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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나 Aug 16. 2022

복이 오는 것

그 말을 온전히 믿지 않지만

   치과 진료를 받으러 서울로 올라온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반지를 맞추러 갔다. 우리는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종로에 내려 귀금속 방 일대를 돌았다. 나는 값이 나가는 물건에 흥미가 없다. 엄마는 계산기를 두드려 값을 매기는 점원과 가격을 흥정했다. 나는 옆에 서서 보고만 있었다. 물건 앞에서 기싸움을 벌이는 일이 반갑지 않았다.

   엄마가 맞춰준 반지에는 생년월일과 이름이 각인돼 있다. 인복이 들어오는 반지라고 했다. 엄마는 이런 걸 믿는다. 나는 그 말을 온전히 믿지는 않지만 엄마가 내게 건넨 마음을 믿는다. 그날 마침 금방을 도는 차에 멈춘 내 손목시계도 약을 갈아 끼웠다. 엄마가 그 값을 지불했다. 여전히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편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빚이 아닌 복이라고 생각한다.



   고모부의 집엔 석고상이 있었다. 찰흙으로 빚은 전신도 있었다. 마카로니를 보면 그 집이 생각난다.

   고모부는 주방과 거실 사이 공간에 신문지를 깔아줬다. 목걸이를 만들 거라고 했다. 사촌동생과 나는 그 위에 나란히 앉았다. 고모부는 무지개 모양의 노랗고 작은 조각들을 보여줬다. 그걸 쟁반에 펼쳐 가지고 왔다. 쟁반 옆에는 12색 물감과 물통이 있었는데 물통 안에 거꾸로 꽂혀 있는 붓들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고모부는 붓의 모질이 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모부는 그 붓을 뽑아 마카로니에 색을 입혔다. 나도 마음에 드는 색을 골라 작은 마카로니에 하나하나 물감을 발랐다.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려면 쟁반에 올려둔 알록달록한 마카로니들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목걸이는 이사를 하거나 대청소할 때에 나 대신 누군가 버렸을 것이다. 내가 그걸 봐주지 않고 만지지 않고 아끼지 않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마카로니 목걸이를 기억하고 있어서 마카로니를 먹을 때면 장난감 음식을 먹는 것 같다. 물건들에는 이런저런 기억이 담겨 있다.



   나는 작은 것들을 잘 버리지 못한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가 아니면 잘 들여다보지도 않는 상자 안에 온갖 잡동사니가 들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잊히는 건데도 버리지 못했다. 엄마도 작고 큰 것들을 모아 두고 이사를 할 때마다 함께 가지고 다닌다. 엄마가 다 정리하지 못한 이삿짐이 일 년 동안 쌓여 있던 적이 있다. 혼자서 세 명 분의 짐을 지고 다니려다 보니 딸들이 제 물건을 정리하지 않아서 손쓸 수 없었다. 나는 엄마 집에 갈 때마다 조금씩 정리했다.

   버리는 게 일이었다. 물건들에 기억이 살고 있어서 버리고 나면 기억까지 사라질까 봐 버리지 못하는 게 많았다. 많이 버려도 짐의 양은 눈에 띄게 줄지 않았다. 엄마는 주로 복이 오는 그림, 도자기, 복이 오는 색깔의 옷, 복이 오는 것들을 가져오고 버리지 못했다. 엄마는 그런 것을 많이 믿는다. 그래서 정말로 복이 들어왔다고도 말한다. 나도 그 복을 믿는다. 엄마가 찾아낸 엄마의 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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