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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Sep 10. 2021

나무가 되었다.

8월의 어느 날

길을 걷는데

어떤 아저씨가

말했다.


“바지에 매미가 붙었어요.”


아무리 돌아봐도

보이지 않아

손을 휘휘 젓는데

손가락 마디에

낯선 물체가 걸린다.


돌아보니

매미 한 마리가

울지도 못한 채

내 바지에

붙어 있었다.


9월의 어느 날,

바람도 좋고

기분도 좋던

어느 저녁.


실컷 놀다

빵집엘 들어갔다.


식빵을 사야지,

소시지 빵도 살까

대화를 주고받는데

목 뒤가 간지러

손으로 툭, 만지니


얼마나 오래 있었을지 모르는

귀뚜라미 한 마리가

내 목에 붙어 있었다.


도대체 요새 왜 이렇게

뭐가 붙는지 모르겠다며

잔뜩 투덜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이가 묻는다.

무슨 일이야?

엄마 몸에 매미랑, 귀뚜라미가 붙었어,라고 말하자,

걔네들은 좋은 친구들이야?라고 다시 묻는다.

그럼~ 좋은 친구들이지!라고 대답하자

이번엔

왜 붙은 거야? 한다.


그러게 왜 하필 나일까, 속으로 생각하며

적당한 답을 고르고 고르는 데


아이가 갑자기 말한다.


엄마도 좋은 친구였나 봐.

엄마가 '나무' 같았나 봐.


.

.


수십 년을 살아도

사는 게 버겁고

사람들을 대하는 게 어렵고

세상 밖에 나가는 게 두려워

안으로 깊이

더 깊이

침몰하는 중이었다.


도통 사람 대하는 건

늘지 않아 고민하던 차였다.


그런데 아이가 내게 말을 건넸다.



“엄마는 좋은 친구인가 봐.”


.

.


나이가 들수록

좋은 사람보다는

적당한 사람이 되어가는 게 쓸쓸했던 내게

그 한 마디가 와 꽂혔다.


갈 곳을 놓친 매미에게

방향을 잃은 귀뚜라미에게

잠시 쉴 곳이 되었다면


찰나의 나무가 되어주었다면


누구에게든지

좋은 사람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됐다.


.

.


집에 도착해

빵을 먹으며

커피를 마시며

앉아 있는데


전보다

조금 더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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