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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Feb 03. 2022

아프게 해서 미안해

연휴의 끝자락, 고열과의 싸움

늦은 오후 갑자기 열이 38.0 웃돌기 시작하더니 저녁 내내 떨어질 줄을 몰랐다. 당장 내일부터 어린이집 등원이라 급한 마음에 해열제를 먹여도 열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고 시간마다  번씩 열을 재도 아슬아슬하게 38 언저리를 맴돌았다. 화끈하게 36.5 정도로 내려가 주면 너무나 좋으련만 오늘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플 예정인 , 아마도  크게 아플  같은 그런 날이었다.


다행히 아이의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저녁밥도  먹고 색칠공부며 퍼즐이며 미끄럼틀이며   있는  최대한 신나게 놀며 땀까지  흘렸더랬다. 저렇게  노는데 설마 아프진 않겠지, 괜찮겠지, 했던 것 같다. 게다가 잠들기  마지막으로 확인한 체온은 37.4도. 어플에서 ‘정상체온이라는 문구까지 떠서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괜찮을 거야, 옆에서 같이 잠들면 금세 아침일 거야, 하며 잠자리에 누웠다.


2시간 후, 밭은기침을 내뱉는 소리에 선잠이 깼다. 콜록 콜록과 다른 깊은 기침 소리. 보통 토하기 전에 내뱉는 소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목구멍을 할퀴는 듯한 기침을 한참 쏟아내던 녀석은 갑자기 토를 하기 시작했다. 시큰한 위액 냄새와 함께 저녁에 먹었던 밥알이 쏟아져 나왔다. 요와 이불 그리고 베개엔 사투의 흔적이 가득했다. 손으로 받아주다 흘러넘친 토사물은 군데군데 깊이 박혀버리기까지 했다. 다급한 소리에 달려온 남편은 바로 아이를 안아 주었고 나는 황급히 뒷수습을 시작했다.


놀란 녀석은 미친 듯이 울어댔다. 지금 가장 힘들 녀석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표현은 우는 것이었다. 아프고 힘들고 괴롭고 지치는 마음을 담아 힘껏 울고 힘껏 토했다. 30분 동안 우리 부부는 그저 다정히 아이를 달래며 토닥여주었다. 아이가 아플 때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곁에 있어주는 것 밖에는 없다. 잔뜩 더러워진 이부자리를 걷어내 욕조에 두고 냉큼 나와 아이를 안아주며 말했다. 괜찮아, 엄마도 어릴 적엔 아파서 토 많이 했어, 괜찮아, 엄마가 곁에 이렇게 있잖아. 아이는 마음껏 울다 새 이부자리에 눕더니 잠이 들기 시작했다. 한바탕 전쟁이 지나간 후였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전쟁이 쉬어가는 사이 나는 지난 시간을 쉼 없이 복기했다. 한 순간도 놓쳐서는 안 되었다. 원인을 찾아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연휴의 끝자락에 이토록 아플 이유가 없으니. 아픈 아이 앞에서 엄마는 한 없이 죄인이 된다. 시간을 돌릴수록 잘한 것보다는 못한 것들이 기억났다. 이틀 연속 눈을 보러 나갔던 시간들, 함부로 눈을 만지게 했던 순간들, 찬바람에 목도리를 둘러주지 않은 장면들이 쌓여 죄책감을 빚어냈다. 나는 분명 아이가 아픈 지금 상황에 99%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토록 모든 순간이 후회된 날은 처음이었다.


아이는 지금 내 옆에서 낑낑 거리며 자고 있다. 좀 전에 체온이 38.4도를 웃도는데 덜컥 겁이 났다. 끙끙 앓는 소리가 새삼 걱정돼 챔프 시럽을 꺼내 먹이려는데 마침 녀석이 잠에서 깨어 쉬이 받아먹었다. 꿀떡꿀떡 잘 받아먹은 만큼 녀석의 몸 군데군데 묻어있는 열도 뚝 떨어졌으면. 아픈 자식 옆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렇게 기도하는 것밖에는 없다. 무기력해지는 나 스스로가 미워 부러 잠을 청하지 않는다. 99%의 책임을 잊고 편히 잠들면 내가 너무나 미울 것 같아서.


그러니까 오늘은 조금 힘들어도 된다.

아이는 나보다 아주 많이 힘드니 나는 그보다 더 힘들어도 괜찮다. 부족하고 바보 같은 엄마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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