔고, 서로를 탓하기에만 바빴다. 갈등이 생기면 서로 대화로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쳤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대면했고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싸우고 풀기를 반복했다.


결혼한 지 10년이 되어가면서 이제야 갈등의 원인을 알게 됐다. 바로 각자 마음 속에 있는 어린아이가 불쑥 불쑥 튀어나와 서로 싸우고 있기 때문인 것을. 그냥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이면 끝이 날 문제인데, 그 간단한 걸 하지 못해 화를 낸다.


성공한 사람이나 돈이 많은 사람은 결혼하면 무조건 행복하기만 할까? 물론 돈이 많으면 삶의 질이야 높아지겠지만, 사랑은 돈이나 지식으로 대체할 수 없다. 몇 평 되지 않는 집에서 살을 부딪히며 살더라도 서로를 위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잠에 들기 전 하루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 하고, 고맙다 사랑한다 속삭이면 그 어떤 부자도 고학력자도 부럽지 않을 것 같다.




흔히들 사랑이 밥 먹여주냐고 한다. 사랑보다 조건을 내세운다. 사랑만 있으면 행복할거라 믿었던 사람들은 현실의 파도를 만나 사랑에 비교를 덧 씌우다 등을 돌리고 만다. 비단 연인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다. 부모 자녀 혹은 어떤 관계에서든 사랑이 비교로 인해 변질되곤 한다.  


어떤 부모는 형제 간에도, 아이의 친구하고도 비교를 일삼는다. 태어났을 때는 마냥 예뻤는데 어느새 다른 아이와 나의 아이를 비교하고 만다. 사람은 누구나 조금 더 잘나 보이는 사람에게 눈이 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비교는 마음 속 아이를 자라지 못하게 한다.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온전하게 나만을 위한 사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아이는 좌절을 하고 자라기를 포기하고 만다. 고개를 숙이고 외면하지만 부모를 향한 미움과 분노가 자란다.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와 자라고 만 분노는 내 삶에 걸림돌이 되어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힌다.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관계가 힘들어지기도 한다.




몸이 자라는 만큼 마음의 키도 자라났을까? 몸도 마음도 모두 어른이 되었을까? 나는 어른이 되었어도 어른이 되지 못했다. 어른이 되었어도 늘 사랑을 받길 원하고 관심을 받길 원한다. 인정받고 존중받길 원한다.


나는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첫번째로,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다. 힘들때일수록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하고 남을탓하지 않아야 한다. 비록 사랑받지 못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하더라도, 어딘가에 자신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게 한 요인들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아주 조금도 사랑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단지, 내면을 성숙하게 할 부모의 지도가 부족했을 뿐이다.


두번째로, 나의 욕구를 남에게 미루지 않는 사람이다.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는 이유를 상대방에게서 찾지 말아야 한다. 단지 지금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유보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더는 누구 때문에, 가족 때문에 라는 말을 하지 않고 싶다. 나의 욕구는 내가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내가 슬프고 화난 이유는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데 무엇을 하지 못해서 화가 난다.'와 같이 지금 일어난 감정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 사람 간의 어떤 대화에서든, 그 속엔 자신과 상대의 욕구가 들어있기 마련이다. 그걸 알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남을 탓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은 어떤 사람의 말이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신념을 믿고 자신의 길을 떳떳이 나아간다. 더 나은 삶이라는 기준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미디어나 SNS에서 보여지는 것들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이런 삶도 있고, 이런 삶의 방식도 있다고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나'와 '너'는 다르다. 부부가 아무리 사이가 좋더라도 완전히 하나가 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똑같을 순 없다. 다름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너'와 '나'는 조금 더 현명해 질 것이고 행복해 질 것이다.




이제 내 마음 속 어린아이는 등 뒤에서 울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