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라는 것은
오직 사랑

나도 사랑받고 싶은 어린아이였다

나는 셋째를 낳기 전,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게 절대 화를 내지 않고 무한히 사랑하겠다고 결심했다. 아이가 두 돌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이 두 가지를 잘 지키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첫째 둘째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내는 일이 종종 있지만 셋째 아이를 낳기 전 했던 결심 때문이었는지, 아이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하는데 마음을 기울이게 됐다.


나는 막연히 사랑받고 자란 사람에 대한 동경을 하곤 했다. 무한히 사랑을 표현하면 아이가 어떤 아이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갈지 궁금했다. 내리사랑이라고 막내가 더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것도 있지만 내가 느끼지 못했던 섬세한 사랑을 아이에게 주고 싶었고, 사랑을 준 결과는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었다.


아이게게 매일 사랑한다 말하며 꼭 안아주고 연신 뽀뽀를 해댔다. 한 번씩 엄마아빠에게 태어나 주어서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아직 언어를 모르는 아이인데도, 사랑의 분위기를 아는지 아이는 내 품에 안기어 세상 그 어떤 부러운 것도 없다는 듯이 어여쁜 소리를 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인내심을 요하고 그 인내심이 바닥이 날 때도 있지만 사랑은 애쓰지 않아도 발현되는 거라 생각했다. 억지로 애쓰고 웃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무한히 사랑을 주기 위해서는 나를 돌봐야 했다. 나도 사랑받고 싶은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어린아이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모두가 자신의 선택 없이 부모로 인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작디작은 핏덩이였던 아기는 오로지 부모 외에 기댈 곳이 없다. 절대로 아이 혼자 세상을 감내할 수 없다. 아이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생존이었고, 생존을 위한 사랑이 필요했다.


셋째는 유일하게 내가 출산할 당시, 태어나자마자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바로 옆에서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첫째 아이는 진통을 하다 예상치 못하게 수술을 했고 둘째는 브이벡을 시도했으나 진통을 견뎌내지 못해 수술을 했다. 아쉽게도 전신마취로 인해 아이를 낳자마자 아이를 바로 보지 못했다.


셋째는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제왕절개는 당연한 것이었고, 하반신 마취를 할 것으로 결정이 되어 있었다.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을 수는 없었지만 하반신 마취로 인해 정신은 멀쩡하게 깨어있었다. 수술대에 누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으앙..."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자마자 안경사이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힘들었던 것들이 보상이 되는 듯 감사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눈물을 닦아주셨고, 마치 아빠가 수고했다고 안아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물을 닦자마자 아이를 옆에 데려와 보여주셨다. 출산의 경험이 처음이 아니었음에도 출산 직 후 아이를 보는 것도 처음이었고, 출산의 감동도 마치 리셋이 된 듯, 처음 겪는 순간인 것처럼 감동이 밀려왔다.


육아는 이제 시작이었지만, 아이를 향한 나의 사랑은 아이를 만나기 수년 전부터 마음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었다.



아이에 대한 나의 사랑이 얼마나 절절했던 걸까. 마치 이 아이를 출산하면서부터가 아닌 굉장히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마치 내 안에 있던 어린아이를 연상케 했다.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을 지금의 내 아이에게 주듯이, 내 마음 아래에 있던 어린아이를 사랑으로 어루만지고 있었다.


나는 내 마음속 어린아이의 엄마가 되어 나를 돌보고 사랑으로 성장시키고 있었다. 힘들고 어려웠던 부모님의 그 시절을 대신해 내면의 아이를 보듬고 사랑해 주었다. 내가 내 아이를 쓰다듬어 줄 때, 나는 동시에 내면의 아이도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사랑받는 아이의 어여쁜 소리는, 내면의 아이가 자라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 아이와 맞닿아진 가슴을 통해 따뜻함이 몰려왔다. 그 맛에 아이를 자꾸만 품에 안았고 그 사랑이 너무 좋아 행복했다. 그동안 이루지 못했던 꿈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저 엄마여서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풍족하지만은 않지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이 환경이 감사했다. 아이에게 먹이는 분유의 회사도 고마웠다. 위의 두 아이는 완모를 했지만 부족해진 모유양으로 셋째는 분유를 먹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분유를 꿀떡꿀떡 잘도 먹었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보니 절로 분유회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분유회사가 존재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마음을 따뜻한 분유를 통해 느낄 수 있었고 그 따뜻한 분유가 아이의 몸속으로 들어가면서 아이는 그 따뜻함으로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사람이 성장하는데 음식뿐만이 아니라 사랑이 절실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사랑에 대한 절실함이 있었다.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글을 씀으로 내면의 깊은 곳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한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사랑은 무한하다. 비록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은 때론 고달프고 힘들지만, 그런 우리를 숨 쉬며 살아가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도 사랑으로 인해 존재하며,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꿈을 향해 달려가게 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사랑 때문이다. 내 아이를 사랑하듯 세상을 사랑하고 싶다.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지구 반대편에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생각하게 한다. 사랑은 그렇게 무한하고도 위대한 힘을 가졌다. 이 세상엔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 그 사랑에 빠지고 싶어 한다. 어쩌면 우리는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에 괴로워 서로를 힘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우리의 삶에 제외되는 순간, 사랑은 미움으로 변질된다. 미움은 괴로움을 낳고 좌절하게 한다. 이제는 사랑을 제대로 표현할 때이다. 우리가 죽는 그 순간까지 사랑을 놓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 사랑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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